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박이 May 17. 2018

80일의 동남아시아 4개국 여행루트

뉘엿뉘엿 게으른 나홀로 80일 동남아 여행의 대충 서투른 정리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부지런한 누구누구들은 여행 중에, 또는 여행 다녀와서 바로 휙휙~ 여행 기록들을 잘도 정리를 하던데. 나는 너무너무 그러고 싶지만 그게 참 안 된다. 왜냐, 하고 싶고 적고 싶은 건 많은데 손이 느리기 때문이지. 아니 아니, 그냥 게으르고 능력치 부족인 걸로 하자. 슬프지만 그게 사실인 거 인정!  

  그럼에도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자면, 사실 길든 짧든 여행에서 돌아오면 할 일이 참 많다. 비워뒀던 집도 청소해야 하고, 그동안 입 꾹 다물고 있었을 냉장고 속도 봐줘야 하고, 끌고 다니던 짐들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하고, 이래저래 빨래는 산더미고, 심지어 세탁기로는 안 되는 찌든 때들은 손빨래도 해줘야 하고, 무엇보다 여행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여기저기 쑤셔오는 저질체력 몸뚱이를 위해 얼마간 앓아눕기도 해야 하고, 그걸 핑계로 멍 때리며 뒹굴거리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이번엔 좀 길게 비웠더니 각종 청구서 고지서 통장 잔액 등을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더해졌다. 

  치우고 정리하고 한다고 해도 구석구석 미뤄둔 일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데, 신발장 한편에 있는 운동화가 그렇다. 유럽 한 달 동남아 석 달 동안 휘날리는 먼지 때에 옴팡지게 찌들어 본연의 색을 잃어버린 내 연분홍 러닝화. 어제는 큰 맘먹고 손목과 허리가 부러지도록 세탁솔을 문질러 빨아댄 결과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진한 흙빛의 운동화는, 처음 샀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분홍색 고운 자태로 돌아왔다. 여행 중 황망하게 뚫려버린 구멍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여행의 추억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오늘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컴을 켜고 벼르던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바로 80일간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남아시아 4개국을 돌아다녔던 나의 여행 흔적들을 꿰어서 정리해놓고 싶은 욕심에서다. 어떻게 시작할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오늘 날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기간이 80일 정도 되다 보니 그동안 다녔던 여행의 흔적들이 만만치 않아 단박에 끝내기가 쉽지 않다. 근사한 여행 사진과 그곳에서의 일정, 간단한 후기를 덧보태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 글로 미루고, 이글에서는 전체 일정만 살짝 담아본다. 

  그래서 여행 동안 내 절친이 되어준 구글맵에 그간의 여행 루트를 표시해가며 열심히 나만의 여행 지도를 만들었는데, 아놔, 구글 지도를 담아올 수가 없다. 편리하고 간편한 이 글쓰기 툴은 html 소스 편집 자체를 아예 막아놔서 구글맵에서 제공하는 iframe 태그를 가져다 붙일 방법이 없다(역시 만약 할 수 있다면 고수님들 어떻게 하는지 좀 알려주세욤!), 그런 이유로 구글맵에서 만든 내 지도 담아오기는 실패! 결국 어쩔 수 없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여러 번의 스샷을 이어붙이고 갖다 붙이는 조악한 편집으로 한참을 끙끙댄 결과 요렇게 허술한 여행루트 지도를 겨우 완성했다. 하핫. 

  지나온 여행지를 선으로 모두 이어놓았더니 루트가 아주 엉망진창 난리부르스다.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만 표현되다 보니 저런 모양이 나온 듯.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마음 같아선 손으로 곡선을 그리고 싶다. 큭. 나의 80일간 게으른 동남아 여행루트 지도는 아래에 남긴 링크로 들어가시면 구글 지도에서 크게 볼 수 있다. 아니면 위의 이미지를 클릭해도 큼직한 원본 크기가 뜬다. 사실 뭐, 이 여행 발자취는 별다른 계획 없이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닌 거라 그렇게까지 애쓰면서 볼 필요는 없다. 일종의 양심 고백. 그렇지만 여행 루트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른 여행자의 루트를 두루두루 봐 두는 것도 나쁠 것 없지 않냐며 스스로 존재 이유를 만들어 본다. :) 









# 태국 서부 (2017.12.25 ~ 2018.01.15) 

: 대구국제공항-(방콕 수완나품공항)-치앙라이-치앙마이-람빵-수코타이-핏사눌룩-방콕


  대구공항에서 출발해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시작된 태국 여행. 끝을 정하지 않고 떠난 긴 여행의 시작이었던 만큼 비교적 조심스레 너무 치우치지 않게 날짜를 배분하며 다녔지만, 그럼에도 치앙마이에서는 충분히 게으르게 지냈었다. 3주간 치앙라이-치앙마이-람빵-수코타이-핏사눌룩-방콕 일정으로, 태국 서부 지역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서 내려왔다. 

  태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치앙라이가 그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추워서 힘들었지만 매력적인 도시였다. 춥지만 않았다면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치앙마이에서는 날씨가 풀려 기분도 좋아졌다. 거의 올드시티에서 놀았고 매일 저녁 열리는 야시장을 구경했다. 올드시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잠깐 넘어갔던 님만해민은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일주일을 눌어붙어 있다가 한 여행카페의 글을 보고 람빵으로 넘어갔다. 카페의 글만큼은 아니었지만 유네스코 등재 사찰도 좋았고, 재래시장 상인들과 우체국 직원의 친절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다. 숙소의 황당한 세탁 서비스도. ㅎㅎ 

  그다음으로 넘어간 수코타이는, 정말 최고였다! 타 죽을 것 같은 햇볕과 더위였지만,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역사유적공원의 멋진 유적들도 정말 좋았다. 터미널 버스시간표에 농락당해 시사차날라이행을 포기하고 갔던 핏사눌록 현지 버스는 위험했지만 즐거웠고 관광안내소의 친절한 그녀들은 내 마음을 환히 밝혀줬다. 의외로 방콕은 좀 심심했다. 쇼핑과 마사지를 빼면 별로 할 것이 없어 보였다. 소도시로만 다녀서 대도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물가도 비쌌다. 치앙라이에서부터 질리도록 보아온 금빛 가득한 사찰이나 왕국은 땡기지 않았고 방콕의 상징인 카오산로드도 못 가봤지만, 걸어 다니면서 만난 도시의 작은 골목길에서 소박한 즐거움이 빛났다. 

  아마 친구 맹과의 베트남 일정이 미리 잡혀있지 않았더라면 더 느긋하게 태국의 북부 지역을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일정을 짤 땐 방콕 일정이 짧은 게 아쉬웠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그것보다 북부 지역을 더 둘러보지 못한 게 더 안타깝다. 사실 그때만 해도 긴 버스 이동으로 가볼 엄두조차 못 내던 북부의 소도시들이 긴 여행을 끝날 무렵엔 충분히 가볼만한 거리로 느껴졌으니, 역시 경험의 힘이란 위대하다. 쉽게 말하자면 설마 라오스 버스보다 더 힘들랴, 하는 마음이랄까. ㅋ 




# 베트남 with 맹 (2018.01.15 ~ 01.29) 

: (방콕→)달랏-무이네-호치민-(다낭공항)-호이안-후에-하노이-땀꼭투어+사파


  태국에서 시작해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게 보통의 동남아 장기 여행자의 루트지만, 나는 평범한 일정은 거부한돠아~~!!.. 는 아니고 ㅋㅋ 앞서 말했듯 겨울방학을 맞은 맹의 일정에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방콕에서 베트남으로 바로 점프해서 날아갔다. 달랏에서 시작해 하노이까지 (나 홀로 사파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국을 달리는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렀다. 달랏-무이네-호찌민-다낭공항에서 호이안-후에-하노이-땀꼭투어 이렇게 맹과 11일 + 나 홀로 사파 3일, 이렇게 2주간의 베트남 여행.

  오랜 친구 맹과 나온 첫 해외여행. '함께'여서 즐거웠지만, 새삼 '혼자'와 '같이'엔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기도. 열흘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이 촉박한 맹의 일정과 볼거리는 봐야 하는 여행 스타일에 맞춰 베트남 남부 중부 북부의 주요 지역을 훑으며 정신없이 움직여야 해서 마음엔 아쉬움이 남고 몸에는 피로가 쌓였다. 치앙마이에서만 일주일 가까이 빈둥댔던 나는, 비슷한 기간 동안 베트남에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심지어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으니 그럴 수밖에. 

  방학과 개인 스케줄로 인해 열흘 정도밖에 시간을 못 뺀 맹은, 그러나 베트남 전지역을 돌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호찌민에서 다낭, 후에에서 하노이는 비행기로 이동했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1박, 길어야 2박 밖에 못 했다. 그야말로 찍고 찍고 가는 여행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다행히 나름 알찬 여행이었지만, 열흘 간 베트남 전국 여행은 그곳을 제대로 느끼기엔 아무래도 무리였다. 여행이 끝날 무렵 맹도 너무 욕심을 낸 것 같다며 잠시 후회했다. 만약 나 혼자 베트남을 여행했다면 무이네와 호이안, 후에에서는 최소 2박, 내키면 더 오래 머물렀을 텐데, 무비자 기간이 15일이니 4년 전에 가봤던 북부 지역은 포기하고 남부나 중부에 집중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오랜 내 친구랑 함께 했던 여행이기에 충분히 좋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맹을 먼저 한국으로 떠나보내고 다시 혼자가 되어 떠난 사파에서는 안개 자욱한 날씨만큼이나 친구의 빈자리가 느껴져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다.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 유적 (2018.01.29~02.09)

: 씨엠립 시내-앙코르 유적지 6일(앙코르톰-앙코르와트-외곽투어-스몰투어-빅투어-프놈바켕)-깜퐁플럭&톤렌샵 투어 


  태국에서 혼자 여행을 하면서 베트남을 끝으로 맹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모처럼의 기회인데 조금 더 여행을 다녀볼까 계속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이 고민은 의외로 엉뚱한 이유로 해결됐다. 베트남은 입국할 때 출국 편이 없으면 항공권이 발권이 안 된다.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알고는 있었는데 깜박하고 그냥 공항을 간 게지. 그래서 공항 항공사 창구에서 발권하려다 말고 급하게, 그러나 그전부터 계속 검색해보며 선택을 저울질했던 씨엠립행 비행기를 급히 예매하고서야 달랏행 비행기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씨엠립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순식간에 결정됐다. 

  유적투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운 좋게 성향이 비슷한 나 홀로 여행자 친구들을 만나 함께 앙코르와트 유적군 투어팀이 결성됐다. 7일권 입장권을 끊어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외곽투어 스몰투어 빅투어 마지막날 프놈바켕까지 6일간 정말 원 없이 다녔다. 나보다 더 느리게 더 꼼꼼 하게 보는 일행들과 함께 드넓은 유적군을 돌아다니며 천천히, 그러나 매우 치열하고 빡세게 유적들을 감상했다. 호수에서 황홀한 일몰을 함께 보기도 했다. 그녀들이 있어 앙코르가 더 감동적이었고 황홀했다. 

  앙코르 유적군 입장권은 생각보다 정말 비쌌고, 미처 카드 결제가 되는지 몰라 현금을 내버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부족한 달러 보유액에 큰 타격을 입었다. 덕분에 씨엠립에 머무는 동안 내내 쪼들리게 지내야 했지만, 마음 맞는 좋은 여행 친구들을 만나서 기대 이상으로 정말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다. 

  다만 앙코르 유적군이 워낙 엄청난 규모인 데다 그것들을 나름 꼼꼼하게 보려고 하다 보니 유적 투어를 하는 하루하루가 강행군의 연속이어서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모두가 파김치가 됐다. 물론 그럼에도 너무 좋고 재미있었지만, 맹과 빡센 일정을 소화한 베트남에 이어 씨엠립에서도 다시 고강도의 일정에 돌입하다 보니 안 그래도 저질체력인 내 몸뚱이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런 날들은 이후 라오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널브러져 지낸 이유가 됐다. 큭. 





# 라오스 남부 (2018.02.09 ~ 02.26) 

: 시판돈 돈뎃&돈콘-반나카상&콘파펭폭포-팍세-참파삭(왓푸)-딸롯마을-팍송&볼라벤고원-총멕 


  태국-베트남-캄보디아까지는 어느 정도 머리에 담고 있던 루트였다면, 라오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4년 전 라오스 북부지역(루앙프라방-방비엥-비엔티엔)을 다녀왔었기에 이번 여행에서 라오스는 후보에서 빠져 있기도 했고, 사실 라오스보다는 미얀마에 더 가보고 싶었다. 작년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도 다녀왔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못 가본 나라가 미얀마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외의 일이 일어날 때 여행은 한층 재밌어진다. 씨엠립에서 거의 매일 붙어 다니며 함께 투어를 했던 언니님의 추천에 힘입어, 들어는 봤지만 갈 생각은 없었고 궁금하기는 했으나 정보라곤 하나도 없었던, 라오스 남부의 시판돈을 즉흥적으로 다음 여행지로 선택했다. 그리고 시판돈에서 다시 팍세를 추천받았다. 그래서 라오스 남부 여행은 시판돈 돈뎃섬&돈콘섬-팍세를 베이스캠프로 주변 지역인 반나카상과 콘파펭 폭포, 참파삭의 왓푸와 볼라벤 고원의 딸롯마을과 팍송이 주요 루트다. 

  시판돈의 돈뎃 섬은 아름다웠지만 너무 더웠고 할 게 없었다. 그동안 너무 빡세게 다녔던 탓인지 할 게 없으니 조금 우울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 섬의 미덕이라지만, 나는 역시 휴양지와는 맞지 않다는 엉뚱한 깨달음을 얻었을 뿐. 콘파펭 폭포의 광활한 감동이 그나마 위로가 됐다. 팍세로 넘어와서 라면가게 사장님과 거기서 만난 나 홀로 여행자들은 씨엠립만큼 즐거운 추억거리를 남겨주었다. 더불어 돈뎃 섬에서 하지 못한 늘어짐의 무위도식을 팍세에서 질리도록 실천했다. 덕분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총멕에서의 비자 런을 경험하기도. 

  라오스 남부여행에서는 이전 여행에선 없었던 매끼 한식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여행자인 나는 대부분의 식사를 현지 로컬 식당을 해결한다. 그곳을 여행하는 동안 현지식을 먹자는 마음도 있고 아무래도 한식이 비싸기도 해서 굳이 한식당을 찾진 않았다. 그러나 아무런 정보 없이 백지상태로 간 돈뎃에서 우연히 만난 한식당은 큰 힘이 됐다. 팍세 역시 친절한 라면집 사장님은 여행정보의 화수분이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돈뎃과 팍세에서 모든 식사는 그곳에서 먹었다. 외국에서 이렇게 모든 식사를 한식당에서 먹은 건 아마 내 여행사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ㅋ 




# 태국 동부 (2018.02.26 ~ 03.02) 

: 우본랏차타니-나콘파놈


  무위도식에 취해 팍세의 붙박이가 될 뻔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두 번째 육로 국경을 넘어(총멕에서 비자 런 하느라 왕복했으니 실은 네 번째?) 태국의 우본랏차타니로 넘어왔다. 원래는 팍세 다음 코스로는 모두가 열렬하게 강력 추천했던 타켁 루프로 갈 계획이었지만, 이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방콕에서 일부러 찾아오긴 힘든 이싼 지역의 우본랏차타니를 들러보자는 마음이었다. 사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라 가능한 일정이었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관광도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따듯했던 우본은 참 좋았다. 

  태국에서 다시 라오스의 타켁으로 넘어가기 위해 우본에서 타켁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콘파놈으로 이동했다. 나콘파놈은 첫인상은 조금 새초롬하니 쌀쌀맞아 보였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역시나 따뜻한 국경도시였다. 숙소에서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 저녁에 열리는 음식시장에서 먹거리를 잔뜩 사 왔고, 숙소 주인 언니가 직접 데려간 약국에서 무사히 약도 사고 덤으로 따듯한 마음까지 얻어왔다. 그래서 특별히 볼 건 없지만 다시 가면 천천히 놀다 오고픈 곳이 되었다. 





# 라오스 타켁루프 (2018.03.02 ~ 03.10) 

: 타켁-타랑-나힌-꽁로-비엔티엔 남부터미널 


  첫인상부터 마지막까지 그리 즐겁지 않은 일들이 이어지던 라오스의 국경도시 타켁을 떠나 타랑으로 출발했다. 타켁루프의 첫 시작은 환상이었다! 라오스 북부의 방비엥이나 베트남 땀꼭보다 더 거대하고 멋진 카르스트 지형의 풍광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쨍쨍하게 맑은 날씨의 건기에 마주한 타랑은, 그간 들어온 감탄사가 너무 거대했던 까닭에 아쉽게도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진 않았다. 특유의 음울함을 느낄 수 없어서 그런 듯하다. 타랑에 무한 찬사를 보내던 그들의 감동을 다시 느끼려면 우기에 다시 와야 하려나. 그럼에도 타랑 특유의 독특한 매력은 충분했고, 따가운 햇볕을 피하며 그 매력을 충분히 느꼈다. 

  씨엠립에서 만난, 얼마 전까지 라오스 나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했던 언니님의 부탁으로 강아지 나순이를 보러 간 나힌. 의사소통의 부재로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겪었으나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평온을 되찾았다. 해질 무렵 찾은 작은 재래시장은 소박했지만 온기가 있었다. 꽁로는, 왜 사람들이 타켁 루프를 그토록 찬양하는지를 진심 알게 되는 곳이다. 쓸데없이 발 빠른 프랑스 여행자들과 한 조가 되는 바람에 꽁로 동굴의 멋진 자연 조각들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많이 아쉽긴 했지만서두. 그 작은 동네에서 사흘 밤을 머물렀지만 질리지 않는 평온함이 있는 따뜻한 곳이었다. 




# 태국 북동부 (2018.03.10-03.14) 

: 농카이-우돈타니 


  떠나온 지 어느새 두 달이 넘어가고 장기여행에 익숙해지면서, 다음 여행지와 귀국을 선택지로 두고 고민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집 생각 대신 다음 여행 루트를 계획하는 시산이 더 길어졌으니까. 그러나 길어지는 여행만큼 체력은 조금씩 떨어져 가고 목에는 언제부턴가 원인 모를 흰 반점 두 개가 자리 잡았다. 집에서는 슬슬 언제 오냐고 묻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아빠님이 개인적인 용무를 이유로 호출을 하셨다. 

  사실 그리 급박한 일은 아니었지만, 내심 노렸던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80일에서 여행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 좀 아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그만 맛있는 밥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숨은 마음이 다시금 튀어올라 그만..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해버렸다. 그리고 아쉽고 헛헛한 마음에 다시 육로 국경을 지나 메콩강이 흐르는 국경도시 농카이로 넘어갔다. 쇼핑으로 빛바랜 우돈타니에서의 시간에 비해 농카이의 강가 공원에는 낭만이 있었다. 다음에 다시 비엔티엔을 가게 된다면 태국 농카이에서 더 느긋하게 머물다 오고 싶다. 





# 라오스 비엔티엔 (2018.03.14~03.15) 

: 비엔티엔-인천국제공항(03.16) 


  4년 만에 다시 찾은 비엔티엔은 생기발랄했다. 친구에 의지해 첫 해외 배낭여행을 왔던 4년 전 소심한 여행자에서 이젠 제법 나름의 여행 경험과 노하우가 생긴 여행자가 되어 이 도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친구를 따라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며 기억 속의 풍경들을 조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다만 한국사람 1도 못 봤던 4년 전에 비해 비엔티엔 시내에는 한국사람이 넘쳐났고 야시장에서 한국말이 곳곳에서, 실은 너무 많이 들려왔다.

  농카이와 우돈타니를 돌아다니느라 비엔티엔에서는, 4년 전처럼 이번에도 1박의 꽉 찬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좋았다. 마지막 비엔티엔 공항에서 제주항공의 무료 수화물 15kg의 악몽만 아니었다면 더 즐거웠겠지만 말이다. (그러게 무료수화물 20kg의 에어부산을 탔어야 했는데!! 그냥 부산으로 갈 걸~하고 얼마나 후회했던지..ㅋ)   









# and 인천공항과 컴백 여행 (2018.03.16 ~ 03.20)

: 인천공항-인천 송도-강화도 성안드레성당 & 석모도 보문사-안성-서천-당진-컴백홈


  부산이나 대구가 아니라 굳이 인천공항을 선택한 건, 씨엠립에서 함께 다녔던 여행친구들의 벙개 제안 때문이었다. 나보다 먼저 귀국했던 그녀들은 간만에 다시 모이자며 인천으로 들어오길 권유했고, 덕분에 에어부산이 아닌 제주항공을 예약해서 수속 전부터 15kg 수화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시차 계산을 잘못해 돌아오는 비행시간이 6시간이 아닌 4시간임을 뒤늦게 알았고, 중간의 이상 기류에 거의 잠들지 못한 채 비몽사몽인 채로 인천공항에 내렸고, 캐리어 때문에 인천행 버스들로부터 승차거부를 당해 고국의 꽃샘추위 찬바람에 몸을 떨어야 했다. 결국 만남의 장소를 바꾸고서야 겨우 대한항공 셔틀버스에 오를 수 있었는데, 막상 따듯한 버스에 타니 잠이 솔솔 내려앉아 그냥 그대로 집으로 가고 싶어 졌다. 


  인천에서 그녀들을 만나 회포를 풀며 해물탕으로 따듯한 점심을 먹고, 강화도로 즉흥여행을 떠났다. 석모도의 아름다운 일몰을 본 뒤 어쩌다 언니의 원룸에서 이틀을 신세 지며 안성 주변을 헤매고 다니다가 서천 바닷가에서 회를 먹고, 다시 갑자기 결정된 당진의 채 여사네 새집에 선물도 없이 라오스 술병 하나 내밀고 들어가 이틀을 수다 떨며 노닥거리다 귀국한 지 닷새만에 야 먼지 소복한 내 집으로 돌아왔다. 애초에 계획했던 서울에 사는 죽마고우와의 만남은 불발됐지만, 뜻밖의 루트로 이어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즉흥여행'은 길다면 길었던 이번 여행의 알찬 끝맺음을 해주었다. :) 



..  이렇게 80일간의 나 홀로 (때론 함께) 동남아시아 여행을 갈무리해봤다. 간략하게 쓰고자 했지만 쓰다 보니 자꾸 이 얘기 저 얘기하고 싶어 져 쓸데없는 말들이 많아졌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나만의 여행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의 지우개에 의해 사라지기 전에 하나씩 수다 보따리들을 풀어보려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글을 써나가길 혼자 응원해 본다. :)  







+ 80일의 게으른 동남아시아 여행 루트 - https://drive.google.com/open?id=1YVgW2UvUVZ60nDrveaZhlHNnef3CDSF3&usp=shar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