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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l 26. 2021

태도에 이름

좋은 브랜드 이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견해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스쳐 지나간 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 거야" 어느 날 입은 불현듯 장범준의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주인공이 '트리플 덴 껌~' 하며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중얼거리듯 말이죠.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이 노래 제목이 뭐였지? 뒤적뒤적 음원사이트에서 곡 명을 찾아봅니다. 곡 이름은 다름 아닌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뭐 이런 제목이 다 있지? 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칩니다. 곡명답지 않게 기-인 이름이지만 생각해보면 장범준 님의 성격만큼이나 신박하고 쉬운 제목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곡의 노랫말과 멜로디는 기억하지만 곡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가장 흥얼거릴만한 가사 자체를 곡명으로 결정해버린 장범준 님의 결단력과 단순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 일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좋은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강박에 자주 시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좋은 이름이란 무엇인가? 당시 팀장님이셨던 분이 주신 디렉션은 다름 아닌 KISS 원칙, 즉 Keep It Simple & Short. 거기에 사실 'S'가 하나 더 붙어야 합니다. 바로 'Safe'. 상표등록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KISSS 원칙이겠습니다. 네이밍 원칙을 칭하는 이름만큼이나 심플하고 섹시하며 짧아서 기억 용이성이 좋은 가히 판타지적인 이름을 만들고 찾는 것. 그러면서도 제품과 서비스의 효익이 바로 연상되는 이름. 2-3음절의 심플한 이름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등록된 수많은 비스끄무리한 이름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뜻과 다름없었습니다. 많이 싸웠고, 이기고 졌으며, 죽고 다시 살아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2021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소위 요즘 브랜드 네임들은 어떨까요? 개인차가 있겠으나 요즘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의 이름은 모두 이런 식입니다. BETTER THAN ALCOHOL (베러댄 알코올 - 티와 향을 만드는 F&B 브랜드), Base is nice (베이스 이즈 나이스 - 채소 친화적 식문화 공간), Johnny hates jazz (쟈니 헤이츠 재즈 - 의류 브랜드), thisisneverthat (디스 이즈 네버 댓 - 의류 브랜드), DO YOU READ ME? (두유 리드미? - 베를린 소재의 서점 브랜드), wit & cynical (위트 앤 시니컬 - 시집 전문 서점 브랜드), notours (낫 아워스 - 비건 패션 브랜드), incompletetable (미완성 식탁)까지. 앞서 얘기한 KISS의 원칙과는 사뭇 거리감이 있어 보이지 않는지요? 무릇 브랜드 이름이란 간결하고 심플하며 짧아야 할 터인데 말이죠. 심지어 브랜드 이름이 하나의 문장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이는 획일화된 기준을 벗어나 세대와 인종, 가치관을 넘나드는 다양성의 가치가 네이밍 트렌드에도 반영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과거에는 '임팩트'있고 '심플'한 이름이 좋은 이름의 대명사였다면 지금 사람들이 애정을 느끼고 관심을 기울이는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만드는 이의 생각과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정수'도 좋지만 나다운 '한 수'의 이름이 주는 매력과 울림   


베러댄 알코올 브랜드의 대표님이 정말 술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이름을 보면 내 안에 있는 어떤 공감의 지점이 뾰족하고 올라오면서 '그래, 꼭 술이 아니어도'라는 생각과 함께 그 브랜드가 제공하는 블렌딩 티와 향, 디저트를 기쁜 마음으로 향유하게 됩니다. 베이스이즈나이스 (Base is nice)는 건강에 좋은 제철 채소로 쉽고 심플하며 아름다운 식사를 제공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채소 친화적이라는 브랜드의 문구가 이해되면서 채소를 대하는 브랜드 주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디스이즈네버댓 (thisisneverthat)은 또 어떻고요. 이 브랜드 네임을 처음 마주했을 때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지조 있는 캐릭터가 벌써부터 느껴집니다. 지향하는 스타일에 대한 날 선 결심, 하나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섬세함까지 느껴지는 새로움입니다. 

집 근처의 서점이라 특별히 편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 앞에 있는 시집 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 (wit & cynical)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아, 이건 시집 서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갖는 함축성, 그것으로 인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숨은 우주를 느낄 수 있는 잠시의 공기를 선물로 주는 글. 삶의 어려움과 세상의 부조리를 은유와 직유로 직조하며 해학으로 승화하는 위트의 문학. 시라는 것을 이렇게 위트 있고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서점 이름이 또 있을까요? 이번에는 저 먼 나라 독일의 베를린으로 가볼까요? 베를린의 서점 두유 리드미(Do you read me?)라는 이름은 'read (읽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감성적인 의문형 문장으로 완성함으로써 전지적 책 시점에서 "나를 읽어줄래요?"라고 물으며 나도 모르게 서점으로 발 끝이 향합니다. 또한 책을 읽는다는 1차적 의미를 넘어 "내 마음이 이해가 가나요?(Do you read me?)"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는 효용 높은 이름입니다.


비건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notours)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인 '비건'을 이 지구를 살아가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생각한 이름입니다. 'the earth is not ours', 즉 이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브랜드가 지향하는 태도를 독특한 시각으로 담아낸 이름입니다. 미완성식탁 (incompletetable)은 컬러감과 비주얼이 예술적인 마카롱 브랜드로, 이 브랜드를 완성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이 아닌 먹는 사람이라는 겸손한 철학을 가진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never', 'not', 'incomplete'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이름에 쓰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다면, 이제는 브랜드를 만든 이가 그러한 부정적 의미의 부사와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이 브랜드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하는 데 적확하다면 크게 망설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회적 포용성이 높아졌다는 반증일 수 있겠습니다. 문장형이 아니면서 브랜드의 지향성을 매우 명확히 보여주는 브랜드도 있죠. 바로 파타고니아(Patagonia). 때 묻지 않은 환경을 상징하는 파타고니아 지역명을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환경을 위해 일하는 의류 브랜드로서의 결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물론 모든 카테고리의 이름들이 문장형이거나, 날 선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거나, 상징적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과거의 브랜드가 '멋져 보이는 프리미엄'으로 사람들의 옷과 가방의 역할을 했다면 이제, 그리고 앞으로는 다양한 가치관과 세분화된 취향만큼 브랜드도 범용성을 넘어 한 사람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뾰족한 지향성과 그 브랜드만의 인간적인 색깔을 가져야 오래 기억되고 살아남는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행을 무작정 따라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그 브랜드만의 색깔과 지향성을 여전히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할 수 있는 이름인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 가 닿아도 좋을 이름인가라는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그 브랜드를 만든 이, 그리고 만들어갈 이들이 계속 좋아할 수 있는 이름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설립한 저의 1인 기업의 이름을 소개할까 합니다.(네? 갑자기요?) 제가 만든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이름은 낫에이벗비 (not a but b)입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쉬운 작업이 바로 "우리 브랜드가 지향하고 싶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것을 정의할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To define who you are is to deny who you are not.)"라는 기업 철학을 만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내가 나만의 브랜드 (B)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어떤 것 (A)을 정의하고 좁혀 나가는 것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기초이자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시 '꽃' -


나 또는 우리 브랜드의 이름은 어떤 지향성과 태도를 취하고 있나요? 모두가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좋은 이름을 찾는 것에 앞서 우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톤의 언어로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브랜드 이름을 만들 때 해야하는 가장 첫번 째 일입니다. 모든 브랜드가 각기 자기답게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나기를 바래 봅니다. 

Brand Inspirer, 김 혜 원 
Founder of brand consultancy, not a but b (nabb) 
hyewonaloo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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