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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사 Feb 26. 2020

03. 피난일기 - 기미상궁 납시오.

하노이 음식 이야기 1.

남편 윤건은 김치를 먹기 전, 항상  접시를 내 앞으로 스윽 민다.     


“이(미사) 기미상궁?”

“예썰.”     


그렇다고 그가 왕이라는 것 아니다. 여기서는 사실 내가 갑이고 그가 을이다. 내가 기미상궁 노릇을 해주지 않으면 그는 김치조차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불쌍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음... 통과. 이 정도는 오빠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엄중한 시식 후 내가 그린라이트를 준 뒤에야 남편은 겨우 젓가락을 든다. 이 남자, 결혼하기 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 어휴, 과거로 돌아가서 살짝 보고 오고 싶을 정도다.     


젓갈을 못 먹는 불쌍한 남편.

윤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저도 어리바리한 미사를 보면 결혼 전에 저거 사람 구실은 했나 싶어요. 일례로 (미사가) 출근해야 하는 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더라고요. 아침마다 정말 전쟁을 치렀는데 진정한 문화 충격이었죠.”     


쳇. 원래 결혼에는 서로의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뭐든 입에 넣고 보는 나와는 달리 남편에게는 못 먹는 음식이 몇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젓갈이다. 하지만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수와 느억맘 아닌가? 고수는 알겠는데 느억맘은 무엇이냐고? 아래 윤건의 설명을 참고하자.       


윤건) “느억맘(Nuoc Mam)은 영어로 피시소스(fish sauce)입니다. 느억맘에 라임, 설탕, 칠리 등을 더한 새콤달콤한 소스는 느억맘 ‘참’ 혹은 느억맘 ‘파’(Nuoc mam cham/pha)라고 하죠.”     


느억맘 소스.

미국에 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은 흰쌀밥에 느억맘 소스만 있어도 잘 먹는다는 친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맨밥에 젓갈이라니. 윤건 뒷목 잡고 쓰러질 소리다. 처음에는 나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실제로 밥에 스윽스윽 비벼 먹어보니 새콤달콤하고 짭조름한 것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물론 그 말을 전해준 친구도 베트남인은 아니니 100% 믿진 말자. 하지만 확실한 것은 느억맘이 베트남 가정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은 대표적인 소스란 것. 그 말인즉슨, 베트남에서 윤건이 아무리 길을 잘 건너고, 난다 긴다 하여도 나 없이는 안 된다.         


윤건, 잘해라 정말. 


윤건) “젓갈 그거 사람 먹는 거 아닙니다. 맛있는 거 많은데 왜 굳이 그런 걸 먹는 거죠?”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둘 다 잘하는 게 한 가지씩은 있어서. 나는 뭐든 잘 먹고, 남편은 길을 잘 건넌다. 게다가 서로 불쌍히 여겨주니 이 정도면 서로 꽤 잘 만난 것 같지 않은가?       


그럼 오늘도 바퀴 한 쌍 이야기는 이만 각설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 기미상궁으로서 하노이에서 우리가 먹은 주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노이 불패 음식 1위, 분짜(Bun Cha)>

하노이에서 우리의 주식이 된 것은 단연코 분짜(bun cha)였다. 분짜는 원래 하노이 음식으로, 하노이에 간다면 '무조건' 먹어 주어야 하는 음식이다. 참고로 나는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듣기만 해도 압박스러워서 나는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은 웬만하면 믿고 거른다. 하지만 분짜는 감히 예외라고 하겠다. 왜냐고? 그야, 너무 맛있으니까. 


윤건) “숯불에 구워 훈연 향 가득한 삼겹살과 동그랑땡 같은 고기가 새콤달콤한 느억맘 소스에 담겨 나옵니다. 소스에 젓갈이 들어가지만 워낙 새콤달콤하게 가미가 된 맛이라 젓갈의 쿰쿰한 느낌은 없었어요.”    


<분짜 34>의 분짜

쌀국수를 젓가락으로 조금 집어 소스에 푹 적시고, 느억맘 소스를 촉촉이 머금은 구운 고기 한 점 척 올려서 호로록, 냠냠, 꿀꺽. 오예, 이건 무조건 통과!


윤건) "사진에서 보다시피 채소와 향채가 한 소쿠리 나옵니다. 그리고 소스에다가는 고추, 마늘 등의 양념장을 취향에 맞게 곁들일 수 있죠."   


자주 갔었던 식당의 이름은 <분짜 34>. 나는 이 곳이 소위 ‘오바마 분짜’라고 불리는 곳 보다 더 맛있다고 자신한다. 게다가 가격은 35,000 동(1,700원가량)으로 매우 저렴하다. 그러나 곧 오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니 얼른 가 보시는 것을 권장드린다. 물론 소음과 매연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하노이 불패 음식 2위, 포(Pho)>

쌀국수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속이 확 풀리는 맛이라 해장에 딱 그만이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자극적이지 않아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것. (물론 50일 내내 먹다가 아주 약간 물리긴 했다.) 게다가 쌀국수에는 젓갈이 들어가지 않으니 기미상궁 노릇도 필요 없었다. 즉, 누구나 다 좋아할 맛. 다만 하노이의 쌀국수는 호치민의 쌀국수와는 조금 다르니 아래 윤건 선생의 말을 참고하자.      


윤건) “북부 하노이 쪽의 쌀국수는 국물이 더 맑고 담백합니다. 반대로 남부 호치민 쪽에는 국물이 더 기름지고 무겁죠. 게다가 향채, 숙주, 파, 양파 등의 채소를 더 많이 곁들여 먹습니다.”     


사실 호치민은 가보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하노이에서 쌀국수를 먹을 때 숙주는 아예 보지를 못했다. 따로 주는 채소 소쿠리도 없었다. 다만 라임은 늘 있어서 나는 늘 고추를 올리고, 라임 두 개 정도를 넉넉히 짜 넣어 먹었다. 

요렇게 고추, 라임 팍팍. 
윤건) "<포 가 끄응 로이(Pho Ga Cuong Loi)>는 사실 집 근처라 자주 갔었던 식당입니다. 가 보았던 닭 쌀국수(pho ga) 식당 중 가장 깔끔한 맛이었어요."


딱 봐도 닭가슴살 같은 고기가 들어가 있다. 내가 365일 다이어트하는 줄은 어찌 알고 말이다. 국물에도 기름기가 거의 없고, 정말 딱 담백한 닭 육수 맛이다.  


소고기 쌀국수(pho bo)를 먹으러 주로 갔었던 식당은 <포 가 항 디우(pho ga hang dieu)>가 가장 맛있었다. 길가다가 현지인이 바글바글해서 그냥 들어가서 먹은 집. 식당 이름이 ‘포가‘인 만큼 닭 쌀국수가 주력인 듯하지만, 소고기 쌀국수가 더 맛있었다.  다만 길바닥에 낮은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 흠이다. 

 

소고기 쌀국수

    


이만 끝. 


응? 끝이라고? 그렇다. 부끄럽지만 딱 여기까지만 하노이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불패 음식이었다. 그리고 이 뒤에 줄줄이 이어지는 음식들은 '이 기미상궁 기준'으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는 애매한 음식이니 참고하시길. 괜히 먹었는데 맛이 없으면 욕할 테니 조금 더 보수적으로 솔직히 말하려고 한다. 

  

<하노이 음식- 개인의 취향 편>

1) 반미. 

즐겨먹던 에그 반미.

바게트 빵 안에 베트남식 고기와 채소를 넣어 먹는 샌드위치 반미(banh mi)는 나에게는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빵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며, 사실 매일 하나씩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추천 식당은 너무 유명한 반미 25


하지만 윤건 가라사대, 반미는 "그저 그렇다"라고 한다. 원래 남편은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먹는 종류의 음식은 햄버거를 포함하여 원래 다 싫어해서 원하는 만큼 자주 먹지는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먹고 싶어서 한이 된다. 


윤건) "거참, 이상하네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먹었던 것 같은데..."


매일 먹고 싶었다고! 하지만 참고로 나도 들어가는 고기의 종류인 파테(pate)는 우리 집 고양이가 먹는 캔 느낌이라 싫었다. 참고하자. 


반미를 먹는 미사. 


2) 반꾸온.

나는 사실 반 꾸온(banh cuon)도 맛있었다. 딱 보면 무슨 맛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쌀가루 반죽으로 얇은 피를 부쳐서 말아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으로, 쫀득 쪽 득한 식감이 매력이다. 하지만 리스트에서 제외된 이유는 느억맘 소스의 젓갈 향과 남편이 싫어하는 떡 같은 식감 때문이다. 추천 식당. 

  

3) 닭발 & 닭날개 숯불구이. 

숯불구이.

자, 다음은 우리가 닭날개와 닭발을 포장해 온 뒤 숙소에서 나눈 대화이다. 다음 대화를 보고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예측해보시길.  


"까악!!!!"

"왜 그래?"

"발... 발톱이..."

"발톱이 왜?"

"아니, 내 발톱이 아니라..."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닭발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왜냐고? 닭발의 발가락(?) 끝에 날카롭고 뾰족한 발톱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 순간 그 발을 입에 넣고 우물거릴 자신이 없어졌다. 평소에는 잘만 먹던 닭발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닭의 발을 먹다니! 


그리고는 미안하지만 남편이 시켜온 닭날개를 내가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윤건) "딱 하나만 산 닭날개를 다 빼앗기고 말았죠. 뺏어먹지 않겠다는 말에 저는 또 속고야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뭐라 하였나. 결혼은 희생하는 거라고 했지 않은가. 


일기 끝. 


<하노이 불패 음식은?> 

1) 분짜

2) 포가, 포보 


*나머지 음식은 다음 주 하노이 음식 2편에서 한꺼번에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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