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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r 25. 2018

우리는 예단은 드리고 예물은 받지 않기로 했다  

좋은 선택, 그리고 왠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 

가장 두려웠던 상견례가 끝나고 우리는 이제 현실적인 문제를 준비하기로 했다. 현실적인 문제 중 가장 어려운 건 집을 구하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1회 차 결혼 준비 때 미션을 완료했기 때문에 패스. 예단과 예물과 어른들의 한복과 정장 기타 등등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결정해야 했다. 바야흐로 돈과 예의의 문제로 진입한 것이다.


엑셀 빠순&빠돌이인 우리는 일단 엑셀을 열었다. 한 시트에는 각자가 보유한 돈을 쭉 적고, 다른 시트에는 필요한 카테고리를 쭉 적었다. 나는 당시 5~6년 차 직장인이 모았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만큼의 적은 돈을 모아놨고, 오빠는 나와 정반대의 통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열심히 아껴보겠다고 했다.


대충 카테고리를 적어보니, 결혼식 / 신혼여행 / 가구 / 가전 / 기타 생활용품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일단 결혼식은 일단 아빠 직장에서 하니 실제적인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회사 결혼식의 좋은 점은, 담당자들이 매우 친절하고 강매나 의미 없는 옵션 붙이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사는 여러 코스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4만원 초반대의 부페 코스를 골랐고, 꽃 장식은 가장 저렴한 조화 코스를 골랐다. 그런데 매니저님이 내 앞 시간대의 신부가 전체 생화 장식을 골랐다면서, 비용을 나눠서 부담할 용의가 있다면 그 생화 장식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고 하셨다. 조화 코스와 비교해도 얼마 차이 안 나는 금액이라 나는 당장 콜을 외쳤다. 그 분은 내가 아니더라도 생화 장식을 하실 예정이었으므로 꽃 장식에 대한 선택이 그 분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떤 꽃이든 좋으니, 꽃 향기로 가득한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좋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참 좋았다. 


드레스와 메이크업은 인터넷을 몇날 며칠 뒤져서 원하는 리스트 몇 개를 뽑았고, 레몬테라스에 글을 남겼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과 업체들 몇 곳을 함께 올리고 견적을 달라는 글을 남겼더니 정말 많은 웨딩플래너들이 연락을 주었다. 그 중에서 가격과 느낌을 대략적으로 따져서 몇 분을 고르고, 그 중 느낌이 좋은 한 분과 계약을 했다. 


당시 나는 유례없는 다이어트와 처음 겪는 다양한 일들을 상대하느라 매우 예민하고 뾰족한 상태였는데, 그 플래너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 다정하고 편안하게 해주셨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하다. (__) 내가 원하는 느낌과 업체를 말씀드리자 그곳 + 비슷한 느낌의 샵을 추천해 주셨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플래너님이 추천한 샵에서 계약을 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깨끗한 미카도 실크의 드레스와 연한 메이크업과 과하지 않은 헤어 스타일을 해주는 곳. 


우리가 계약한 집에는 냉장고도 세탁기도 김치냉장고도 에어컨도 옷장도 다 있었다. 심지어 TV는 결혼하기 한참 전에 오빠가 제일 좋고 큰 것으로 사두어서, 우리가 사야할 건 책장과 책상 겸 식탁, 의자, 침대 정도였다.


책장과 책상은 모두 이케아에서 한 번에 샀고, 침대는 귀찮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케아는 좋은 선택이고 인터넷으로 산 침대는 망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아무데서나 잘 자니까 매트리스는 20만원 짜리로! 그리고 젠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하겠다며 10만원짜리 나무 깔판을 샀다. 우리는 정말 아무데서나 잘 자는데, 이 매트리스는 등이 배겼고 나무 깔판은... 정말 자취방 같았다.


신혼여행은 플래너님이 추천해 준 신혼여행 업체에서. 개별적으로 다른 곳과 견적을 비교해 봤는데 여기가 가장 비용이 괜찮았다. 우리는 자유여행을 좋아하지만, 찾아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가능하면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다. 신혼여행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가이드가 함께 다니니 좀 불편했다. 마지막 날, 둘이 따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자유시간을 즐겼는데 그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래서 우리의 선택을 잠깐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여태까지가 서두라면, 본문은 지금부터다. 어려운 건 예단과 예물과 뭐 이런 것들이었다. 어른들과 관련된 것들. 보통은 집값의 10% 정도를 현금 예단으로 보낸다고 하는데, 우리는 집도 우리가 모은 돈으로 얻었으니까 굳이 예단이 필요할까 싶었다. 어른들과 관련된 건 모두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예산이 빡빡한데. 하지만 상담 선생님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그래도 자식들을 결혼시키면 마음이 허전하니까 양쪽에 각각 공평하게 돈을 좀 드리는 게 어떨까, 라고 말씀하셨다.


왜요?! 싫었지만, 어른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양가에 각각 200만원씩, 우리 집은 200만원을 드리고 오빠의 부모님께는 각각 100만원씩 드리는 것으로 금액을 맞췄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한복과 아버지들의 정장은 우리가 맞춰드리기로 했다. 나는 줄어든 통장의 잔고를 보고 계속 투덜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참 좋은 선택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 200만원을 가지고 친가와 외가 가족들에게 골고루 나눠 줬고, 아빠는 요새 누가 신부 외가까지 챙기냐면서 콧평수를 벌렁거렸다. 엄마는 오빠가 쓴 압화편지를 읽으며 참 세심하다고 칭찬했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모두 좋아하셨고, 어머님은 돈을 그대로 돌려주셨다. 지금 나의 생각으로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둘 다 어떤 인정받는 느낌이 들으셨던 것 같다. 두 분 다 본인들이 이혼했다는 게 오빠의 결혼의 걸림돌이 될까봐 많이 걱정하셨는데, 정성스럽게 포장된 예단비와 압화편지를 받으면서 내가 그래도 아들에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이런 걸 느끼셨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좀 서글펐다. 나는 기본적으로 악세사리를 하는 것을 귀찮아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선물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펐다. 오빠는 우리 집에서 정장과 옷을 해줬고, 아빠는 오빠에게 시계까지 해주고 싶다고 했다. (오빠가 시계는 부담스럽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해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오빠의 부모님에게서 뭔가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네가 우리의 며느리가 되는구나. 정말 환영한다! 그게 아주 작은 것이라더라도. 


아버님은 우리가 백만원을 드리고 난 다음에 오빠에게, 이 돈을 다시 줄 테니 이것으로 나에게 무엇이라도 사줘야지 않겠냐고 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어머님은 함께 종로로 한복을 하러 갔을 때, 잠깐 둘만 남았을 때 내가 뭐라도 해줘야 할텐데. 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더 해주고 싶으시다기 보다는 예의상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순간 이 말을 덥썩 잡을까 하다가, 편안한 결혼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오빠가 해줬다고 말하면서 웃어넘겼다. 


사실 내가 받은 건, 커플링을 맞추면 서비스로 주는 목걸이였다. 코랄색의 참깨다이아가 박힌 목걸이. 서비스로 목걸이를 받을 수도 있고, 혹시 관심이 없다면 10만원을 빼줄 수도 있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집에 돌아가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오빠에게서 예물로 받았다고 할 요량으로 그냥 달라고 했다. 사실은 진열장에 있던 심플한 진주목걸이가 갖고 싶었는데, 그걸 선뜻 사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돈도 많이 못 모아놨는데 무슨 목걸이야.. 그 돈으로 빚이나 더 갚아야지.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진주목걸이가 가끔 생각나는 것을 보면 그 때 그냥 살 걸 그랬다. 그건 단순히 물건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아마 부러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결혼하면서 한 가득 선물을 받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부러울 수 있지. 그 때는 고작 예물을 못 받았다고 슬퍼하는 내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오빠에 비해서 내가 턱없이 돈도 조금 보태고, 심지어 악세사리는 잘 하지도 않는데 고작 이것 때문에 이렇게 슬퍼야 돼? 그래서 그냥 꾹꾹 참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참 동안 묵힌 이 마음은 유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어느 날은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유령이 힘들고, 어느 날은 짠하고, 어느 날은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얼마 전 상담 시간에 툭,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수도 있지,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데에서 오는 슬픔이니까.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슬프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슬퍼도 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니 부글부글 끓었던 마음이 푹 식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나의 슬픔에 대해 유치하다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 때의 나에게 사과하는 의미로 오늘은 나를 위해 예쁜 목걸이를 하나 샀다. 생활비 카드로 결제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양심에 손을 얹고... 내 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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