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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Feb 25. 2024

2024년 02월 25일

봄 오는 소리에.....


오다 말다 오다 말다,

오기 싫어 안 오시는 것인지,

수줍음에 안 오시는 것인지,

떠날 자리 못내 밟혀 머뭇거리시는지,

칠석의 연인처럼 애달파 그러는지.

언 발 곧추세워 해넘이만 바라보네.




쌀쌀한 날씨 속 오락거리기 시작한 비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르게 피어난 매화들은 계절의 변덕에 당황스러워하고 봉오리만 맺은 매화들은 언제쯤 얼굴을 내밀까 셈하고 있다. 꽃도 봉우리도 오르지 않은 녀석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하게 비를 맞으며 차분히 햇살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다. 

창틀 옆 배관에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탕탕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봄이 어디쯤 왔나 하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소리 대신 훅하고 바람이 불어온다. 차갑지만 매섭진 않은 바람. 바람은 따뜻함이 봄의 전부인 양 아는 나를 살짝 놀리며 지나간다.


요 며칠간 슬픔이 잔잔히 일렁였다. 아니 사실은 새해부터 였나보다. 일어난 일들에 회한을 느끼고 일어날 일들에 불안을 느끼며 여기에도 저기에도 머물지 못하고 동동거렸다. 변해가고 흘러가는 세상과 사람 속에 나 혼자 뒤처져 덜렁 남겨진 것 같아 두려웠다. 어제보다 1 밀리는 나아지고 싶었건만 되려 못해진 건 아닌지 초조했다. 오락가락 비처럼, 올까 말까 봄처럼.

자정이 조금 지나자 눈물이 날 거란걸 알아채곤 아주 잠깐 슬픔에 잠겨 울었더랬다. 그런데 울어보니 알았다. 많이 슬프진 않았다는 걸. 회한과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는 그대로이지만 그것들이 예전만큼 내 속에 차있진 않다는 걸.

열어놓은 창문으로 훅하고 불어온 바람은 따뜻함만이 봄이 아니라 했다. 생명을 키우고 빛내는 건 그것만이 아니라고. 어쩌면 봄은 따뜻함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눈과 비와 바람과 추위는 그저 따뜻함 위에 잠시 지나가는 흔적이요 유희일뿐일지도. 슬픈 것 같았지만 많이 슬프지 않았음도 어쩌면 속에 이미 봄이 들어와 있어서인지도. 아니 모든 계절의 속성은 본래 따뜻함 일지도. 생의 속성 역시 그럴지도.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도 춤추는 그림자 일지도.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가만 앉아 있으니 내 숨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고 나가고.......

그 숨소리 속에 봄 오는 소리가 있다.

봄이 오고 떠나고 봄이 오고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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