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 하우스 조식은 와식(일본식)과 양식이 격일로 제공된다고 했다. 이런 디테일까지 기억난다니 정말 사진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어쨌든 18일 아침은 된장국과 주먹밥 계란 감자조림(분명 간장 베이스, 하지만 매우 달다)과 야채 피클. 간단하고 따끈한 가정식을 먹으니 약간 일본인가 싶은 기분이 들더라. 전날 밤 산책 때는 일본말로 라멘을 시켜먹어도 별로 일본 같지는 않고 그랬는데. 게스트하우스는 전 편에 나왔던 도쿄 게스트하우스 오우지 뮤직 라운지. 숙소는 그냥저냥, 하지만 아침밥은 괜찮음.
사진은 아이폰6s와 올림푸스 E-PL8 + Lumix G 20mm 1:1.7.
이 집 아침밥 잘하네. 커피도 그냥 커핀데 맛이 있네. 외국물이라서 그런가 봄
밥을 먹고 우리는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건물 덕후에게는 일본에 가면 보고 싶은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계획 실행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p인간인 나는 여행이 진행됨에 따라 즉흥만 남고 계획은 없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첫날 몇 개 구경하기로 했다.
이케부쿠로 역에서 도보로 가까운 거리에 '기린당 약국 (キリン堂薬局)'이 있다. 도쿄의 폐허 스팟으로 나름 알려진 건물인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넓은 대로변에 덩그러니 있는 2층 건물이 정말 이질적이다. 약 10년째 저 상태로 있다고 한다. 검색을 해봐도 왜 저 상태로 남아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방문자는 없는 듯했다. 위태로워 보이는 데 모쪼록 앞으로도 비싼 땅에 발 잘 붙이고 서 있길.
기린당 약국 등장.
겨울에 맑은 날은 빛이 찬란하게 찍힌다. 공기도 차고 해가 낮아서 그런 듯. 사진 찍기 좋은 날이었네.
다음 목적지는 본쥬코의 건물 두 채. 기린당 약국에서 도보로 대략 10분 정도 되었다. 아래는 가는 길 몇 장. 그런데 사진을 보니 정말 놀랍도록 기억이 생생히 난다.
근데 가는 길에 동네 신사 혹은 절이 있길래 들어갔다. 신사 이름은 '혼류지 (本立寺)', 방금 찾아 봄. 구글맵 후기에 따르면 일련종이라는 종파의 절이고 1926-44년 사이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본당 뒤편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동네에 그냥 들를 수 있는 묘지가 있다니 호주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은 삶 곁에 있는 것!
그런 사진은 여기 안 올렸지만 인기척도 있고 (스님이 마당을 빗질하고 계심) 생활감도 있는 절이다 (파란/초록 바가지 같은 게 이곳저곳 많음).
이 날, 혼류지 앞에는 수 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니 절에 들어갈 땐 몇 명 밖에 없었는데 나올 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 오늘 무슨 날인가 의아했는데 포켓몬 GO 플레이어들이었다. 대량 발생입니까 전설 포켓몬입니까. 점심시간 맞춰서 게임하러 나온 건지 매우 건전하고 훈훈하고 귀여운 풍경.
이게 다가 아님. 반대 편에도 최소 20명!
그리고 혼류지 바로 옆에 만나기를 고대하던 본 쥬 코 (梵寿綱, Von Jour Caux)의 '히라키야(平喜屋)'가 있다. 저 불어 같지만 같지 않은 이름은 건축가 다나카 토시로의 활동명이다. 한자 독음을 먼저 정하고 불어식 철자를 덧붙인 듯하다. 위키가 말하길 불교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a tight rope between blessed life and ultimate reality".
일본의 가우디를 목표로 창의적인 건물을 대거 디자인했고 미술공예 운동의 재부흥을 주장했다. 건물 외관뿐 아니라 하드웨어나 인테리어도 디자인했던 듯, 건물 전체가 유기적인 하나의 장식품 같다. 가우디가 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천재에 가깝기는 했던 것 같다. 흥미롭다! 이케부쿠로의 오피스 건물들 사이에서 정말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졌다. 실제로 보면 양감이 장난이 아님.
혼류지 바로 맞은편에는 본쥬코의 또 다른 건물이 하나 있다. '토쇼 빌딩 (東商ビル)'. 스케일은 히라키야보다 작은데 존재감 무시 못함. 로비는 뭔가 세기말의 한국 노래방 피시방이 떠오르기도 하고. 버블버블 버블팝 시대 느낌인가 싶은 극한으로 장식주의적인 건물. 모자이크와 로비가 인상 깊었다. 모자이크를 다 다르게 정사각 판에 오려 붙이고 또 그 사각판을 배치해서 붙이고. 이런 게 장인정신이라고 하는 거 맞나?
본쥬코의 작품집이 가지고 싶음.
그리고 동네에 매우 힙한 가게가 있는 공원도 있었는데 사진은 없다. 거기서 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띤떵훈이 밥을 주장한 것 때문인 것 같다. 이어서 점심을 먹으러 다시 이케부쿠로 역 쪽으로 갔다. 돈키호테를 구경한 사진도 있네. 약간 일본의 소울이 담긴 장소라고 생각하는 동키.
띤떵훈의 일본 버켓 리스트 중 하나였던 후지야/카츠야 방문하기를 이뤄주러 아마도 아래 건물에 있던 카츠야에서 점심을 먹었다. 2층에서 돈까스가 올라간? 곁들여진? 김치나베를 먹었다... 여러분 일본에서 김치나베 같은 거 먹지 말고 정통 일식 드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