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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Feb 24. 2018

이혼한 부모님과 함께, 우리의 상견례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결혼을 다시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 과정을 재혼이라고 부르곤 했다. 아무래도 한 번 준비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처음보다 훨씬 더 수월했다.


첫 번째 결혼 준비(!)에서는 '완벽한 결혼 생활'이 목표였으므로, 공기청정기를 하나 살 때도 공기청정기의 성능과 디자인과 가격을 꼼꼼하게 따지고 분석해서 몇 차례의 토론을 거친 후 겨우 구매 버튼을 누르곤 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 준비에서는 '무사히 결혼에 골인하기'가 목표였으므로, 일단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공기청정기, 공청기 등의 단어로 몇 번 검색해서 댓글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세 개 정도를 골라 대충 훑어보고 고민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고민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상견례였다. 우리는 상견례를 앞두고 갈등이 폭발해서 헤어진 케이스였으므로 상견례를 치루는 게 가장 두려웠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라고 묻는다면, 식상하고 우습지만 '아빠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빠는 아빠의 생각이 곧 법이라고 믿는 사람이고, 오빠의 아빠도 당신의 생각이 곧 법이라고 믿는 분이셨다. 우리 아빠는 화목하게 하하호호 웃으며 서울에 있는 중급 호텔에서 길고 긴 코스의 한정식을 먹고, 술도 한 잔씩 나누며, 마지막에는 선물을 교환하고 사진도 찍는 상견례를 바랐다. 아버님은 어머님 없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상견례를 원하셨고.


두 분이 원하시는 상견례는 너무 극과 극이라 골치가 아팠다. 우리는 상담을 통해 상견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계획을, 다시, 디테일하게 세워보기로 했다.



상견례 프로젝트를 통한 우리의 공동 목표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우리의 아빠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내놓을 때까지 들들 볶는 캐릭터들이다. 우리는 들들 볶이다가 결국에 지쳐서 아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곤 했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자동적으로 아빠들이 원하는 것에 억지로 맞추고, 불만은 쌓이고 또 쌓이고.. 이번에는 그 고리를 끊어보고 싶었다.


파혼 전에도 우리는 계획이 있었다. 나는 그냥 무사하게, 빨리 끝나는 상견례를 하고 싶었다. 아버님 따로, 어머님 따로 하는 상견례도 괜찮았고 두 분이 같이 오시는 상견례도 괜찮았다.


오빠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한 자리에 모시고 싶어했다. 따로따로 상견례를 하는 것은 왠지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세워진 목표는 네 분의 부모님이 한 번에 모인 자리를 만드는 것.


상담 선생님은 한정식집보다는 찻집에서 만나는 쪽을 권해 주셨다. 상견례 시간은 최소한으로, 술은 절대로 마시지 말 것.(두 아버지 모두 술을 좋아하시고, 술에 취하면 폭탄이 되시는 분들이시므로...) 우리는 상담이 끝나고 각자의 아버지를 설득했고 장렬하게 패배했으며 그 패배는 파혼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틀린 문제를 다시 틀리지 않기 위해서는 왜 틀렸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의 상견례 준비를 놓고 패인을 맹렬하게 분석했다.


원인 1. 아버지를 두려워한다.

원인 2. 아버지의 뒤끝을 두려워한다.

원인 3.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있다.

원인 4. 그리하여 중간에 포기한다.


원인 1과 2는 알겠는데, 3은 알쏭달쏭했다. 이 죄책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건 상견례가 꼭 부모님을 위한, 부모님에 의한 행사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이 호스트가 되는 행사인데 우리가 의견을 내놓는 게 버릇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상견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과연, 상견례란 무엇인가? (논문인가..)


상견례란?                                            

예비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를 모시고 혼인 승낙을 받고, 혼인 절차를 의논하기 위해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

<한국일생의례사전>


그렇다. 나와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혼인에 대한 ABC를 의논하는 자리. 이 프로젝트를 주최하는 자가 부모님이 아닌 우리라는 생각을 하니 죄책감이 조금 사라졌다. 우리가 PM이라면,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종료하기 위해 장소와 구성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각자의 부모님을 설득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전략은 하나였다. 포기하지 않는 것. 이 프로젝트를 실패하면 회사에서 짤린다는 각오로 실전에 임할 것. 표정과 말투는 여유롭게, 마인드는 치열하게.


나의 아빠는 은행원 출신으로, 내 나이 여덟 살부터 협상의 기술을 알려주곤 했다. 보리야, 네가 엄마에게서 천원을 받고 싶다면 일단 이천원이 필요하다고 말해라. 엄마는 오백원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면 양보하는 듯이 천 오백원을 불러라. 엄마는 팔백원을 제시할 것이다. 다시 양보하는 듯이 천 삼백원을 불러라. 엄마는 천원을 부를 것이다.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천원에 콜해라. 승리할 것이다.


아빠가 말하는 협상의 핵심은 '양보'였다. 마치, 내가 양보하는 것처럼 상황을 이끌어나갈 것. 상견례는 액수를 흥정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므로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빠가 가장 원하는 것을 먼저 제시할 것. 그리고 옵션 개념으로 내가 원하는 상견례를 제시하면서 마치 두 개가 세트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렇다면 아빠는 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옵션을 받아들일 것이다.


결혼을 통틀어 아빠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내가 아빠의 직장에서 결혼하는 것이었다. 나는 싫었다. 내가 원하는 결혼식은 따뜻한 봄날, 싱그러운 식물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즐기는 야외 웨딩이었다. 그러나 한 번 파혼하면서 결혼식 날짜가 11월 말로 잡혔고, 얼어죽고 싶지 않은 바에야 야외 웨딩은 이미 나가리였다. 어차피 야외 웨딩을 못 한다면 뭐 어디에서 결혼하든 크게 상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고작 네 명 초대하는 상견례도 이렇게 어려운데, 그 수많은 어른들이 오는 행사라면 신속하게 끝나는 쪽이 내 신상에 이로울 것 같았다.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먹으며 나는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존경하는 부모님들, 제가 다시 결혼을 하고자 합니다. 파혼이라는 마음 아픈 경험을 하게 해드려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으며 이번에는 훨씬 더 성숙한 어른으로서 무사히 결혼을 마치고자 하오니 부디 기쁜 마음으로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엄마의 첫 반응은 놀라웠다.

- 결혼식은 어디에서 할 건데?


나는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은행에서요. 상견례는 가볍게 찻집에서 하구요. 대신 한정식 집처럼 공간이 완벽하게 분리된 호텔 커피숍에서요. (상견례란 자고로 타인들과 완벽하게 분리된 정숙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한 마무리 멘트였다)


아빠는 은행에서 결혼한다는 소리에 이미 입꼬리가 실룩거리고 있지만, 체면을 위해 애써 근엄한 척 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버지, 우리 벌써 30년을 살았습니다...)


- 그런데가 있나? 그럼 뭐 그러든지.


가볍게 1승을 거두고 외로이 격전지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기는 OK. 그쪽 전선은 어떤가? 재빠르게 응답하라. 놀랍게도, 오빠도 큰 무리 없이 아버님에게서 OK를 받아냈다는 회신을 보냈다. 우리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룰루랄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시련은 상견례 전날 밤에 찾아왔다. 아버님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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