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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Jan 11. 2024

2024년 01월 10일

찹스테이크와 고흐



점심을 먹으러 들른 경양식 식당에서 반 고흐의 '라마르틴느 광장의 밤의 카페' 스케치를 보았다. 채색된 그림을 걸어놓은 곳은 몇 번 보았어도 이번처럼 스케치 작품을 걸어놓은 곳은 처음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레 그림에 눈이 갔다.


그림 속 하늘은 이제 막 어둠이 본격적으로 내려앉는 듯했고 거리엔  행인 하나와 마차 하나가 지나고 있다.

아직 사람들이 몰리기엔 이른 시간인지 테이블은 절반쯤 비어있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에 열중이다. 마차는 가게 옆을 지나가고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의 손님이 호기심 가득 마차를 바라본다. 카페의 직원은 주문을 받으려는지 서빙을 하려는 것인지 여자 손님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가고 있다. 일상적 풍경.


고흐가 그린 선들을 살펴본다. 그가 그린 바닥과 그가 그린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그는 '참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뜻 그가 지닌 성실함이 마치 농부와 닮았다고 여겨졌다.

고흐는 그렇게 그림을 그린게 아니었을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 물을 주고 때를 기다리듯, 벌레를 잡고 작물을 돌보듯, 때론 변덕스러운 날씨로 피해를 입어도 결코 굴복하지 않듯,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햇빛이 강하면 햇빛이 강한 대로 그것을 견디고 이용하고 실패하고 일어서며 그렇게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란 걸 고흐는 그의 삶으로 증명했다.

생전의 그의 삶처럼 그는 어둡고 불운한 사람이었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했을 거라 생각한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고흐의 밤의 카페 스케치를 보고 있자니 그의 터치 속에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휙휙 착착 스스스슥---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지나는 그의 터치엔 농부 같은 성실함과 즐거움이 함께 배어 있다. 내 눈엔 그렇다.

고흐는 무엇에 끌려 저 테라스를 그렸을까 생각해 보니 모르긴 해도 테라스의 차양막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을 묵묵히 가리고 펼쳐져 밝고 따뜻한 빛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가만히 감싸고 있는 차양막. 어쩌면 그것이 그의 눈엔 무엇보다 빛나게 보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다렸던 음식이 나왔다. 돈가스를 먹으러 들렸지만 이곳의 Best 추천 메뉴가 모둠 찹스테이크라고 해서 그걸 시켜보았다. 맛은 평범하지만 내어온 음식에서 가게만의 확고한 색깔이 있는 것 같아 좋았다.

내부를 둘러보니 가게의 벽도 고흐의 그림들처럼 노랑과 올리브의 투톤으로 칠해놓았다.

고흐의 그림을 뒤로하고 식사를 한다. 고흐에겐 고흐의 길이, 나에겐 나의 길이 있으니. 그의 그림을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에 만족하며.





사설

근데 테이블에 앉은 이 손님들은 마치 전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는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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