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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02. 2022

희녹, 새로운 카테고리가 되다

스몰 브랜드가 새로운 카테고리에 깃발을 꽂는 방법 


어떤 브랜드가 떠오를 때, 저는 몸으로 먼저 알아채는 편입니다. 매출이나 투자 유치 같은 숫자로 증명될 정도면 이미 많이 자란 브랜드죠. 갓 태어난 브랜드가 어떤 아우라를 뿜어내는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를 초기에 감지하는 촉. 브랜드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그 촉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2021년 4월에 런칭한 희녹이 제겐 그런 브랜드였어요. 궁금해졌어요. 왜 출시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브랜드를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 알고 주목하고 있는지.


화장품 전문가, 새로운 카테고리를 발견하다

희녹을 만들고 런칭한 박소희 대표는 19년 동안 화장품 업계에서 일한 베테랑이에요. 로레알의 키엘,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등을 거쳤죠. 회사를 다니면서도 늘 마음 한 켠에서 창업을 꿈꾸고 있었다고 해요. 아모레퍼시픽에 다닐 때 상품개발BM팀장직을 지원한 것도,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배우고 싶어서였습니다. ’마흔 한살이 되면 퇴사해 내 사업을 한다’는 계획을 품고 있었고, 창업 8개월만에 희녹을 런칭했습니다. 


여기서 질문. 화장품 업계의 베테랑이 왜 탈취제를 출시했을까요? 탈취제는 생활용품 카테고리잖아요. 

박 대표는 처음부터 스킨케어나 메이크업 제품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대요. 이미 좋은 제품과 브랜드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죠. 탈취제에 주목하게 된 건 2019년에 아이 돌잔치를 준비하면서였다고 합니다. 잔치 답례품으로 손소독제를 준비하려 했는데, 화학 성분이 너무 많았거든요. 박 대표는 그때 깨달았대요. 화장품도 생활용품도 아닌 새로운 카테고리가 필요하다는 걸요. 박 대표는 희녹을 ‘라이프 에티켓Life Etiquette’ 브랜드라고 불러요. 에티켓은 예의라는 뜻이잖아요. 나와 상대방, 그리고 사회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한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아이를 낳고 깨달은 것은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더불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이 에티켓이라고 생각했죠. 매너는 지키면 좋은 것이고, 에티켓은 꼭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연을 위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희녹의 목표예요.”


누가, 왜, 어떻게 : 좋은 브랜드에 있어야 할 세 가지


퍼블리싱Publishing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제조와 유통 과정이 플랫폼화된 시대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화장품이나 패션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좋은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죠. 박소희 대표는 키엘을 마케팅할 때 좋은 브랜드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제품 개발 과정, 그리고 로컬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DNA가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브랜딩을 할 때 늘 거창한 걸 원해요. 수익의 얼마를 기부한다는 식으로요. 키엘에서 배운 건 규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있는 일이라면 규모에 상관없이 해야 하죠.”

박 대표가 좋아하는 배나무 이야기가 있어요. 키엘이란 브랜드는 뉴욕시 이스트 빌리지의 한 약국에서 출발했어요. 약국 모퉁이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였대요. 그런데 1967년에 이 나무가 마차와 부딪히고는 앓다가 죽어버린 거예요. 키엘은 2003년에 네덜란드에서 같은 품종의 배나무를 구해와 그 자리에 심었대요.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스토리가 알려지면 저절로 마케팅이 되거든요. 원재료를 고르는 과정, 용기를 고른 이유가 다 설명되어야죠.”

‘더 스프레이’는 100% 편백수입니다. 제주 애월의 편백나무에서 수증기로 성분을 추출했어요. 박 대표는 창업 전 3년 동안 이 원료를 찾아다녔다고 해요. 인상적인 건 원료를 만들기 위해 멀쩡한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는 거예요. 편백나무는 자랄 때 원래 가지치기를 하거든요. 그렇게 쳐낸 가지로 원료를 만듭니다. 자연에서 답을 찾고, 자연을 위한 답을 찾는다는 사명을 그대로 실천하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희녹의 원료는 제주 애월의 30년 수령 편백나무에서 나온다. 가지치기를 할 때 나온 가지에서만 편백수를 추출한다 


디자인 : 스며드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희녹이 참신하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는 디자인이에요. 탈취제는 원래 기능성 제품이잖아요. 예쁠 필요가 없죠.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고르니까요. 희녹의 고객들이 SNS에 남긴 평가를 좀 볼까요. “네이밍이 단편 소설 여자 주인공 이름 같다.”“탈취제를 자꾸 사진찍는 나를 발견한다.” 희녹은 완전히 감성적인 브랜드로 다가간 거예요.

브랜딩과 관련해 박소희 대표가 추구하는 키워드는 ‘스며들다’래요. 

“보통 소독제나 생활화학용품은 (예쁘지 않으니까) 서랍 안에 넣어놓잖아요. 자주 써야 하는데 안에 있으니 안 쓰게 되죠. 그래서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리고 어떤 공간에 있든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원했어요.” 스며든다는 키워드를 박 대표는 FGD*에서 찾았다고 해요. 오래 뷰티 업계에 몸담은 그는 ‘항상 소비자의 말을 먼저 듣는다’는 철칙이 있었다죠. 디자인 목업mock-up·모형을 만들기 전에 실행한 FGD에서 중요한 발견을 합니다.

“처음 잡은 디자인은 제품이 좀 더 돋보이는 쪽이었어요. 그런데 FGD에서 발견된 희녹의 이미지는 ‘진중함’이더라고요. 그러면 디자인이 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공간에 있어도 자연스럽게 묻히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죠.”

키 컬러Key Color인 딥그린은 편백숲에서 가져왔습니다. 더 스프레이를 뿌리면 어슴푸레한 느낌이 들죠. 새벽의 안개 자욱한 편백숲처럼요. 진중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용기 모양도 밑바닥이 묵직하게 디자인했습니다. 바랄 희希, 푸르를 녹綠. 희녹이라는 이름도 뭔가 한끗이 다르죠. 경계가 모호한 브랜드의 특성이 이름에서도 드러나길 원했대요. 직관적이지 않은, 그러면서도 튀지 않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고 합니다. 

브랜드의 런칭 행사가 열렸던 탈로서울


채널 전략 : 잘 팔릴 곳보다 친구가 될 곳을 찾았다

희녹은 인디 브랜드입니다. 밀어줄 뒷배가 없죠. 그런데 대형 채널에 기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인플루언서 광고를 하지 않았대요. 대형마트에도 아직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단기간에 올라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더 많이 팔 수 있는지’ 보다 ‘브랜드를 더 탄탄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따져 마케팅과 유통 채널을 고르고 있어요.”

희녹이라는 브랜드에 친구를 찾아준다는 심정으로 유통·마케팅 파트너를 찾는다고 합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보이잖아요. 희녹이 어디와 손잡는지를 보면 자연스레 희녹이란 브랜드의 정체성이 드러날 거란 거죠. 예를 들어 볼까요. 2021년 4월, 브랜드를 런칭한 곳은 탈로서울입니다. 가로수길의 30년된 빌라를 핀란드식으로 개조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요. 가구·조명·인테리어에 핀란드 건축 거장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정신을 녹인 공간이에요.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공간이고요.

6월에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린 ‘정원만들기gardening’ 전시회에 ‘희녹정원’이라는 팝업스토어를 열었어요. 지금 희녹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코오롱의 의류 매장 에피그램, 유보라 디자이너가 만든 보마켓, 앨리웨이 광교의 편집샵 식물원, 침구 매장 식스티세컨즈 등이에요. 희녹이 처음 브랜드의 친구로 생각했던 곳은 보마켓·식스티세컨즈, 그리고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였는데요, 신기하게도 이 세 브랜드가 모두 먼저 제휴를 하자고 연락해왔다고 해요.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알아보게 되나 봅니다.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린 '희녹정원' 팝업스토어


마치며 : 희녹의 과제들

성공적으로 런칭한 브랜드이지만 그만큼 고민도 커 보입니다. 첫째, 지속가능성이란 키워드가 너무 흔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속가능성은 이미 화장품 업계 전체의 화두죠.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말해요. 이 키워드의 식상함을 딛고 어떻게 계속 새로운 이미지를 입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포인트입니다. 


둘째는 낮은 진입장벽입니다. 코로나 이후 많은 항균·탈취 제품이 쏟아져 나왔어요. 희녹이 내세우는 100% 편백수 탈취제도 너무 많죠. 네이버 쇼핑에서 ‘100% 편백수’를 검색하면 비슷한 제품이 300개 넘게 뜹니다.

생활용품은 상대적으로 카피copy·복제도 쉬워요. 희녹처럼 감각적 용기의 탈취제가 우후죽순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희녹의 경쟁력이 남다른 브랜딩인 만큼, 앞으로는 어떻게 남다름을 지켜나갈지가 관건일 거예요.

나와 타인,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미로 브랜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희녹이 앞으로도 그만의 라이프 에티켓 카테고리 브랜드로 건강하게 성장해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본 컨텐츠는 롱블랙과 낫에이벗비의 협업으로 작성된 콘텐츠이며, 저작권은 롱블랙과 컨텐츠 제공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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