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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ug 03. 2021

하이 퍼포먼스 홈

다중 인격 공간을 살아가는 MZ세대의 '집'에 관한 이야기

    “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남진 님의 곡 ‘님과 함께’의 첫 가사입니다. 트로트 특유의 간드러진 꺾임과 흥겨운 리듬을 제거하고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작은 집 한 채는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낭만이 아니었을까요. 학자금 대출을 채 갚기도 전에 매달 월세 걱정을 해야하는 지금의 사회초년생들에게 자가 소유는 품을 수 없는 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기거할 수 있는 집은 ‘채’가 아닌 ‘칸’ 혹은 ‘실’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집이 해야 할 역할은 더욱 다양해 집니다. 다양한 스펙을 쌓아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high-performer”가 되어야하는 청년 세대들. 그들의 집 또한 “high-performance home”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다중인격 공간 - 멀티 페르소나 홈 (Multi-persona home)  


미디어의 파편화, 다양성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나타난 현상, 부캐 열풍. 몇개월마다 캐릭터를 바꿔가며 변신을 거듭하는 유재석의 Yooniverse, 쿨제이와 최준을 넘나드는 김해준. 내가 나이면서 내가 아닐 수 있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과연 집은 어떨까요?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집의 역할 또한 멀티 페르소나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자다 깨 급하게 세수만 하고 자켓만 얼른 걸쳐 입고 진행하는 화상회의하는 나’부터 ‘홈트(홈트레이닝)하는 나’, ‘홈뜰리에(홈+아뜰리에)에서 작업하는 나’, ‘홈바에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나’까지. 일/놀이라는 이중인격을 넘어 집은 다중인격 공간으로 진화 중입니다. 


작은 공간의 반란 - 접고 펴고 (Fold & Unfold)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조용히 사는 것도 훌륭한 삶의 방식이겠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교감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이 전원에 홀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도시에, 그것도 직장에서 너무 멀지 않아야 하며, 주거비도 크게 부담이 없어야 하는 청년들의 첫 집. 그렇기에 그들의 방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도심 집중화되는 주거로 인해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지만 작지 않은 공간 경험을 디자인하는 NTS (Never Too Small)는 다양한 가변형 가구와 공간 분리 아이디어를 통해 공간은 작지만 주거의 질은 높은 경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면시간 외에는 Wall로 존재하는 폴딩 베드부터 미닫이문 하나로 주방과 침실을 완벽히 분리하는 방법, 반닫이문의 선반으로 편리한 조리 동선을 제시함과 동시에 반닫이문을 닫으면 주방의 번잡함이 사라지는 마법, 평소에는 바닥이었던 마루가 필요할 땐 책상이 되는 새로움. 펼치고 접고, 밀고 닫는 상상력을 통해 작은 공간은 넓고 유연한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다양한 상상력으로 좁은 공간을 좁지 않은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실험을 제시하는 NTS (Never Too Small)


경계를 넘나드는  - Borderless Experiment  


그런가 하면 사적인 공간으로만 간주되었던 집이 공적인 공간으로 임시 변화하는 일들도 눈에 띄고 있습니다. “남의집 프로젝트”에서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내 집에 초대해 흥미롭게 낯선 경험을 나눕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2시간짜리 에어비앤비라고도 할 수 있겠죠. 팬데믹으로 인해 공공 공간에서 전시를 열기 어려워지자 건축가 올리비에 가체는 뉴욕 웨스트빌리지에 자리한 자신의 원 베드룸 아파트를 쇼룸으로 사용합니다. 정제된 공공 공간이 줄 수 없는 집이라는 공간의 자연스러움 속에 다양한 작품과 가구, 소품이 전시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음 회차의 디자이너, 아티스트의 전시가 개최됩니다. 


신세계건설의 주거 브랜드 VILLIV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내 아티클 "갤러리로 변신한 뉴욕 아파트" 중


젊기에 좁아도 참고 사는 삶이 아닌, 좁아서 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펼쳐내고 사적인 삶과 공적인 관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금의 청년세대. 이들이 MZ세대로 불리는 것은 단순히 밀레니얼(M)과 X/Y세대를 잇는 연령상의 Z세대라서만이 아닌, 좁은 공간, 시대적 한계를 모두 뛰어넘는 “Maximal Imagination, Zero Limit”의 세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계를 넘어 무한을 상상하는 MZ세대의 집이 더욱 행복한 공간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Brand Inspirer, 김 혜 원 

Founder of brand consultancy, not a but b 
hyewonaloo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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