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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Jun 23. 2018

가마솥 꽃풍경이 내 스승이다.

산골 귀농이야기

산이 이제 막 세수를 하고 나온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지 없이 맑고, 투명하여 눈이 시리다.     

그런데 요즘 나의 화상은 어떤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난 근묵자흑이란 말을 좋아한다.

검디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이 말을....   

  

꽃밭의 모란이 진통을 하며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농사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뒤통수에서 검붉은 노을이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며, 

나의 집 옆 개울가에서 겨울을 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서울에 살 때의 찌든 때는 서서히 벗겨지고, 마음도 조금씩 맑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의 소리와 풍광을 옆구리에 끼고 살아온지 20년이 되어 간다.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떡갈나무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구분할 정도가 되었고 거기에 후렴을 붙일 줄 알게 되었으니 복에 겹다.

또 그 각각의 소리에 함께 춤출 수 있게 되었으니 세계적인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Berliner Philharmoniker)나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 부럽지 않다.  

   

귀농하고도 가끔 서울에 가서 강의를 하고 돌아올 때는 빨리 산골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내가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녔던 그곳이 아직도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어서 산골로 돌아가 깊은 숨을 쉬고 싶다.   

  

내가 헤르만 헤세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주는 철학과 위안이 더없어서이다.

그러나 거기에 버금가는 이유는 헤세가 그림을 그리고 꽃밭을 가꾸고, 자연을 돌보며 자신을 몸과 마음을 보듬어갔다는 사실이다.


독일을 그렇게 갔으면서 헤세의 고향 칼프에 못간 것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나도 헤세처럼 자연에 둘려 쌓여 살며 꽃밭을 가꾸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샹그릴라에 가 있다.

서론이 길었다.    

주변정리는 나중에....ㅎㅎ

얼마 전에 집으로 올라오는 곳에 가마솥을 줄세워 놓았다.

물론 아랫 도리가 깨져 못쓰는 가마솥을 사 모은 것이다.

그곳에 꽃을 심으려고...


번번히 꽃을 심었지만 돌봄이 신통치 않았는데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신통치 않고 목숨줄을 놓았다.

그러다 작정하고 다시 몇 년 전에 이렇게 가마솥에 꽃을 또 심었다.

내 키만한 삽을 들고 밭일에서 벗어나 진종일 꽃을 심었다.

하나하나마다의 표정을 생각했고, 그것이 피었을 때의 키도 배려했다.     


거기에 들어 앉을 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마사토와의 비율을 등 흙의 성격도 고민했다.

퇴비도 귀농주동자가 쓰는 친환경퇴비를 아낌없이 넣어주었다.

그들은 나의 마음을 구리스를 바른 것처럼 반질반질하게 해줄 것이므로 의식을 치르듯 그렇게 꽃을 심었다.  

   

열과 성을 다한만큼 그들은 은혜를 베풀어 주어 그 멋진 꽃들로 인해 행복했다.

그런데 농사일로, 글쓰는 일로 바빠 꽃 보는 일만 했지 인간이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어 그들은 또 목숨줄을 놓았다.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며 올해 다시 꽃을 심었다.

올해는 끝내주게 이 꽃들을 가꾸리라 마음먹었지만 잘 될는지...

어제 보니 벌써 풀이 쭉쭉 올라와 있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렇게 키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내 꽃밭은 허리수술하고 쑥대밭이 되었다는.....)

요즘 시간이 없었으므로 별빛을 머리에 이고 풀을 뽑아주었다.     

별빛 아래 꽃가마솥의 풀을 뽑아주는 이 시간이 더없이 귀하다.   


그대는 어떤 시간이 제일 귀한가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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