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덕 Mar 25. 2024

봄이 왔다 꽃놀이 가자


찬바람이 매섭던 겨울의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꽃은 언제 볼 수 있나요?"

"봄이 오면 볼 수 있단다."

"왜 그때만 볼 수 있나요? 겨울에는 볼 수 없나요?"

"꽃은 볼 수 있을 때만 볼 수 있단다. 하얀 눈사람과 꽁꽁 언 강물을 겨울에만 볼 수 있듯, 꽃도 봄이 와야 볼 수 있단다. 그렇게 모든 건 때가 되어야 볼 수 있는 거란다. 그러니 아이야 볼 수 있을 때 볼 수 있는 걸 보도록 하렴."






꽃들이 피어오른다.

하얀 꽃, 분홍 꽃, 노란 꽃, 붉은 꽃 기다렸다는 듯 순서에 맞춰 여기저기 솟아난다.

점심 나절 지나며 보았던 앙상한 꽃나무를 저녁나절 지나며 다시 보니 그새 꽃송이를 마법처럼 후드득 피워냈다.

봄비와 함께 각색의 꽃들이 저마다 킥킥거리고 깔깔거리며 피어나지만 순서를 다투며 피진 않는다.

비와 바람과 햇빛과 온도에 맞춰 때가 되면 피어나고 때가 되면 사라진다.    

화무십일홍. 어떤 꽃도 열흘동안 붉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꽃에겐 그 열흘이면 충분하다.

화무일홍이라도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꽃은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만큼의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피워내다 미련 없이 사라질 뿐이다.

자신의 모습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지고 나면 이내 잊을걸 알면서도 원망하거나 미워함 없이 꼭 자신의 삶만큼만 살다 떠날 것이다.

왔을 때처럼.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어떻게 하면 고민이 사라질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 좋아질 수 있을까?

종종 이런 생각들이 불쑥 머리에 떠오르며 고민을 하곤 한다.

그러면 으레 최선을 다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바로 먹어야지, 더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질문이 조금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가 아닌 "언제"로.

언제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고, 잘 해내고, 다 좋아질 수 있을까?

그렇게 내가 내게 다시 물으니, 이렇게 내가 내게 다시 답한다.

"지금"




봄이 왔다. 꽃놀이 가자.

꽃이 지고 꽃놀이를 갈 순 없으니.

살아 있다, 좋아지자.

삶이 지고 다시 삶을 살 순 없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총체적 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