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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m Oct 11. 2020

난데없는 일본 여행기 2-2화: 이케부쿠로-시부야

2017년 12월 18일 낮-밤, 산책, 죽지마

우리는 계획이 없는 여행자들이다. 보통 행선지와 꼭 봐야할 것들을 (내가 혼자서) 정하고, 사이의 계획들은 그때그때 얘기해서 즉흥적으로 채워 넣는다.

이케부쿠로에는 보고싶은 건물들이 더 있었지만 영 관심 없어하는 동행을 끌고 언제까지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며 토론을 했다. 이케부쿠로에 무었이 있느냐... 옛날 사람인 우리들은 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라는 낡은 드라마를 기억했다. 그럼 파크에 가느냐.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빈티지쇼핑이다. '후루기야(古着屋)'를 지도에 넣고 가까이에 있는 가게를 행선지로 지정했다.

사진은 올림푸스 E-PL8 + Lumix G 20mm 1:1.7.


가는 길에 만난 동경예술극장.

1990년 건조된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건축가는 아시하라 요시노부.

나중에 찾아보니 유리 천장이 있는 부분이 정면인 것 같았지만...


구글 내비는 이 건물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주택가 양쪽으로는 주로 2-3층 상가, 주택 건물들이 섰고, 가로에 주차장이 있고 그 뒤에 건물이 있거나 해서 길이 좁은데 답답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걸으면 분이 좋은인간적인 스케일의 골목들. 맑은 날이어서 햇살도 좋았다.

재미있던 건 곳곳에 있는 '튀어나오는 어린이 주의' 표지판.

아파트/다세대 단지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골목이 꺾어지는 곳에 심플한 단지도 있었다.



20분 정도 천천히 걸어 목적지로 지정했던 빈티지샵 BARO에 도착했다. 일본감성이라고 할만 한 꾸밈새가 매우 귀여운 가게였다. 옷은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고 특히 소품류가 가격이 나갔다. 적당히 구경하고 알바친구랑 수다도 떨다가 나왔다.

기차 선로 바로 앞에 있어서 기찻길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쁜 교회가 있었다. '도쿄이케부쿠로교회'라고 써있는 그리스도교단 교회였는데, 방주 모양을 형상화 한 상단부가 인상깊었다.

호주에서는 아무래도 19세기부터 지어진 교회 건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교세가 많이 약해져서 새로 지은 교회 건물을 자주 보기가 힘든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신식(?)이랄지 포스트모던한 교회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해가 져갈 무렵 시부야로 장소를 옮겨 이치마루큐와 주변의 가게들을 구경했다.

1968년 완공된 세이부 백화점 건물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프레이밍이 인상깊었는데, 검색해도 건축가가 나오지 않는다. 한 블로그에서는 설계자 불명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내 조사가 부족한 걸지도 모른다. 이런 모듈러/오거닉 한 디자인이 내 안에서 '일본건축'이라는 느낌이다. 1960-80년대 건축물은 문화재로 지정되기에는 어린 편이고 쉽게 촌스럽다고 여겨질 수 있어서 레노베이션의 희생양이 되곤 하는데 일본 여행에서는 보존이 잘 된 이 시기의 건물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쿄야마테교회'라고 써있는 1966년도 건물도 종교건물 치고 굉장히 특이했다. 건축가는 테루카즈 호시.



저녁 메뉴는 몬쟈야끼였다. 나는 오코노미야끼나 타코야끼류의 밀가루 베이스 일식을 싫어하지만 니가 먹고 싶다면 먹어야지. 맥주가 있다면 괜찮다. 매우매우 좁은 상가건물이었는데 정말 '외국 같았다'... 이렇게 좁은 계단... 불이 나면 어떻게 나가지 싶은... 재밌는 건물.

식사는 잘 했는데, 기분은 안 좋았다. 우리는 밥을 먹다가 핸드폰을 들어서 인터넷을 켰다. 샤이니 종현이 죽었다고 했다. 아니 그 종현이 자살이라고. 그 저녁시간에 느낀 기분은 한참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유한한 삶을 살지만 길지도 않은 생이 누구한테는 참을 수 없이 버거운 거라는 걸, 말뿐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했던 순간이었다. 도대체 어떡하면 사람들을 구하고 구해질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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