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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Jan 22. 2024

2024년 01월 21일

만어사엘 다녀오다


뜻하지 않게 만어사엘 다녀왔다.

일전에 왔을 땐 평일이라 한산했지만 오늘은 휴일이라 그런지 잔뜩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제법 많았다. 사람들은 절 아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즐비한 돌덩이들 위로 올라가 돌들을 이리저리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등산용 소형 망치로 이돌 저돌을 열심히 두드려 보기도 하였다. 돌을 두드리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참을 집중해서 두드리는 걸 보니 그 사람에게는 꽤나 중요한 일인 듯했다.

기념품과 공양물을 파는 곳엔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워낙 조그만 곳이라 대기표라도 뽑아야 될 성싶었다. 절마당엔 몇 무리의 사람들이 조용히 거닐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중 몇몇은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러 법당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절을 찾았을 테지만 법당 안의 부처님은 그 모두를 똑같은 눈과 똑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와 절에 찾아온 다른 모두, 그리고 절 바깥세상의 사람 모두는 손오공이었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오공이 생겨난 곳, 그리고 돌아갈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생겨나 부처님 손바닥으로 돌아갈 것이니 어떻게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또한 손오공 자신이 바로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손오공이 손오공에게서 달아나고, 내가 나에게서 달아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 후 내 생각이 맞는지 그분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부처님은 돌을 두드리는 사내를 보는 눈과 똑같은 눈으로 나를 보시며 똑같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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