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 '내가 만약 마블 주인공(영웅) 이 된다면?"
마블 영화에선 특수한 능력을 갖춘 영웅들이 등장한다. 영웅의 능력이란 일상에서 보기 힘든, 사실 가끔 물리적 이론을 벗어나기도 하는 힘이라 생경하다. 하지만 영웅 자체는 꽤 친숙하다. 주인공들이 개인적인 욕심, 상처, 슬픔 등을 애써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영웅들은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 임무를 잠시 제쳐두거나 개인 감정에 자주 흔들린다. 그들이 곧 중심을 잡는 건 소명 덕분이다. 세계 평화, 사회 안정 같은 소명. 굳은 목표가 있으니 영웅은 언제고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다. 사사로운 감정에도 쉽게 흔들리고 업무 중에도 개인 감정을 소환하고 마는 내가, 영웅이 아닌 이유이기도 할테다. 나에겐 뭐 특수한 능력도 없지만, 무슨 거국적인 목표도 없다.
그래서 ‘마블 주인공이 된다면?’이라는 가정은, ‘거국적인 목표를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만 답할 수 있다. 거국적인 목표... 평소 이타적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지는 생각을 못해봤다. 사회에서 보니 누군가에게 이로운 건, 누군가에게 해로운 방식으로 엮여있는 일이 많던데 그걸 전부 따지고 판단하면서 나의 실력 발휘가 ‘이타적’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더 나아가서 ‘판단은 본부가 한다’ 거나, ‘누가봐도 절대 악 같은 악당을 처리해야 한다’ 고 가정한대도 그 일을 하다가 내 소중한 것을 잃게 될까봐 망설이고 고민하게 된다. 한 마디로 영웅이 되기엔, 생각이 많다는 얘기다.
용기,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나에게 없는 게 용기라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정말 멋이 없는 인간인 것도 알게 됐다... 만약 새로운 영웅을 만들기 위해 어떤 기지 같은 곳에서 능력을 부여하는 면접 같은 걸 봤더라면 (일명 영웅 면접) 진작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럴 거면, ‘영웅 면접’ 같은 건 보러 가지 않을 거 아니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질문을 이어봤다.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영웅 면접 그딴 데는 왜 간 거냐고.
적어도 사람들이 노력한 만큼 얻고, 법 앞에 평등하고, 소소한 행복과 불행을 겪어내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맨날 시사 잡지도 정기구독 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단체에 후원도 하면서 살고는 있다. 소명까지는 못 갔지만, 나 개인의 즐거움말고 더 큰 단위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뻗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공동체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런 마음은 언제고 있다. 목숨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예를 들어 나 대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거나,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로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마블 영화의 주인공이 될 법한 영웅보다는, 그 옆에 조력자를 꿈꾸게 된다. 이를 위해 '국가적 위기'나 '악의 기운'을 영웅보다 좀 더 빨리 감지할 수 있게 되길 바라게 된다. 영웅을 돕다보면 시간 맞춰 출퇴근 하는 일이 어려울 순 있겠지.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으니 기회가 온다면 나를 영웅 조력자로 뽑아달라고 말해볼 것이다.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중에는 일명 ‘악 감지력’이 나에게도 소소한 도움이 될 것이다. 악의를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피하는 정도의 남용은 회사에서 허락해주겠지... 아무튼 영웅이 온 나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칭송받을 때 뒤에서 조용히 웃으며 힘껏 박수치고 싶다.
유명세를 치르지 않으면서도 선한 방향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내겐 있다. 다만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영웅이 먼저 등장해야 한다... 영웅이 언제 등장할 지 알 수 없으니 실제 그런 날이 올 때 까지 미리 연습이라도 해 볼까 싶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런 거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함을 인지하기. 항상 깨어 있기. 그리고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개인으로서 뭐라도 하기.
아무튼 영웅이 아닌 서민도, 선한 방향으로 살려면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낼 수 있는 가장 큰 용기를 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