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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Nov 03. 2023

너의 첫 번째 생일 선물

곧 태어날 아이의 출산 택일 날짜를 받았다

 요즘 나의 관심은 곧 태어날 둘째의 생일이 언제가 될지에 집중돼 있다. 아이의 출생 예정일은 내년 1월 9일. 그러나 예정일에 딱 맞춰 나오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건 인간이 편의상 맞춘 날짜이고, 애는 그냥 자기 때가 되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정일을 기준으로 2주 전(임신 38주)까지는 만출, 그러니까 자기 주수를 다 채워서 나왔다고 보기 때문에 계획된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 보통은 임신 38주를 기준으로 날짜를 잡는다. 너무 늦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가 양수가 터지거나 하면 진통을 다 겪게 되거나 계획이 틀어진다. 나는 첫째 때 수술을 했으므로 둘째도 제왕절개 수술로 낳아야 한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언제로 잡을 것인지, 그전에 아이가 나오진 않을지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아이의 38주는 12월 말경이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태어나게 하기는 싫다. 아기들은 거의 만 2세까지는 생후 몇 달 차이가 큰 차이로 이어진다. 12월에 태어나면 한동안 해당 연도 또래보다 몸도 작고, 느리게 커 갈 가능성이 높다. 아이야 뭘 알겠냐만은 그 모든 걸 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달랐다. 우리 아이만 늦게 자라는 것 같은 초조함을 견디기 싫다. ‘제발 1월에 태어나라.’ 맘카페 같은 곳을 둘러보면 출산 예정일이 연말~연초에 걸친 산모들 마음이 다 비슷한 걸 알 수 있다. ‘엄마 마음은 다 같아’라는 말을, 본질은 좀 달라진 것 같지만, 실감한다.



 그래서 얼마 전엔 아이가 39주, 즉 내년 1월에 태어나길 바라어떤 역술원에 연락을 했다. 좋은 수술 날짜를 잡기 위해서다. 이곳은 인터넷으로 대략 검색했을 때 후기도 괜찮고, 가격도 나름 합리적인 곳이었다. 인터넷으로 의뢰한 뒤 돈만 계좌이체 하면 전화 몇 통과 함께 간편하게 택일받을 수 있다. 해당 사주원의 편의성과 장점은 1년 전쯤 이미 다 검증을 마친 상태였다. 바로 첫째가 태어난 날을 잡을 때도 이곳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왜 아이를 낳는데 택일까지 필요한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내 짝꿍이 그런 사람이라 그에게는 비밀로 이런 일이 진행된다. 사실 나도 4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선지 나조차도, 제왕절개로 태어났지만, 택일 없이 태어났다. 당시 엄마는 딱히 믿는 종교가 없었는데도 소위 좋은 날을 받지 않았다. 병원에 함께 간 시어머니가 (나한텐 할머니) “우린 그런 거 안 믿습니다. 천주교 집안이라서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병원 편의에 맞는 날짜, 시간에 내가 나왔다. 그리고 그게 그대로 내 사주, 즉 운명이 됐다.


 그러나 만약 엄마가, 내 사주를 가지고 몇 년을 안타까워할 줄 알았더라면, 엄마는 시어머니를 어떻게든 이겨서 택일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제법 공부도 곧잘 하는 것 같던 딸(나)이 입시 문제, 취업 문제로 유독 골머리를 썩다. 엄마가 보기에 딸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은데도 성과가 약했다. 답답해서 역술가를 몇 번 만나 물었더니, 그게 다 내 사주 때문이라는 말을 들다.


 사주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내 사주가 그렇다고, 무슨 운이 약해서 노력에 비해 결실이 없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그 말들이 마음에 콕 박혔다. 혹시나 당신이 아이의 오복 사주를 다 따져 출생날짜를 잡았더라면, 우리 딸아이가 지금 좀 더 수월하게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내가 노력을 덜 한 거야’, ‘운이 없었던 거지.’하며 엄마를 달랬다. 그러나 수년이 흐르고 나는, 다시 택일을 받는 엄마가 된 것이다. 정말로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할 뿐 아니라, 어쩌다 오는 작은 시련에도 우리 엄마나 사주를 탓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무튼 그렇게 해당 역술원을 두 번이나 이용을 하고 있지만, 나는 무척 퉁명스러운 손님이었다. 택일 해준 분은 먼저 문자로 자신이 택일한 날짜와 시간을 보내줬고, 이후 전화 통화를 통해 나름대로 자기가 택일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봤자 ‘부모의 사주를 고려하고, 오복이 다 든 날짜로 골랐습니다.’라고만 말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전화를 해야, 더 의미 전달이 잘 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역술가는 목소리부터 연륜이 묻어났고, 느릿느릿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인사치레 같은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조금 따졌다.


 “선생님, 근데요. 두 개 날짜를 주셨는데, 이게 어떤 날에 태어나면 풍요롭게 사는 사주고, 어떤 날에 태어나면 공부 머리가 있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냥 오복 사주라고만 하시면 제가 어떤 날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인데요.”


 “아기 태어난 날 택일로는 그런 걸 다 알 수 없어요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 사주를 운운하는 게 적절치도 않고, 응? 그냥 엄마랑 아빠의 사주 궁합과 수술하기 아주 어렵지 않은 시간대, 그리고 오복이 다 모여 있는 날, 그런 걸 고려해서 택일하는 거지이. 아유.”


 실제로 어떤 역술가는 택일을 하면서 언제 아이를 낳으면 머리가 총명할 거고, 언제 낳으면 지혜롭게 어려움을 극복한다면서 스토리텔링하기도 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모든 예시를 다 확인해 둔 터였다. 그러나 내가 택일을 받은 역술가는 그런 게 없다며 단호했다. 아마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구시렁거렸을지 몰랐다. 자기가 택일해 달라고 전화해 놓고는 왜 엉뚱하게 따지누.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 운명을 다 결정지어보려고 하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신앙이면서 사주 맞춤형 택일을 했다는 약간의 죄책감과, 후기 임산부 특유의 예민함이 더해졌던 것 같다(고 변명을 해본다. 죄송합니다...)



 그렇게나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던 내가 또 그에게 둘째 아이의 생년월일을 맡기다니. 심지어 이번엔 1년 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계좌이체를 했다. 몇 분 뒤 바로 연락이 왔다. “아이고~ 첫째는 잘 커요? 둘째가 또 나오는군요오. 축하합니다아.” 그는 여전히 느릿느릿하지만 특유의 친절한 말투로 택일에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나도 이번엔 더 사근사근하게 답했다.


“네에. 감사합니다. 덕분에요. 이번에는 아이 예정일이 내년 1월 초인데요...”

“내일 중으로 택일해서 문자 남길게요. 네에. 네에.”


 이번엔 어떤 의심도, 터덕거림도 없이 쉽게 통화가 끝났다. 사주를 믿든 말든, 그를 인간적으로 신뢰하든 말든, 그건 내 사정이고 아이에겐 그냥 무조건 뭐라도 좋은 걸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면서 둘째도 재미로든 뭐든 자기 사주를 볼 텐데 좋은 말 들으면 좋겠지. 그 값을 한다면 그깟 몇 만 원쯤 낼 수 있지.’  엄마라는 이름은 이렇게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일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사람인데, 이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달만 잘 채운다면 이 아이가 내가 애써 정한 그 날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나온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좋은 날이라고 받았었는데 네가 그냥 나왔어. 그러니까 넌 날 때부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태어난 거야.’ 말해줄 수 있을 테니까. 인생 결정자, 인생 개척자에게는 모든 게, 심지어 좌절도, 신나는 모험일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건 그것대로 멋져서 잠시 아이가 나의 택일은 무시하고 태어나는 걸 상상해보기도 한다.


아무튼 곧 태어날 아이의 첫 생일 선물로 오복을 갖춘 사주를 준비해 뒀다. 그리고 혹시 아그걸 받지 않고 싶어할 경우에 대비해 또 다른 생일 선물, 인생 개척자라는 명칭 준비했다. 실제 받게 될 것이 무엇이든, 아이가 선물을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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