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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ug 02. 2018

브랜더의 발췌독 1. 아무튼, 서재

당신만의 서재를 갖는 일에 대하여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때에 맞춰 점심을 먹고, 늘 가던 까페에 가서 아이스 플랫화이트를 홀짝이며 후배와 대화를 나눈 오후였다. '밀리터리'라는 영역에 유난히도 애정과 덕후감을 두껍게 갖고 있는 후배의 열변을 들으며, "그래! 네가 제일 좋아하는 바로 그것을 컨텐츠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봐. 밀리터리푸드, 세계대전이 현대사회에 끼친 문화, 사회, 패션, 경제에의 영향, 밀리터리 굿즈, 밀리터리 피규어까지."라고 호응해주었다. (물론 밀리터리 피규어 사진을 보여주며 군복을 갈아입힐수도 있어요. 원래 인형은 나체에요. 라는 후배의 말을 듣는 순간. 얘 뭐지. 인형놀이인가. 싶었던 잠시의 기분도 잊을 수는 없겠다만)


이렇게 지지와 긍정의 눈빛을 쏘아주자, 후배는 말했다. "실장님도 책 많이 읽고 좋아하지 않으세요? 저는 어떤 책 읽어야할지 잘 모르는데 누가 친절히 소개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실장님도 책 골라주는 걸로 뭔가를 해보시면 어때요?". 그런가? 사실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기는 한다. 나만의 북리스트 색깔도 어느정도는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에이,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걸." 라고 손사레를 쳤다. 그러면서도 퇴근길 아이폰 메모장에 벌써 내가 읽는 책에서 영감을 받은 문장들만 간단히 발췌해서 기록에 남기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의 네이밍을 끄적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브랜더의 발췌독" 


누군가는 시시해할지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 다음 문장으로 쉬이 넘어가지 못하고 두번, 세번 문장을 되뇌이는 그 1분간의 사적인 정적의 기쁨을. 그 기쁨을 누군가는 좋아해주고. 또 좋아해주지 않는들, 내 다이어리의 기록에는 남을테니 그또한 부질없는 일은 아닐터. 내가 읽는 바로 지금의 책에서 나를 붙잡은 문장들을 발췌해 기록해볼까 한다. 


그 첫번째 책이 바로 김윤관 목수의 '아무튼, 서재'


나무를 다루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였을까. 아니면 심란했던 마음을 달래러 들린 '파르크 서점'에 곱게 뉘여있던 이 책의 정갈한 표지디자인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가볍고 적당히 작은 사이즈의 심플함 때문이었을까. 아이를 재우고, 오롯한 나로 돌아오는 이 밤시간에 읽는 이 책의 문장들은 그것을 되뇌이고 곱씹는 1분간의 정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발췌문 1. 자기만의 책상을 갖는다는 일에 대하여 

"내가 나만의 서재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별볼일 없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을 것이다. 

 서재는 공방의 연장이며, 공방은 서재의 확장이다. 

 한국의 목수 중 자신이 만드는 가구의 미학을 스스로 규정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공방만 있을 뿐 서재가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자신만을 들여다보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이 얼마나 될까. 일이 됐든 취미가 됐든 외부의 모든 방해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보는 데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발췌문 2.  미니멀리즘에 대하여 

"채워보지 못한 사람이 비우기부터 한다는 것은 체르니도 연주하지 못하면서 피아노부터 부수는

 행위예술가처럼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어지러움에는 어지러움의 미학이 있다. 깨끗하게 계획된 신도시의 아름다움 외에도 

 스스로 태어나고 성장하며 어지러이 생성된 구도시 달동네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다"


온 세상이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에도 미니멀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드는 요즘. 채워보지도 못했는데 비우자고 하는 외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 


발췌문 3. 조선시대 사랑방과 서재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랑방에서 학문에 정진했으며 

 신독(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음)에 이르기 위한 수양에 힘썼다. 

 또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 행위를 하며 사람들과 교류했다. 

 사랑방은 도서관이자 명상센터, 아틀리에이자 살롱이었다. 요즘말로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한 것이다"   

 

 과거의 무엇을 '오늘날의 그것'으로 치환해 설명해주는 친절함. 아! 그랬겠구나 싶은 공감의 미소가 지어질 때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낀다. 사랑방이란 참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게로구나. 


발췌문 4. 공공의 서재, 도서관의 의미에 대하여 

"도서관은 사라졌을 기억들을 수납하는 공간이다. 

 뱉어지고 사라졌을 말들이 문자를 통해 종이에 기록되고 책으로 묶여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소멸을 거부하고 기억되기를 바라며 서 있지만 전해져 이어지는 기억은 그들이 원했던 모습은 아니다. 

 도서관은 쓰인 것들에 대한 기억과 망각의 변주이다." 


선택한 문장들의 공통점을 보면, 무언가를 바라보는 나와 다른 '시선' 혹은 '색다른 공감의 지점'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또 좋은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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