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 사업비를 받고 장소 지원 사업을 받아 공방을 차렸다. 그런데 당장 자본금이, 돈이 없다. 당장 어떻게할까 하다가 공방을 쉐어했다. 한복을 만드시는 작가님과 공방을 나눠쓰며 비용을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작가님의 아이디어로 카페를 겸해보기로 했다.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작정이었다.
다른 작가님이 쓰지 않는 칠판이 달린 책장을 나눔 받았다. 거기에 천원에 산 분필로 메뉴를 적었다. 싱크대를 제외하면 들여온 가구 대부분이 나눔 받거나 싸게 산 중고 아니면 작가님이 가져온 가구였다.
와플, 커피, 아이스티 세개 메뉴를 적었다
와플, 커피, 아이스티. 이 세 개 메뉴로 시작했고 고객은 대부분 같은 지하상가 입주 작가들이었다. 입주한 지하상가에 마침 카페가 문을 닫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종일 작업실 삼아 상가를 지키는 작가님들이 점심에 끼니 삼아 와플과 음료를 주문해주었다.
지원 사업을 통해 들어간 곳이라 다른 지원 사업이 연계가 되곤 했다 마켓이 주로 그랬다. 마켓에서는 와플과 커피, 아이스티를 팔면서 가죽 소품도 만들어 팔았다. 유감스럽지만 와플이 가장 잘 팔렸다. 지하 상가 끝자락에 위치한 이 복도에는 우리집 말고 뭐 먹을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나가기 귀찮으니 아쉬운대로 사먹어 준 것이었다. (반년 뒤 카페가 생겨버리긴 했지만)
마냥 즐거웠던 마켓, 사실 수익은 크게 안됐다.
열심히 마켓에 참여하고 매일 샘플링하며 가죽 소품을 만들었지만 크게 수익이 없었다. 이따금 팔리는 와플과 음료가 주 수입원이었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 수익이 나면 비용을 나누어 냈듯이 나누어 가져다가 보니 손에 남는게 하루 몇천원인 날이 비일비재했다.
열심히 홍보도 해고 서류도 써봤다
문화 수업을 운영하고 홍보를 열심히 해봤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쳤다. 그 때는 재주가 모자라 가리는 일도 많았고 닥치는 대로 마켓만 쫒아다니니 돈이 안 벌렸다. 특히 마켓은 주로 '맘 마켓'이라고 해서 맘카페를 통해 참여했는데, 비싼 가죽 소품은 구경거리는 되어도 판매가 안됐다. 참가비도 못 버는 날이 많았고, 그나마도 주변 마켓 참여 대표들이 어린 대표가 고생한다고 두어개 사주는 것으로 메꾸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고 모르고 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을 했다. 어떤 제품을 어떻게 팔지 제대로 된 사업계획이 부족했다. 나름 준비한다고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계획했지만 모두 하루살이, 돈은 못버는 공상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고 시작했다보니 배움의 연속이었다. 모든게 새롭고 생소하면서 어렵고 힘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교훈 하나는 뼈가 저리도록 확실하게 알았다.
지금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3년 전, 그 때는 무슨 용기로 저렇게 시작했을까 싶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몰라서 무작정 눈에 보이는대로 했다. 날밤을 며칠씩 새가면서 제품을 만들고, 팔지 못해 낙담하면서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과거의 김대표를 칭찬하라면 딱 두가지 칭찬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자존심을 굽히고 부모님께 도움을 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