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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Sep 10. 2021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선택적함구증을 겪은 자들도 힐링받을 수 있는 그림책

30여 년이 흘렀는데도 그때의 기분과 느낌이 생생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나는 죽을 때 까지도 그것을 잊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을 과연 상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상처라는 말보다는 흔적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을 내 안에 껴안았다. 상처라 하고 싶지 않다.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을 뿐.


우연히 어떤 사람의 글을 보았다. 요점은 말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시대에 관한 글이었는데, 선택적함구증을 겪는 아이들이 부럽다는 문장을 읽고 나는 뒤통수를 쿵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안 나와서 좋겠다니, 마치 조롱받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글쓴이는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본인이 겪지 않아 봐서 그 고통이 얼마나 거대한지 모르는 것 뿐이라고, 내 마음속 대인배를 끌어내어 급히 수습해보았다.


그 느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근에 읽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저자, 조던스콧이라는 캐나다 시인은 어린 시절 말더듬이였. 그는 그때의 기억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걸린 느낌으로 그려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중


 나는 그 책을 읽으며 깊은 공감과 슬픔에 빠졌다. 나의 어린 때를 떠올리면 말들이 목구멍에 걸리는 것 아니었다. 목구멍에 걸릴 말들이 없었다. 없을 무.  내 목구멍은 無였다.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말이 안 나와서 고통스럽기보다는 공허해서 고통스럽다는 표현이 옳다. 단순한 yes / no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내 머릿속에서는 대답이 만들어졌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대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끌어낼만한 단어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짜내겠는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서 선생님이 저자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학급 아이들은 동시에 뒤돌아본다. 두가 같은 곳을 향해있는 궁금한 얼굴들. 그 얼굴들을 안다. 평범한 얼굴들이지만, 조던스콧에게는 큰 불안으로 다가왔을 그 눈들. 나는 그 장면에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중


"아이들은 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 것에만 귀 기울여요. 아이들은 내 얼굴이 얼마나 이상해지는지만 봐요. 내가 얼마나 겁을 먹는지만 봐요. 내 입은 꼼짝하지 않아요."(p.14)


움직이지 않는 나의 입. 굳어버린 얼굴 근육. 생각을 알 수 없는 나의 눈동자. 그것들을 구경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렇게 날 쳐다볼 수밖에, 나쁜 뜻은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작아졌다. 없이. 차라리 내 마음처럼 실제로 내 몸이 작아지다가 사라지고 싶었다. 제발 선생님이 나에게는 문을 하지 말아 주길 바랐다. 선생님들 중에는 나의 상태를 심각히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술시간에 크레파스가 없어 빌리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말했단다.

"얘야, 이 세상을 어찌 살려고 그러니."

또 다른 선생님은 엄마에게 말했다.

"이런 성격들이 공부하기는 좋아요. 걱정 마세요."


결론적으로, 나는 공부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고,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 주변에 날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도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을 모른다. 굳이 들춰낼 필요도 없다. 그래도 내 안에는 늘 그 아이가 있다. 상처라기보다는 흔적이 되어 나만 아는 상자 안에 고이 담아놓고 한번씩 쓰다듬어 준다. 아무리 쓰다듬어도 흔적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지만. 치 나만의 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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