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아침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좌충우돌 상견례展
아빠는 은행에서 결혼한다는 소리에 이미 입꼬리가 실룩거리고 있지만, 체면을 위해 애써 근엄한 척 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버지, 우리 벌써 30년을 살았습니다...)
- 그런데가 있나? 그럼 뭐 그러든지.
가볍게 1승을 거두고 외로이 격전지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기는 OK. 그쪽 전선은 어떤가? 재빠르게 응답하라. 놀랍게도, 오빠도 큰 무리 없이 아버님에게서 OK를 받아냈다는 회신을 보냈다. 우리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룰루랄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시련은 상견례 전날 밤에 찾아왔다. 아버님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상견례 D-1. 예비 신혼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우리는 룰루랄라 즐거웠다. 아마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불길함을 암시하는 복선들이 여러 번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 앞에 선 주인공들이 복선을 모르듯이, 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 아버님한테 한 번 전화를 걸어서 노티를 해 드릴까?
오빠는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몇 시, 어디에요. 나는 전화를 바꿔 들고 아버님에게 큰 마음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짧은 통화 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는 감이 좋다고 말했다. 몇 분 뒤였을까... 아버님은 전화를 걸어서 어머님과 같이, 상견례를 같이 못하겠다고 하셨다.
- 이혼했는데, 꼭 상견례를 같이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그 집도 참 이상하다. 이혼했으면 남인데 왜 같이 하자고 하나?
그 말을 듣자 나는 마음이 콱 막혔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따로따로 하는 상견례도, 같이 하는 상견례도 다 좋다고 하셨는데. 오빠가 아버님에게 사실을 정정했다. 보리네 집에서는 어느 쪽이든 다 좋다고 하셨는데, 제가 같이 하자고 한 거예요. 죄송해서요.
그런데 그 억지스러운 말을 듣자 이상하게 오빠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 화법은 우리 아빠의 전매특허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엄마가 전업 주부였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시부모님 잘 챙기고, 매 식탁에 진수성찬이 올라오고 항상 대청소한 것 같은 반짝반짝한 집이 유지되었으면 하는데, 불행하게도 엄마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그래서 아빠는 늘 얼마간은 자신이 엄마를 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봐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서러울 때에는 엄마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원장 선생님을 욕하면서 뭐 그런 곳이 있냐고 한다.
나는 아빠의 그런 억지를 듣고 있자면 숨이 막혔다. 왜 저렇게 말해야만 할까, 저렇게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런데 아버님이 그 말씀을 하신 순간 문득 오빠의 마음이 내 마음과 겹쳐졌다. 평소였다면 오빠에게 아버님을 비난했을 것이다. 오빠네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 그런데 숨이 콱 막힌 나에게 비난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대신, 팔목을 가만히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많이 억울하지. 나도 그 마음을 알아.
오빠는 신기하게도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아버님을 무시하지 않고, 샘 혼의 책에서 나오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런데 상견례는 같이 하셔야 해요. 내일이잖아요. 아버님은 그러면 고모님을 데려오시겠다고도 하셨다가 같이 하는 상견례는 싫다고 하셨다가를 반복하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화가 뚝 끊겼다.
짧은 침묵이 가만히 흐르고, 나는 오빠를 다독였다. 괜찮아, 오빠 대단하다. 많이 발전했다. 한 30분 정도가 지나자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그러면, 용돈을 10만원 더 올려서 80만원으로 주던지.
골치가 아팠다. 지금 드리는 70만원으로도 모자라서 80만원을 달라고 하신다니. 이건 정말 염치가 없으신게 아닌가 싶었다. 아, 이 결혼을 나는 꼭 해야 하나! 화가 버럭버럭 났지만 오빠는 능숙하게 대처했다. 네, 드리면 좋죠. 드리면 좋은데 저희가 형편이 힘들어서요. 똑같은 말을 30분 정도 반복하자 아버님은 포기하셨다.
그래서 내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일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아버님이 갑자기 안 하시겠다고 하면 어쩌지. 혹시나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이 싸우시면 어쩌지. 제발 상견례만 잘 끝내면 아버님을 좋은 마음으로 잘 모시겠다고 (같이 산다는 뜻이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케어하겠다고) 기도도 했다.
우리는 시청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날은 무슨 행사가 있어 대규모의 교통 통제가 있는 날이었다. 중간에 오빠에게 연락을 해보니 둘 다 서 있는 지점이 비슷비슷했다. 아마도 우리가 먼저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빠는 이상하게 길을 헤맸고 우리가 20분 정도 더 늦게 도착했다.
상견례장에 들어서면서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버님과 어머님과 오빠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이 죄송하다는 말이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우리가 미안하다고 한 말은, 첫 번째의 결혼을 깬 것에 대한 사과였던 게 아닐까. 사과를 하기 위해 아빠가 수십년간 다닌 이 길을 돌아왔던 게 아닐까 싶은.
아버님과 어머님은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씀하셨고 의외로 분위기는 좋았다. 복병은 우리 아빠였다. 오빠의 집에는 오빠가 결혼을 미루자고 했던 거라고 부모님께 설명 드렸는데, 엄마와 아빠는 혹시라도 결혼을 깬 사람이 나라는 것을 시부모님이 아셔서 나를 미워하실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오빠와 따로 만났을 때에도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셨다. 자네 집에는 결혼을 미루자고 한 게 자네라고 말을 좀 해주게. 거기서 끝내야 하는데.. 걱정병인 우리 아빠는 폭탄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번에 태형이가 결혼을 미루자고 해서 참 마음이 아프고 놀랐습니다. 아마 그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듣고 싶으셨던 것 같고 (어쨌든 아버님도 책임이 있으니까) 진짜 두 분이 이 파혼의 사유를 알고 싶으셨는지 확인도 해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두 분은 헛기침을 하셨고, 같이 놀랐다고만 말씀하시고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으셔서 결과적으로는 아빠는 목적에 실패한 셈이 되었다. 사람을 떠보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주로 어머님이 말씀을 주도하셨고, 아버님과 어머님도 나름 화기애애하셨다. 나는 이 분위기가 왜 화기애애할 수 있나 관찰했는데, 어머님이 계속 아버님을 칭찬해 주셨다. 우리 양반이 한창 때는 키도 훤칠하고 그 당시에 대학도 나오고 얼마나 엘리트였는지. 아버님은 내심 그 칭찬이 싫지 않으신 것 같았다.
그렇게 상견례가 끝났다. 아버님이 예전에, 우리 엄마와 아빠를 만나서 어머님을 시어머니로 모시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하신 적이 있어 나는 끝의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님도 어머님도 오빠의 차에 타셔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떠나가셨다. 우리 가족만 남자 나는 긴장이 툭 풀어졌다.
아오.. 이제 끝났다. 개힘들었어 진짜. 뭐 이런 류의 비속어가 섞인 말을 하자 엄마가 내 등짝을 찰싹 때렸다. 그제서야 현실감이 들었다. 우리는 드디어 상견례를 했다! 우리 진짜 결혼한다! 무사히 넘겼어! 한 번 포기했던 고비를 넘으니 왠지 용기가 불끈불끈 났다.
엄마와 아빠도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내가 또 결혼을 깬다고 할까봐 내내 노심초사한 얼굴이었는데, 정말 결혼을 하는구나 싶었던 것 같다. 나온 김에 남대문으로 그릇을 보러 갔는데 엄마는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다 사라고 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연 상가가 많이 없어서, 문을 연 곳을 겨우 찾았는데 마음에 드는 예쁜 연두색의 그릇 세트가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 엄마는 굳이 이불도 한 세트를 더 사주겠다고 했다. 현금을 뽑아서 올라오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찡했다. 엄마와 아빠는 왜 자꾸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할까.
나는 이렇게 삐죽거리고 투덜거리고 깽판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가끔씩, 현금을 들고 그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오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엄마와 아빠와도 많이 화해한 것 같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막상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저 두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두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여기가 내 홈그라운드구나.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이구나.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새로운 곳으로도 가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