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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m Mar 29. 2019

Douglas Gordon

ACCA, Melbourne, 2014

2014년 6월의 글, 2019년 3월에 수정.


글라스 고든의 회고전 The Only Way Out is the Only Way In 을 광고하는 빌보드가 나붙었다. 유쾌한 청소년들, 혹은 장난기 많은 시민들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모든 포스터에 검은 눈동자 한 쌍씩을 선물 했다. 고든은 그의 작업활동이 일상 생활에서 사물을 “찍고” “발견하는” 그의 아주 개인적인 취미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예술은 그에게 전략적인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포스터 만큼이나 행인들을 동요시킬 만큼 자극적인 이미지, 공포, 그리고 선악, 명암,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등 상반되는 개념들과 그것들의 모호함은 작품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고든이 재발견한 영화나 팝컬쳐, 혹은 고전문화의 이미지들은 단순하지만 위트있는 연출적 장치들로 단숨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Between Darkness and Light (After William Blake), 1997


첫 번째 작품은 Between Darkness and Light (After William Blake)였다. 반투명 스크린의 각 면에는 엑소시스트(1973)와 성모마리아의 영을 보는 어린 수녀의 이야기를 그린 버나뎃의 노래(1943)가 영사되고 있다. 한 소녀는 극한의 악을, 다른 한 소녀는 성령을 경험한다. 거울처럼 상반되는 장면들을 앞뒤로 붙여놓음으로써 선과 악을 대비시켰다 - 반투명이라 앞뒤가 비쳐보이므로 들을 합쳤다고 해도 될 것같다. 사소한 연출 하나로 선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Everything is nothing without its reflection: a photographic pantomime, 2013


Everything is nothing without its reflection: a photographic pantomime은 폐쇄적인 직사각형의 방이었다. 네 벽면, 그리고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벽의 양면에는 180점의 흰 프레임을 두른 작품들이 살롱스타일로 걸려있고, 이들 사이사이에는 거울들이 있다. 사진작품 대부분은 낮은 화질로 출력되었고, 거울에는 투명 유리를 한 겹 덮어 흐릿하게 굴절된 상이 비치도록 했다. 청백색 형광등 아래에서 관람객들은 신체부위의 크롭샷, 과노출된 풍경사진, 죽은 척 하는 코끼리 등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 사이사이로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유령과도 같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30 Seconds Text


이 외에도 30초간 꺼졌다 켜지는 전구가 있는 새카만 방이 있었다. 참수당한 머리통과 죽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를 읽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전구가 켜져 있는 30초뿐이다. 만약 텍스트를 다 읽지 못했고, 끝까지 읽기를 원한다면 새카만 방에서 또 다른 30초를 세어야 한다.


Pretty much every film and video work from about 1992 until now, 2013


그 완벽한 어둠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음산한 소리였다. 5미터 이상의 높은 천장을 가진, 사다리꼴로 좁아지는 방 안에서 CRT형식의 텔레비전 수 십대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비디오 클립들을 재생한다. 이들이 한 데 모여 만드는 충격적인 풍경도 그렇지만,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중첩된 청각 효과도 작품의 존재감에 무게를 더한다. 작가는 관객들이 이들을 단일한 덩어리로 인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에게 각각의 모니터는 서로를 침범하고 상호영향을 받는 현실-가상세계를 나타내는 듯 했다.


Through A Looking Glass, 1993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의 한 장면을 재생산한 Through A Looking Glass이 있다. 전시공간을 에워싼 네 개의 스크린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위협적으로 총을 겨누며 편집증적으로 추궁하는 장면이 수 초의 인터벌을 두고 무한히 재생되고, 그 각각의 총구가 향하는 건 맞은편 스크린의 자기 자신이다. 작품 속 거울은 1차적으로는 현실 세계의 상을 그대로 모방하는 매체이며, 2차적으로는 거대한 다른 세계로 통하는 창이다. 32세의 드니로는 거울 속의 자신, 혹은 다른 차원의 자신과 싸움을 벌이듯 끝없이 질문한다. 

“You talking to me?”

전시장 가운데 서서, 차례로 외쳐지는 네 번의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그리고 이윽고 네 개의 총이 차례로 관객인 '나'에게 향할 때의 감각은 실로 비현실 적이다.


오늘날의 거울은 흔한 생필품이지만 고든을 매료시킨 거울의 컨셉은 빅토리아 시대의 "looking-glass"에 가깝다. 거울은 다른 세계, 초월적인 영적세계 혹은 다른 차원으로의 창이며, 원초적인 신비감이나 공포감을 지닌 존재로 그의 작품에 거듭 등장한다.우리는 누구나 공포에 대한 거부감과 흥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공포감을 체험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놀이공원의 유령의 집을 찾아가고, 공포영화를 감상한다. 고든의 작품들은 대중의 공포감에 대한 원초적 흥미를 예술적으로 자극하는 동시에 모호한 질문들로 도전한다. 


전시의 제목은 (The Only Way Out is the Only Way In) 문자 그대로, 전시장의 물리적 성격을 반영한다. 전시에는 시작과 끝이 모호하다. 전시장에는 출구가 없는 하나의 통로 뿐이다. 관객들은 가장 캄캄하고 깊숙한 방까지 들어가서 네 개의 총구에 맞닥뜨렸다가, 작품들을 반대로 경험하며 밖으로 돌아 나온다. 우리는 고든의 내면 세계에서 거울의 끝에 닿았다가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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