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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비스디자인, 이름 뒤에 숨은 것들

<공공서비스디자인>, 정책과 공공서비스를 디자인하다

by 혀노hyono

<디자인 뒷담화>는 디자인이란 무대 너머를 바라보며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디자인 뒷담화의 작은 조각들이 누군가의 고민과 닿기를 바라며.



디자인이란 무대는
행정의 세계로도 이어진다.


디자이너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복잡한 상황 속을 헤쳐 온 이들이 있는데, 바로 공무원과 정책 담당자들이다. 이들도 낯선 분야와 협업하면서, 나름대로 무언가를 ‘디자인’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어색하고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행정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공공서비스디자인>이라는 색다른 공연이 상연되고 있다.

글을 읽으며 더 궁금한 사항은, 필자가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대해 정리해둔 노션 페이지(https://public-service-design-korea.oopy.io/)를 참조하기 바란다.


공공서비스디자인?
정책디자인!


‘공공서비스디자인’이라는 말 자체는 행정에 국한되지 않고, 공공에 제공되는 서비스 전반을 디자인 씽킹과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으로 만들어내는 활동을 가리킨다. 시민이 어떤 문제를 느끼는지 목소리를 직접 찾아 듣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국가나 지자체뿐 아니라 다양한 주체에게 공공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의료 서비스, IT기업이 제공하는 교통약자 지원 서비스, 통신사가 무료로 제공하는 지하철 WiFi 등은 모두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의 사례다. 공공서비스는 일반적으로 공공행정이 주도하는데, 이로써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를 보장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실현한다. 최근에는 민간 기업, 비영리 단체, 사회적 기업 등이 공공기관의 한계를 보완하며 공익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공공서비스의 범위를 확장하고, 다양한 주체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만큼 고전적 의미에서 '공공행정의 정책 및 공공서비스'만을 다룬다.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참여하는 중앙부처 및 지자체, 그리고 산하 공공기관은 정책 및 공공서비스 개발 과정에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하게 된다.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시민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찾아 듣고, 정책과 공공서비스를 충분히 실험하고 검증토록 지원함으로써 정책 설계와 실행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건전한 재정과 정책 거버넌스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다.

소통24 내 공공서비스디자인 탭 (UIUX가 불편한 편이다)


이때,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제품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듯, 행정가도 다양한 규칙과 이해관계를 넘어야 한다. 그 길이 절대 단순할 리 없다. 공무원이 "시민 분들을 이끌고 원만히 참여시키는 게 어려웠어요.."라고 하거나, 서비스디자이너가 "각종 규제나 법령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러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 기관끼리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공무원은 법·제도, 재정, 거버넌스, 그리고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시민이 체감할 공공서비스 경험을 모두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은 '정책디자인'의 범주에서 공공서비스디자인을 다루게 되며, 행정가와 서비스디자이너 그리고 참여 시민 사이의 협동이 상당히 중요하다. 서로 교육과 정보 공유가 원만하고, 아이스브레키잉도 즐겁게 하고, 다정하되 문제 중심으로 소통하는 원칙을 세우는 등 사실 스타트업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이 사업에 참여하는 공무원 분들은 남다르다. 남다른 능동성, 시민을 위하는 이타성, 진심 어린 열정이 있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다.



국민디자인단, 국민정책디자인단,
그리고 공공서비스디자인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처음 <국민디자인단>으로 시작해, 2020년에는 <국민정책디자인단>이라는 간판을 달았다가, 2024년부터는 다시 <공공서비스디자인>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마치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시안을 갈아엎듯, 이름이 계속 바뀌었다.


<국민디자인단>이란 첫 번째 이름에선 사업을 수주받은 한국디자인진흥원의 포부가 느껴진다. 2014년에 '서비스디자인, 공공서비스디자인, 정책디자인'이라는 선진 개념을 오직 '디자인'이란 단어로 대중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점에서 계몽적인 비전이 엿보인다. 아마 모든 시민이 디자인을 '스타일링 활동을 넘어선' 문제 해결 활동으로 인식하는 세상을 만들겠다 의지가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런 포부가 좀더 현실적 문제로 협의점을 찾게 된다. 담당자 입장에선 "국민이 무슨 디자인을 하나요?"라는 질문에 "공무원, 서비스디자이너가 좋은 정책을 디자인하도록 돕습니다"라 일일이 설명하는 일은 충분히 피곤할 만하다.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에 비대면으로 사업을 운영해본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 담당자로선 소통 비용을 낮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이듬해인 2021년에 <국민디자인단>은 <국민정책디자인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비대면이 뉴노멀이 된 시기에도 이 사업은 꽤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로부터 3년. 그새 정권도, 세상도 바뀌었다. 새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긴축적이었고, 각 부처에서 운영하던 국민 참여형 사업에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예산이 적당히 삭감되면 다행이고, 사실상 사업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예산이 몽땅 깎인 사업도 많았다. <국민정책디자인단>도 예외는 없었다. 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예산 삭감으로 끝나면 감지덕지였던 분위기였나 보다. <국민정책디자인단> 사업은 그렇게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으로 간판을 바꾸며 브랜딩을 포기하는 대신 생존을 택한다. 그 때문에 예산은 줄었는데 소통 비용은 다시 늘어났다. 안타깝게도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에 대해 변명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몫은 고스란히 사업에 참여한 열정 많은 공무원,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 담당자가 떠안게 되었다.


그렇게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은 정치라는 변덕스런 날씨에도 더 나은 행정을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고로 굴러가고 있다.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민디자인단>에서 <국민정책디자인단>, 그리고 다시 <공공서비스디자인>으로 이어진 사업명 변화는 단순한 ‘이름 갈아치우기’라기보단, 행정과 시민 간의 소통 방식을 찾기 위한 여러 시행착오로 보인다. 그만큼 많은 경험이 쌓였고, 앞으로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가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울 수 있다. 일회성 워크숍이나 컨설팅, 때 되면 열리는 성과공유대회가 아니라, 더 짜임새 있는 체계와 지속 가능성을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개선해볼 수 있을까?


공공서비스디자인 개념 정립
공공서비스·정책디자인·공공서비스디자인 용어가 모호하게 쓰이고 있어, 실무자나 시민 모두 의미를 혼동하기 쉽다. 학술 연구와 법령으로 개념을 구체화하면, 공무원과 참여자들 간 소통도 훨씬 수월해진다.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진정한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치도 널리 알려질 수 있다.


전문성 축적과 전수 체계
순환근무제 등으로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사업 노하우가 사라지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인수인계 매뉴얼, 교육 프로그램, 지식관리시스템 등이 있다. 축적된 경험이 쌓이고 나눠져야 공공서비스디자인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기반이 마련된다.


정책 운영 현황 모니터링과 연구
1,900건이 넘는 정책 디자인 사례가 이미 존재하지만, 실제 운영 현황과 개선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체계가 부족하다. 정책별 성과와 실패 요인을 꾸준히 추적·분석해야, 향후 사업 방향성도 더욱 뚜렷해진다. 이를 통해 한국 행정 환경에 맞는 공공서비스디자인 이론과 방법론을 확립할 수 있다.


전문 생태계 조성
공공서비스디자인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려면, 이를 전담할 디자이너나 에이전시가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 노하우나 이론적 기반이 아직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전문 기업이나 개인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쉽지 않다. 정부와 관련 기관이 지속적인 지원과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면 전문가 풀도 크게 확장될 것이다.


통합 플랫폼 구축
현재 사업 정보(공지사항, 교육 자료, 디자이너 모집 등)가 여러 웹사이트에 흩어져 있어 접근성이 낮다. 공무원·서비스디자이너·시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통합 웹 플랫폼을 마련해, 관리자 페이지에서 모집·제출·평가 등 과정을 자동화하면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 한곳에 모인 정보는 추후 성과분석이나 사례공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운영 체계 확립
일회성 행사나 단발성 컨설팅만으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공동으로 장기적인 비전과 운영 모델을 구축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공공서비스디자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공무원·디자이너·시민이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이 여섯 가지는 현재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살펴봐야 할 핵심 과제다.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이미 쌓인 다양한 사례와 현장의 열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도전으로 보인다.



어느 별을 보며
노를 젓고 있을까?


11년간 1,900건이 넘는 정책 디자인 사례를 만들어 냈다. 국책사업이 아닌데 10년을 넘겼다니! 생존력이 상당하다. 그만큼 정치 이념과 상관 없이 현대 대한민국 시민이 공공행정과 쌍방 소통을 원한다는 증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처음에는 어떤 분명한 비전이 있었으니까 사업이 중심을 잃지 않고 운영되었지 않을까?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공식 홈페이지와 DesignDB에는 꾸준히 영국의 Policy Lab가 소개된다. 영국의 Policy Lab은 2014년에 영국 내각 산하로 설립된 정부 혁신 조직으로 '디자인 씽킹, 사용자 중심 설계, 데이터 분석' 등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쩌면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언젠가 대한민국 정부 부처에도 데이터 분석과 디자인 씽킹을 원칙으로 정책을 연구개발하는 혁신조직이 생기길 꿈꾸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영국 Policy Lab 블로그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마치 AI 모델을 만들기 앞서 빅데이터를 모으듯 한국 사회와 행정 환경에 알맞은 혁신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정책 디자인 사례를 수집하는지도 모르겠다. 착실히 대한민국이 새로운 혁신 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면, 언젠가 좋은 때에 정당과 국회가 발빠르게 행정 혁신을 해낼 수 있을 테다.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앞으로도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정치란 날씨의 변덕에도 묵묵히 이 의무로운 일을 수행해주기 바란다.






디자인은 매체나 목적이 참 다양해서 “이것도 디자인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분야가 꽤 많다.


정책 디자인도 그렇다. '행정'이라는 무대가 워낙 낯설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낯섦 때문에 오히려 <공공서비스디자인>이란 사업이 디자인이 지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이름이 자꾸 바뀐다고 해서, 또는 운영 체계가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이 진흥 사업에 참여한 프로젝트들이 의미 없어지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사업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아래 숨은 고민과 시행착오야말로 먼저 다뤄볼 이야기지 않나.


차츰차츰 더 많은 뒷이야기가 생기면 좋겠다. 앞으로도 공공서비스디자인의 항해는 계속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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