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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책임지는 법

직장과 일상의 책임, 그 시작과 끝

by 혀노hyono

<디자이너의 보잘 것 있는 에세이>는 제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보잘 것 없는 순간도 꾸준히 기록해 돌이켜볼 수 있도록 조금씩 적어가고자 합니다.



책임, 왜 그토록 어려울까?

책임이라는 말은 언제나 무겁게 들린다. 그러나 그 무게에 걸맞은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한 조직에서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그 아이러니가 더욱 선명해진다.

A 사원: 팀장님, 우리 팀이라도 분기별 회고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B 팀장: 좋은 생각인데, 회사 문화가 워낙 수동적이라 상황이 쉽지 않네요.

A 사원: 제가 준비하고 리드해볼 테니,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동료들이 참여하도록 북돋고 이끌어 주시면 좋겠어요.

B 팀장: 제가 책임지고 자리를 한 번 마련해볼게요.

A 사원은 팀장의 적극적인 답변에 기대를 품었다고 한다. 그런데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팀장은 다른 우선순위가 있는 듯 개별 팀원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B 팀장: 이번에 팀원끼리 분기회고를 해보세요.

팀원들: (....??)

B 팀장: 아, 그리고 지난번에 요청했던 보고서는 최대한 빨리 제출해주세요.

팀원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책임지고 지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행동은 달랐다고 한다. 기대했던 ‘적극적인 공감대 형성’이나 ‘참여 독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엔 팀장의 “책임지겠다”는 말에 힘입어 의욕을 내비치던 A 사원도, 이내 시큰둥한 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회고를 위한 의지와 기대를 접고 말았다. 한순간에 무언가가 꺼져버린 듯한 이 상황에서, “책임진다”는 말은 결국 무엇이 되고 말았을까?


책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건, 말과 행동이 쉽게 엇나가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분명 책임지겠다고 선언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음속 열정이나 의례적인 동의에만 그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책임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져버린 세상이다.


그렇다면 책임이라는 말은 본래 어떤 뜻을 지녔고, 왜 현실에선 이런 아쉬운 모습들을 낳게 될까? 이 글은 그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책임과 책임감,
그리고 책임지겠다는 말

책임은 종종 “내가 맡아서 하겠다”는 선언으로만 이해되곤 한다. 그 말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책임지겠다”라고 말해놓고도, 정작 제대로 된 실행이나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떤 이들은 책임을 말할 때 열정만 앞세운다. 마음속으론 “어떻게든 해내야지” 하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어도,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놓치는 경우가 많다.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 일이 꼬이면, 주변 사람들도 혼란스러운데 자신도 당황해 수습을 못한다. “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라고 말해도, 보는 눈에는 진정한 책임 이행과는 거리가 있다.


반대로, 책임을 '실패 후에 벌을 받는 것' 정도로만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일을 잘못했으니 사직서를 내겠다고 하거나, 부담을 견디다 못해 뒤늦게 한 번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식이다. 물론 그런 행위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게 책임의 전부라면, 정작 일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관여와 조치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는 마치 '마지막에 모든 걸 떠안으면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책임은 호기로운 선언이나 정치적 수사법이 되어선 안 된다. 나에게 맡겨진 임무가 무엇인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수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기까지가 내 책임의 범위고, 의무를 다해야 해’라고 스스로 느끼는 마음이 생길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책임감'이라고 부른다. 책임감은 내게 주어진 임무나 사명을 인식하고, 끝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욕구이자 의무감이다. 한편 '책임지겠다'는 말은 주어진 의무를 실체화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책임

맡아야 할 임무나 의무


책임감

그 일의 범위를 조정하고, 반드시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


책임진다는 것

책임을 성실히 실체화 해 결과를 내는 것


이렇게 몇 마디로 정리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이 세 가지가 자꾸 엇갈리고 뒤섞인다. 말로만 “내가 책임진다”라고 할 때는 책임감이나 실행 의지가 충분히 뒤따르지 않을 수 있고, 책임감이 충만하다 해도 실행 전략 없이 공허한 열정에 그칠 수도 있다. 자신과 동료에게 주어진 책임의 범위를 능동적으로 소통해 정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책임을 말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가진 건 진짜 책임감일까, 아니면 잠깐의 열정일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거고, 잘못되면 어떻게 수습할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도움이 필요한 임무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조목조목 해보는 태도야말로, 말뿐인 선언이 아닌 실제 책임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도록 애쓰는 일이다. 책임은 결국 결과로 확인되는 것이니까.



반쪽짜리 책임의 함정


책임이라는 말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예상 외로 많은 사람이 그 뜻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다. 어떤 이는 마음 한 구석에서 “이건 내가 책임져야 해”라고 느끼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일이 복잡해지면 슬그머니 손을 빼거나, 준비 없이 덤볐다가 나중에 “그래도 난 노력했다”는 말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얼핏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질은 놓친 상태다.


가령 프로젝트나 행사를 주도하다가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마지막에 벌이나 제재만 떠안는 식으로 책임을 마무리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망했으니 사표 쓰겠습니다”라는 식이다. 물론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존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면, 정작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필요한 관리와 조정,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대비, 팀원들과의 협업 같은 핵심 과정이 빠져버린다. 그러고 나면 “난 다 떠안았으니 책임을 졌다”고 말하겠지만, 실제론 반쪽짜리 책임에 가깝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책임을 겉치레로만 떠맡아놓고는 ‘실행은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고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겉으로 “내가 앞장서겠다”라고 선언하고, 실패 시 후속 조치만 약속한 채 정작 중간 과정엔 기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일이 틀어지면 “이건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하며 책임을 피해 간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안기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런 모습을 종합하면, 책임은 단순히 “결과적으로 벌을 감수했다”거나 “마음속으로 부담감을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일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필요한 과정과 상황을 전부 살펴보고 주도적으로 대응하려고 애쓰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말로는 “책임진다” 해놓고 실질적인 역할 수행을 생략하면, 그건 이미 책임의 절반(혹은 그 이하)밖에 채우지 못한 셈이 된다.


결국 ‘반쪽짜리 책임’의 함정은, 책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기대어 자기 의무를 충분히 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행동은 뒤따르지 않으면서 책임을 말하기 쉽고, 그러다 보니 책임이라는 말 자체를 가볍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도 책임감 느꼈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이 울림 없이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온전한 책임을 지는
다섯 가지 단계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단지 “결과가 잘못되면 벌을 감수하겠다”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일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예상되는 난관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최선을 다해 성과를 만들어내려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 이런 ‘온전한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선 대체로 다섯 가지 단계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


첫째, 임무를 분명히 정의하기

“무조건 잘해보겠습니다”라는 말만으론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 내 역량으로 어디까지 도전할 수 있는지부터 확실히 정해둬야 한다. 목표 범위와 자기 역량 파악을 명확히 해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도 쉽다.


둘째, 실행 계획을 세우고 진척 상황을 점검하기

책임을 진다고 선언했으면, 말뿐인 의욕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큰 틀을 잡고, 중간중간 어디까지 되었는지 체크하는 과정이 필수다.


셋째, 문제가 생기면 즉시 수습 방안을 찾기

아무리 준비를 해도, 상황이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예측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감 있는 사람은 일단 “어떡하지?” 하고 한숨부터 쉬기보다 해결책을 탐색한다. 일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대응하는 태도가 전체 성과를 지키는 열쇠가 된다.


넷째, 실패를 회고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기

잘 안 풀렸다 해도, 왜 그런지 원인을 분석하고 더 나은 대안이나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히 운이 없었다”고 넘기면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기 쉽다. 책임을 진다는 건,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냥 끝내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다음 단계로 연결시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실패나 규칙 위반으로 인한 제재와 여남은 책무를 겸허히 감당하기

다섯 단계 중 가장 부담스럽고 무거운 과정이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누군가 피해를 봤다면 거기에 따른 보상을 하거나, 처벌을 감수하는 태도도 책임의 일부다. 다만 이것을 책임의 전부로 오해해선 안 된다. 책임은 벌을 받는 행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전 과정을 밟은 뒤, 최종적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떠안는 게 진짜 감당이다.


이 다섯 단계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저 사람은 말 그대로 책임을 다하네”라는 평판이 생기면, 그건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과정을 정성스럽게 밟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단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일에서 책임을 온전히 지는 연습을 해보면서, 단계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야 조금씩 자리 잡는다.


결국 온전한 책임이란, 그 무게만큼이나 치밀하고 꾸준한 실행의 결과물이다. 말이나 마음가짐으로 끝나는 선언적 책임이 아니라, 사전에 대비하고 과정에서 집중하며, 상황이 틀어졌을 땐 빠르게 수습하고, 실패했다면 원인을 되짚어 보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처분까지 깔끔하게 감수하는 전 과정을 모두 성실히 해냈을 때서야 "책임을 졌다"고 일컫을 수 있다.



결국, 좋은 어른으로 산다는 것

책임에는 간단한 선언보다 훨씬 복잡한 준비와 실천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 모든 과정을 지루하거나 부담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건 오히려 미성숙한 태도에 가깝다. 어른이라면, “내가 이 일을 맡았다”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일의 전 과정을 챙기고, 마지막 결과까지 기꺼이 감당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처음에 떠올렸던 조직의 사례도 그렇다. 팀장이 “책임지겠다”고 선언했지만, 구체적 실행과 동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뒤따르지 않으니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기대에 부풀었던 A 사원조차 의지와 열정을 잃고 말았다. 이 모습은 말로만 책임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한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정반대로, 만약 책임을 선언했다면 사람들을 모으고, 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해가며, 일이 어렵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여보려는 ‘행동’이 따라왔어야 한다.


하나를 온전히 책임져본다는 건 내 일상을 꽤나 바꿔놓기도 한다. 마감이 정해진 프로젝트를 맡아본 사람은, 여유로웠던 퇴근 시간을 줄이고 대신 자료를 찾아보거나 팀원들과 대화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본 경험이 있을 테다. 일이 어긋나면 그 원인을 찾느라 고심하고, 혹시 피해가 생기면 그것도 내 몫이라 생각하며 보상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말 그대로 쉽지 않지만, 그런 과정을 몇 번씩 겪다 보면 ‘책임을 지는 법’이 조금씩 몸에 배게 된다. 언젠가 또 다른 일을 맡게 될 때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뿐더러, 동료들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으로 신뢰와 평판이 쌓인다.


이렇게 쌓인 신뢰는 개인의 평판을 좋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존재는 의사소통과 협업 과정에 커다란 안정감을 부여한다. 누군가 중요한 일을 맡았을 때 “저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겠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조직이라면, 불필요한 충돌이나 중복 업무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협업 효율도 높아진다. 책임감 있는 태도가 쌓일수록 공동체가 단단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에 책임감을 발휘한다고 해봐야 교칙을 잘 지키고, 학업을 충실히 하는 정도였을 테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구체적이고 치밀한 책임 이행을 요구받는다. 그렇기에 좋은 어른이 되려면, 말뿐인 다짐을 넘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책임을 진다는 건 결국, 내가 맡은 일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명확히 정의하고,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어른스럽다”고 말할 때 떠올리는 모습도 결국 이와 다르지 않을 테다.


“책임 있다”는 말은 사실, 아무런 대가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칭찬이나 영광이 아니다. 그 말에 걸맞은 실행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과 주변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어디서든 선한 문화가 싹트게 될 테다.


많은 이가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를 맞출 수 있기 바란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태도야말로, 한층 단단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열쇠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2025. 1. 27 월요일

(오늘도 설날을 앞두고, 부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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