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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Sep 04. 2019

알함브라 궁전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다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추스리던 대학원시절

오늘은 그라나다의 보석, 알함브라 궁전을 <사랑>이라는 테마로 되새김질하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를 거쳐 그라나다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이어지는 황량한 들판에는 올리브나무들이 어찌나 많이 들어차 있던지 눈만 깜빡하면 내 눈에서 올리브 열매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들판이 황량하거나 말거나 중간중간 천연덕스럽게 핀 노랑, 핑크색 꽃들은 제 복에 겨워 웃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네 삶이 한없이 팍팍할 것 같지만 가끔은 오아시스 같은 핑크빛 환희도 어김없이 찾아올 거라는 신의 메시지 같았다. 

그래서 삶은 중단되지 않고 고통과 아픔, 기쁨과 환희가 뒤엉켜 꾸역꾸역 굴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알함브라 궁전에 다다르기 전, 언덕의 경사면에 구멍을 판 집시들의 굴로 된 집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집이라고 해봤댔자, 문짝 하나 없이 굴 입구를 알록달록한 천으로 막아 놓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 알록달록함은 번듯한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집시들의 삶이 언젠가는 그처럼 알록달록하기를 바라는 듯 바람이 불어 천막이 흔들릴 때마다 처연히 빛났다.

<알함브라와 사랑이야기> 그 첫 번째다. 

첫째는, 이슬람문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중반에 건축하기 시작해서 14세기에 완성한 것이다.

이 궁전의 마지막 주인인 보압딜 왕은 전쟁에 패해 이 궁전을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나며 “스페인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은데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깝고 원통하구나” 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페인을 잃은 것보다 더 애절해 하고, 사랑했던 알함브라 궁전.. 그 구석구석이 은은한 분위기와 스토리로 사람의 마음을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었다.


두 번째 <알함브라와 사랑이야기>는 그 유명한 타레가에 대한 것이다. 

타레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 스페인이 자랑하는 기타 작곡가이다. 

이 곡으로 인해, 알함브라 궁전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이미 가슴에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애틋함의 씨가 뿌려져 있다.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라는 세계적인 명곡을 작곡하게 된 데에는 아픈 사랑이야기가 있다. 

타레가는 제자인 콘차부인을 짝사랑했다. 

어느 날, 알함브라 중전에서 타레가는 사랑을 고백했고 콘차부인은 그의 애절한 사랑을 거절했다.

그날 밤, 타레가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 콘차부인을 떠올리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명곡을 작곡했다는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다. 

아픈 사랑을 알함브라궁전의 자빠지는 풍경 속에서 서글픈 사랑과 고독이 만나 음악으로 재탄생했으니, 그 곡이 얼마나 절절했을까는 찍어먹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곡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사랑의 절절한 물방울을 튀기며 아직도 울리고 있다.

우리 세대의 청춘시절에 알함브라 궁전을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때였다. 

그때는 해외여행이 슬리퍼짝 질질 끌고 옆집에 마실 갈 정도인 요즘과는 달랐으니까.

 

대학원 시절, 진로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내 청춘이 너덜너덜해져 있을 때, 이 곡을 들으면 손끝이 알콜 중독자처럼 달달 떨렸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세 번째 사랑이야기>는 이것이다. 

궁전 내에 물의 정원인 아키아중정 한 쪽 벽에는 수백 년 되어 보이는 나무가 죽어 묶여 있었다. 

왜 베어버리지 않았을까 궁금했는데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이 나무 아래서 근위대 귀족이 후궁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이것을 알게 된 왕...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귀족을 처형한 다음 잘려진 머리를 나무에 매달았다. 

사랑을 빼앗긴 왕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이제는 애궂은 나무에게 사랑의 배신에 대한 화가 미친 것이다.

나무의 죄목은 “사랑의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뿌리를 잘라 죽였다고 한다. 

‘사랑은 이처럼 질긴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잘라버리지 않고 죽은 나무를 그대로 묶어 놓아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와 같은 ‘사랑이야기’ 를 간직한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알함브라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하루 관광객 수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고 여권심사까지 했다. 

궁전을 내려오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사랑의 궁전’(?)으로 향했다.

신부와 신랑의 해맑은 미소가 좋아 사진 한 장 부탁했더니 흔쾌히 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빌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으로 낙인찍힌(?) 덕에 그 놀라운 관광객 수로 스페인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알함브라 궁전이니까 처음부터 관광지로 뻐근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궁전은 200년 정도 거의 폐허로 방치되다 시피 했는데 이것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쓴 <알함브라 이야기>다. 

거기에 가세해서 앞에 설명한 타레가가 작곡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덕분이라고 하니, 관광에 있어서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에서 드라마나 영화, 광고 등 이 궁전을 배경으로 찍은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TVN에서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물론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거기에 바로 타레가가 작곡한 그 명곡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이 소개되고 있다.


여행은 추억을 만들기도 하지만 잊었던 추억과 섬세한 감정까지 죄다 소환해내는 무한의 힘을 지녔다.

그러니 내가 이 '여행'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나는 안달루시아의 새하얀 마을 ‘미하스’로 간다.


*2000년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기 위해 둘다 사표내고 서울에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으로 귀농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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