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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eji May 10. 2024

완벽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나의 발버둥에 보내는 위로이자 나의 본능에 보내는 경고

커리어의 시작을 컨설팅으로 하고, 지금도 회사 내에서 위아래로 여러 사람들과 일하는 포지션에 있다 보니, 리더와 팀원 사이의 기대와 갈등에 대해 꽤 오랫동안 관찰하고 바라볼 수 있었다.


나도 당연히 커리어의 시작은 팀원이었고, 경력이 쌓인 후에는 누군가의 리더였으며,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하이라키 상) 아랫사람임과 동시에 의사결정권을 가진 포지션에 있다.


짧게 말해, 팀원들이 리더에게 갖는 불만도 마음이 아플 만큼 들어봤고,

리더들이 팀원들에게 갖는 불만도 숨쉬기 불편할 정도로 들어봤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머리가 아프지만

더 머리가 아픈 건, 나는 양쪽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완벽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 자신도, 그리고 상대방도.


47개 중 2개. 5%도 안되는데 그 마저도 완벽하지는 않다.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평생.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거나,

완벽하게 모든 사람의 입맛에 다 맞을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계속 인정받지 못함에 대해 스트레스받으며,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한 발버둥은 조금은 내려놓아도 된다.


완벽이라는 허상은 늪과도 같아서,

완벽하려고 할수록 자신감과 자존감은 낮아지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열심히는 하는데...'의 평가가 따라붙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상대방도 찌그러진 동그라미다. 세모나 네모는 아니다.


동시에, 상대방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완벽할 수 없다. 평생.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항상 나의 생각과 같이 움직이거나,

내 입맛에 맞추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상대방을 자꾸 내 기준에 맞추어서,

내 기준에 완벽하기를 바라는 본능을 눌러야 한다.


그 본능이 터져버리면 상대방을 향한 잣대가 생기고,

그 잣대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는 상황이 오면 상대방의 존재 자체가 원흉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상대방을 탓할 수는 있지만,

탓이 지속되면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정되어 버리고,

나는 '힘든 사람'과 매일 함께 일해야 하는 굴레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완벽해지려고 하지도 말고, 완벽을 추구하지도 말자.

동시에 내가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도 없으니, 상대방이 완벽하기를 바라지도 말자.



John Legend의 'All of Me'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Love your curves and all your edges...
all your perfect imperfections
'


그렇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가장 완벽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글은 저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면서,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서 항상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이 내 기준에서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생각을 숨 쉬듯이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결국 내가 완벽하기를 바라고, 상대방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제 머릿속 정의되어 있는 '완벽'이라는 단어로 귀결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김창완 님의 엽서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된 적이 있는데,
그걸 상대방에게 씌워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벽을 의식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제 자신에게 쓴 편지입니다.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이 글도 몇 번을 지웠다가 쓰고,
맞춤법 검사도 딱 열 번을 채워서 했거든요.

그럼에도 사실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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