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서핑
여럿이 마시는 술도 좋지만, 혼자 마시는 술에도 미덕은 있다. 가령 회식이 팀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소주의 힘을 빌리는 의식이라고 정의한다면, 혼술은 스스로와의 속 깊은 대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가끔은 내 안의 복잡한 자아들과도 한 잔 마시며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 대화를 누군가는 달리면서 하고, 누군가는 명상으로, 누군가는 술을 한 잔 앞에 두고 한다. 내 선택은 혼술이다. 때로는 내가 나를 더 아프게도 하고, 때로는 내가 나를 더 깊이 위로하기도 한다. 첫 혼술은 여행지에서 시작됐다.
혼자 간 여행길, 미국 한인타운의 어느 식당이었다. 설렁탕을 주문하며 생각했다. '둘이 왔으면 녹두전도 시켰을 텐데.' 고쳐 생각했다. '혼자 왔다고 녹두전을 못 시킬 건 뭐람? 남기면 되지.' 녹두전을 시키며 생각했다. '둘이 왔으면 막걸리도 시켰을 텐데.' 또 생각했다. '혼자 왔다고 막걸리를 못 시킬 건 뭐람. 녹두전도 있는데.' 그리하여 어느 가을 이른 점심, 설렁탕과 녹두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고개 하나를 넘는구나. 마음은 가벼웠다. 기분은 씁쓸했다. 넘고 싶어서 넘는 고개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앞 중국집을 지나려는데 고량주가 당겼다. 들어갈까 말까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삼십 년 넘게 살고 있는 '동네' '중국집'이었기 때문에. '점잖은 직장에 다니는' '나이는 한참 먹은' 저 옆집 여자는 왜 혼자 술을 마시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은 궁금해할지 모른다. '어쩐지 혼자 술 마시게 생겼더라니. 게다가 고량주라니.' 수군거릴지도 모른다. 늘어난 것이라고는 잔주름과 자기 검열뿐인 이 나이 든 여자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몹시 신경 쓰였다. 여행지의 혼술보다 동네 중국집에서의 혼술 난도가 더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핑계는 유효했고, 뜨끈한 군만두를 곁들인 고량주는 마시고 싶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이제 혼술은 어디든 두렵지 않을 거라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중국집 문을 힘차게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