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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스텔라C Nov 18. 2019

조카가 아니라 회원님입니다

호식회의 시작과 원칙


한 달에 한 번씩 조카들과 밥을 먹습니다.  다들 새집 지어 나가는데, 여전히 헌 집에 살고 있는 두꺼비 이모에게는 조카란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조카들 옆에 오래 살아 남기 위해서 산 토마스 기차나  레고 선물세트로는 집은 못 지었어도, 변두리 전세 정도는 얻었을 겁니다.   물질 공세의 한계를 느낄 때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조카에게 아무리 잘해줘 봐야, 중학교 가면 끝,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이모랑 놀지 않을 거라며, 허튼짓에 돈 쓰고 시간 쓰며 맘 버리지 말라 충고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 옆에서 이모로, 친구로, 선배로 오래 살아남을까 고민했습니다.   '요식업계에 먹히는 서희선’, ‘네트워킹의 서희선'이라는 몇 안 되는 제 장점을 십분 살리기로 했습니다.  조카님이 아니라, 회원님으로 모시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세상의 문제를 푸는 방식은 '모임' 이니까요.   호식회가 만들어진 이유입니다. 네, 호식회는 이렇게 눈물 나는 이유로 시작되었습니다. 싱글 이모가 조카들 옆에 오래 버티기 위해서, 삼십 살 연하의 안전한 친구를 갖기 위해서, 노후가 덜 외로우라고. 뭐,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손 씨 형제가 워낙  개성 넘치고 매력적이긴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조카로 태어나주어서, 그들 부모에게 조금은 감사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간사와 회원으로 처음 만난 날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사소 작가가 중학교 입학 전이었고,  손 대표님이 골라내고 못 먹었던 초밥 네타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서, 4년이 넘었거나, 살짝 모자란 것 같아요.  아마, 수요 미식회의 시작과 거의 같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 대표의 경우 처음엔 거의 누워 먹었습니다   기꾸 초밥이 동부이촌동에 있었을 때 사진)


호식회라는 이름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 사소 작가가 지었습니다.  이후에 손 대표가 회를 주로 먹으니' 회식회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해서  회식회라  변경을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호식회로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호식회든 회식회든 회원님들 곁에 오래 살아남는 게 목표입니다.  회원이라고는 단 세명,  딱히 확장성도 없는 가족 모임이라고 해서 운영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 호식회는 먹는 모임입니다.
단식원 동창 모임이 아닌 이상, 아니,  단식원 동창 모임도  드실지 모릅니다, 모임에서는 음식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호'식'회인데요.  호식회 회원님들과는 먹는 것을 중심으로 만나게 되는데요. 그저 맛있는 것 먹는 정도로는 흥행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간사이자 이모는 매월 프로그램을 고민합니다.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그램으로는 수요 미식회 맛집 따라잡기, 미슐랭이란 무엇인가,  수제 햄버거 최고 맛집은 어디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습니다.

#무릇 모임이란 어쨌든 집단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맛있는 음식은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열죠.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왜 이 식당을 왜 골랐는지,  이 음식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등등을 가르칩니다.   가령 초밥이라면, 왜 다이에 앉아야 하는지,  먹는 순서는 어떻게 결정하는지, 간장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등등의 매너도 알려줍니다.  돼지곰탕에서도 밸런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저 셰프님은 원래 어디서 일하셨는데, 왜 이 음식을 만들게 되셨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면 음식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인생 이야기로 건너뜁니다.  회원님들이 성장함에 떠라 진보와 보수는 무엇이 다른가와 같은 질문들도 등장합니다만 아직까지는 네이버 검색으로 가능한 수준이긴 합니다  

# 회원 가입 및 등업에 대한 규칙은 필요합니다.

물론 이 모임은 이미 동생 둘이 중년인 이후로 신규회원이 들어올 수 없는, 즉  모임의 스케일업이 불가능한 모임입니다.  영원히 같은 회원이라고 하면 다소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준회원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카는 아니지만, 조카의 친한 친구를 초대하거나, 간사인 이모가 소개해주고 싶은 분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정회원님들의 교우 관계도 살필 수 있어서, 꽤 유익합니다. 실제로 손 대표의 가장 친한 친구인 진원 군은 세 번쯤 모임에 참석하여 가끔 안부가 궁금할 정도.   

# 호식회는 회원님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우리 모임의 메뉴는 회원님들이 결정합니다.   간사인 저는 이번 주제를 던지고, 방문 가능한 식당을 몇 개 제시하고, 의견을 듣습니다.    운영자가 회원들이 친인척 관계라고 얏봤다가는 이 모임 역시 소멸되고 맙니다. 모든 모임은 수명이 있으니까요.   모든 모임에 이렇게 의견을 묻지는 않습니다.  어떤 모임은 거의 제가 결정하기도 합니다.   맥락에 따라 운영 방식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모임 회비 부담은 모두가 납득하는 합리적인 방식이어야 합니다.

물론 두 분의 미성년자 회원을 회원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모임의 스폰서십은 전적으로 간사인 제게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엥겔계수가 높은 흥청망청 인생을 사는 중이라 다소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모임 시 가격대는 중-약- 강-중-약-강의 순서로 호텔 뷔페 한번 가면 햄버거 특집 한번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구성합니다.  다만, 언젠가 회원님들께 소득이 생기는 순간, 지금의 스폰서십 체제는 변경이 있을 것이라는 걸 늘 이야기해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 이 챕터의 제목은 일찌감치 정해두었습니다.  '모임의 여왕'입니다.

 (시험기간인 사소 작가가 급하게 그려준 이 그림 속 메뉴는 두 회원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중 하나인 이치류의 양갈비라고 합니다. )


부록.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갑니다.

손대표 : 이모, 정말 짜증 나는 일이 있었는데, 지난번에 사준 딱지 말이야.  우리 반애가 와서 내가 관리를 못한다며 뺏어갔어

간사 : 돌려달라 해.  

손대표: 돌려달라 했는데 안 준대

간사 :형한테 말해  

손대표 : 우리 형은 말이야 태권도 일품이긴 한데 말이야, 나보다 약해

간사 : 그럼 엄마한테 말해

손대표 : 엄마가 뺏겨서 잘됐대.  그래서 말이야 선생님한테 말할까 봐

간사 : 그건 한번 더 생각해야해.  너네 반에 너 말고 뺏긴 애들이 많니?  그런 게 아니라면 좀 예민한 문제야.  근데 말이야. 그 딱지, 내가 사준 거지? 그럼 그거 이모 딱지 아니니? 걔가 이모 딱지를 가져갔단 말이지. 이모가 너네 학교에 딱지 찾으러 가야겠다.  

손대표: 그건 아닌 거 같아. 내가 알아서 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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