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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Mar 20. 2024

총체적 난국


봄빛이 세상을 시시각각 변화시킨다.

어제만 해도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어느새 목련이 피어나 낮보다 더 환한 빛을 뿜기도 하고 미처 몰랐던 자리에 노오란 풀꽃이 스르륵 올라와 있기도 하다. 늘 보던 먼발치의 푸석한 산등성이도 눈 깜짝할 새 초록을 띄고 있으며 전국에선 순차적으로 봄꽃 행사도 준비 중이다.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이지만 이미 와버린 봄 속에 서있는 내겐 가소롭게만 느껴진다. 세상이 언제 이리 봄빛으로 완연히 변했을까?

봄의 기운에 들떠 있는 사이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뭐 잊은 거 없냐는 듯 말을 건넨다.


"어이~그동안 잘 지냈어?"

"........"

"별일 없었지? 보고 싶었던 거 아냐?"

"........."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근심'.

제법 고풍스러운 이름이지만 말 그대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을 한껏 들고 생각지도 못한 때 불쑥하고 나타나는 녀석이다. 그렇다. 느닷없이 예고 없이 근심거리가 어깨를 툭툭 쳐왔던 것이다.


멀리 있는 거래처에 중요한 장비를 두고와 난감해지고, 느닷없이 벗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가 괜찮은지 보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냈으며, 이 난국에 겹쳐 가까운 친구의 마음까지 상하게 했다.

무거운 마음 위로 다시 무거운 마음이 겹겹이 쌓여간다. 총체적 난국.

일진이 사납다, 되는 일이 없다 같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라고 머릿속이 얘기한다.

느닷없이 바뀌는 건 봄빛만이 아니다. 하루의 마음도 예기치 못한 일에 느닷없이 바뀐다.

벗의 사고 외엔 모든 일들이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결코 내가 의도한 일들은 아니었다. 조금 더 세심했더라면, 조금 더 주위를 살폈더라면, 친구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주었더라면, 그러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되돌릴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엎질러진 물을 담는 것보단 깨끗한 컵을 다시 준비해 새 물을 받는 것이 어느모로보나 나은 일이다.

장비는 다시 준비하기로 했고 교통사고는 피해자에게 거듭 사과하고 보험처리와 병원 치료를 도와드렸다. 피해자가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할 순 없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은 일단 그렇게 처리했으며 내일 그가 좀 괜찮은지 다시 연락해 볼 생각이다. 사고처리를 우선한 다음 다쳤다는 벗을 만나 괜찮은지 확인하고, 가까운 친구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

내 어깨를 툭툭치며 다가온 근심에게 우선은 그렇게 해주었다.


근심은 왜 나를 찾아온 걸까? 좋지 않은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원인을 따져 올라가면 산업혁명의 시작과 농경사회의 시작은 물론 호모사피엔스로의 진화까지 거슬러 오른 다음 우주의 탄생까지 가야 한다. 결국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 뿐이고, 일어났으니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밤과 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하려 애를 써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다만 상황에 맞춰 상황을 받아들이고 계속 살아갈 뿐.


근심의 방문으로 총체적 난국이 된 오늘의 상황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장비를 놓고 왔음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생각보다 벗이 많이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있어 또 좋았다. 교통사고도 천만 다행히도 상대가 크게 다치지 않았고 나 또한 다치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의 마음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풀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일이 그렇게 큰 근심일만한건 아니다. 이보다 더 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음에도 이 정도로 끝났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덧붙여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경각심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래, 오랜만이야.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너도 그렇지?"


글을 쓰며 오늘의 근심에게 나는 뒤늦은 대답을 했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생길 순 없다. 나의 실수와 부주의로, 상대의 실수와 부주의로, 때론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 같은 일들로 악재는 찾아온다. 근심이 내게 찾아온 이유는 내 마음이 예전보다 좀 더 단단해졌는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혹시 중요한 건 잊고 지내진 않는지 해서이지 나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려고 온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근심은 여전히 남아있고 마음속 깊은 곳엔 아직도 원인을 찾아 헤매며 나를 탓하고 상황을 탓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온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근심에게 안부를 물으며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려는 소리 역시 들려온다. 그렇게 나는 이 난국을 지나고 있다.

그러다보면 겨울이 지난 자리에 봄이 오듯 어느새 근심이 지난 마음의 자리에도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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