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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디자인, 그 뒷이야기

by 혀노hyono

<디자인 뒷담화>는 디자인이란 무대 너머를 바라보며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디자인 뒷담화의 작은 조각들이 누군가의 고민과 닿기를 바라며.



디자이너가 참 고생했겠다.


가끔 어떤 제품이나 공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음, 별론데?’ 혹은 ‘예쁘네.’ 라며 지나쳐버릴 수 없는, 복잡하고 고된 맥락이 느껴지는 디자인들이 있다.


그런 디자인 뒤엔 디자이너가 헤쳐온 길이 있다.

수많은 조건과 문제를 통과해야만 세상에 무사히 나올 수 있는 길.

그 길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디자인의 성공을 가로막는 조건들은 다양하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에겐 영업일 수 있고,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겐 사업 전략이나 조직 문화일 수 있다.

때로는 모든 조건을 뚫고 나아가던 프로젝트가 어느 날 갑자기 엎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무사히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그래 기특하다.’

이건 일종의 자기독려일지도 모른다.
디자이너가 야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작은 위안 같은 것.



마침표는 없다.
쉼표만 있을 뿐,

디자이너의 우주선은 늘 항로를 바꾸고, 맴돌고, 때로는 되돌아간다.

수많은 행성과 별들 사이를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길이 열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 디자인의 진짜 얼굴이 숨어 있다.


운석에 맞아 조용히 사라질 위험, 이상한 별에 빨려들어가는 순간을 넘기며 디자이너는 계속 항로를 수정한다. 그리고 그 여정은, 설령 낙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응원받고 기억될 가치가 있다.


디자인은 끊임없는 실패와 환류 속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건 한 번에 완벽하게 해내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실패하고, 그 실패를 잘 기억하는 일이다.



“무엇이 더 나을까?”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이 좋다.

완벽하지 않아서 좋고, 끝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디자인이란 결국 사람들의 필요와 욕망, 그리고 세상의 복잡한 중력들 사이에서 길을 찾는 줄타기 같은 일이니까.


내가 쓸 글은 바로 그 줄타기에서 남은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의 모습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속살을 들여다보는 자리.


격식 없이, 솔직하게.

실패와 발견의 흔적, 혹은 그저 맘 편히 팔랑이는 생각을 조각배로 접어 띄우는 자리다.



디자인은 뒷담화로 시작된다.

뒷담화는 보이는 것 아래로 지나간 과정에 대한 얘기니까.


결과물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 뒤에 숨은 맥락을 들여다보는 건 디자이너의 몫이다.


디자인의 진짜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행간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디자인은 설명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께, 마케터에게, 대표에게, 그리고 같은 디자이너에게조차.


그 설명의 순간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그러게, 디자인이란 뭘까?"


답은 늘 달라진다.
그게 어쩌면 디자인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정의를 찾기보다는, 매번 새롭게 질문하고 탐구하는 일.

그래서 이 뒷담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끊임없이 묻고, 가끔은 되돌아가며,
결국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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