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쉽고 직관적인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 만들기
<디자이너의 보잘 것 있는 에세이>는 제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보잘 것 없는 순간도 꾸준히 기록해 돌이켜볼 수 있도록 조금씩 적어가고자 합니다.
작년 9월부터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에서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말이 좋아 공공서비스 디자인이고, 사실은 '시민 참여형 정책 디자인' 사업이다.
2014년에 <국민디자인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는데, 정권이 변하며 다소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이슈로 사업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국민디자인단'은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참여한 공무원, 디자이너, 시민 그룹을 일컫는다. 브랜딩 관점에서 퇴보했다고 평가한다.
서비스디자인은 다른 디자인 분야보다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정책 디자인은 공무원, 시민, 디자이너에게 더 많은 능동성과 참여를 요구한다.
왤까?
환경 제약이 많아 자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공무원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행정은 자율적 판단 주체가 아닌, 입법 기관이 코딩한 소프트웨어 도구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 되어 있다. 이는 안정된 국가 운영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공무원에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업무 환경을 낳는다. 개인의 능동성이나 창의성이 일종의 "버그"로 여겨지기 쉽다.
여기에 보안 규제 때문에 시민 사회가 요구하는 정보 처리량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정보 기술로 행정 업무와 절차는 지나치게 낙후되었다. 형편이 이러니 공무원들이 능동적으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제안할 여력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내게는 더 많은 공무원이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참여하고, 정책 디자인 방법론을 확산 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는 안했지만..
그저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문제를 관찰하고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고자 했다.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을 통해 정책을 디자인 하고 싶은 공무원, 그들을 지원하는 한국디자인진흥원 담당자들이 조금이라도 능동성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환경을 개선해보고 싶었다.
문제를 관찰하며 보게 된 것들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는 여러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눈에 띈 것은 정보의 비효율적 관리였다.
웹사이트 사용성 문제
행정안전부(소통24)와 한국디자인진흥원(kidp.or.kr, DesignDB)의 웹사이트는 정보 구조가 복잡하고 탐색이 어렵다.
정보의 분산
사업 공시와 자료가 여러 플랫폼에 흩어져 있어 접근성이 낮았다.
자료의 일관성 부족
동일한 학습 자료가 다른 버전과 품질로 배포되면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온보딩 가이드 부재
신규 참여자를 위한 가이드가 없어 프로젝트 초기 적응에 어려움이 크다. 표준화된 온보딩 매뉴얼을 제작해, 참여자들이 빠르게 업무를 이해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쌓여 공무원이 국민디자인단을 운영하는 데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참여하는 데 동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작은 변화,
비공식 랜딩페이지 만들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시도한 것은 노션으로 비공식 랜딩 페이지(https://public-service-design-korea.oopy.io/)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저 자료를 한곳에 모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대한 온보딩부터 참가, 학습, 운영, 최종 과제공모 대회까지 이해관계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정보 구조를 설계하고, 최선을 다해 콘텐츠를 편집했다. 기획부터 완성에 보름 정도 걸렸다.
비공식이 된 이유는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은 노션 같은 유료 협업 도구를 허가 내는 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업무 외 시간까지 꽤 많이 들인 개인 프로젝트다.
모든 자료를 한곳에
흩어진 정보를 한데 모아, 필요한 자료를 빠르게 찾을 수 있게 했다. 여러 플랫폼을 헤매는 수고를 덜어준다.
프로젝트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게
각 단계에 맞춘 자료와 팁을 정리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참여자 유형별 맞춤 콘텐츠
공무원, 디자이너, 시민 등 역할별로 필요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탐색이 쉽고 직관적으로
카드형 디자인과 주요 정보 강조를 통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자료를 찾을 수 있게 했다.
디지털 가이드북이지만 스크랩부터 편집까지 혼자 하기에 노고를 꽤 많이 들인 수작이라 생각한다. 이 작은 변화는 공무원들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결과적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 동기를 약간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작은 시도, 환경을 바꾸는 시작
물론, 이 노션 페이지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구조적 제약은 여전히 존재하고, 공무원의 능동성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원인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작은 시도가 그들의 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능동성과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
공공서비스디자인은 결국 당연히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더 나은 시스템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모쪼록 많은 공무원과 서비스디자이너가 이 노션페이지를 발견하고 유용하게 사용해주기 바란다.
2025. 1. 17 금요일
(1시간 반 걸려 퇴근하고.. 부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