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사 Jul 12. 2020

시한부 고양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쵸비, 안녕


“척수 내부에 종양 소견이 보입니다.”    

  

수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침착했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울먹이는 나와 남편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말을 이었다.      


“여기 이거 보이시나요?”     


흑백의 MRI 이미지 위. 그의 손끝이 경추 부위를 가리켰고, 그때서야 우리는 쵸비가 왜 침대에서 소변 실수를 했는지,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애처롭게 말라버린 그 작은 몸뚱이 속에 기어코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은 종양. 작고 희끄무레하여 한입거리도 안되어 보이는 그 것이 우리의 사랑스러운 늙은 고양이, 쵸비의 다리와 또 그의 삶을 천천히 마비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혹시 죽는 건가요?”   

“네, 사람으로 치면 시한부 같은 겁니다.”  

“얼마나 남았나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몇 주가 될 수도 있고, 몇 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까맣게 몰랐다. 얼마나 아팠을까. 소변 실수를 한 쵸비를 보고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나의 무지한 상상력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오줌 냄새가 폴폴 나는 이불을 세탁기에 우겨 넣으며 짜증을 냈던 순간도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우리 아이가 죽음의 선고를 받은 날은 2020년 4월 21일, 화요일이었다.           


다리 하나가 없는 쵸비. 알고보면 이빨도 하나도 없다.

시한부 고양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아마도 갓 낳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산모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 아기가 없지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을 보니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무조건 잘 먹여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2~3시간에 한 번씩 캔을 땄다. 심지어 자다가도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비몽사몽 렌지에 사료를 데웠고, 눈 밑에는 여느 산모들이 그러하듯 다크서클이 점점 더 짙어졌다.


어느덧 나는 진정한 캔따개 집사로 거듭났다. 연어, 참치, 치킨, 고등어, 정어리 등등 최대한 꼬릿하고 기호성이 좋다는 전 세계의 캔들을 사 모으며 통장은 이내 텅장이 되어갔지만, 빈 캔이 쌓여가는 것은 은근히 보람된 일이었다.        


하지만 거의 전신이 마비되어 그 것 조차도 못 먹게 되었을 때는 20분마다 주사기로 고칼로리의 회복식을 강제급여 해야 했다. 소화력이 약해진 탓에 한 번에 많이 급여하면 먹은 것을 다 게워냈기 때문이었다.


매일 먹인 양을 기록해가며 최대한 몸무게를 유지해 보려고 노력했건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앙상해졌다. 쓰다듬을 때마다 척추의 마디마디가 다 느껴질 정도로,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보일 정도로. 그렇게 볼품없이 말라버린 쵸비를 보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했다.      


집은 엉망으로 어질러졌으며, 그 예로 식탁 위에는 제때 냉장고에 넣지 않은 대파 한 단이 대책 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것이 나의 가출한 정신머리 같다고 생각했지만, 치워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아니, 치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욱 정확하다.   


어느 날 보니 내 ‘정신머리’가 사라져있어서 깜짝 놀라 남편에게 물었다.      


“여기 있던 대파 어디 갔어?”

“버렸지.”

“헉. 왜 말도 없이 버렸어? 일부러 말리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완벽한 메타포 같아서 사실은 간직하고 싶었다. 드라이플라워 같이 바짝 말려 나의 시각화된 게으름과 무능함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었다면... 나는 과연 돌I일까. 물론 언젠가는 못 견디고 버렸을 테지만, 적어도 사진 한 장 정도는 기념으로 남기고 싶었다.      


어쨌든 나는 그런 소소한 자기비하를 반복하고, 하루 종일 죽어가는 아이만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았다. 위로해 주는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은 남편과 눈만 마주쳐도 하루에도 수십 번을 울었다. 그런 나는 내가 봐도 너무 유난스러웠고 창피해 숨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나 약해빠진 인간이었던가. 쵸비의 보호자로서 마땅히 더욱 강인한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도리어 내가 직면한 나의 모습은 서른이 넘어서도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해 일삼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


그렇게 나는 작년부터 미뤄온 임신 계획을 또 미루고야 말았다.           


남편이 찍어준 사진. 지쳐 잠든 나와 품에 안겨 자는 쵸비.

사람들은 어떻게 다들 엄마가 되는 것일까. 우리 엄마는 어떻게 엄마가 된 것일까. 엄마의 엄마는 또 어떻게 엄마가 된 것일까. 어떻게 엄마로서 힘들고 고된 순간들은 버텨낸 것일까.      


우리 엄마 김희숙 여사는 아픈 아이를 둘이나 하늘나라에 보냈다. 물론 동생 둘을 잃은 나에게도 너무 큰 트라우마였지만, 엄마는 분명 수십 배, 수백 배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김 여사님은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선배 엄마로서 나에게 말했다. 이제 쵸비를 놔 주라고. 네가 미련을 못 버리니 쵸비가 못 떠다는 거라고. 그렇게 엄마는 항상 그렇듯 나를 달랬다.        


정말 내가 미련을 버려서일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 딱 2달이 되는 날, 쵸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든 그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 남편과 나는 어떠한 거부감도 두려움도 들지 않았다. 육신만 남아버린 아이의 몸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고, 이마에는 작별의 키스를 했다.


때는 2020년 6월 21일 일요일, 6시 경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쵸비의 죽음으로 내 안에 무언가 조금 바뀐 것을 느낀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었던 가족의 죽음 때문일까. 지금까지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 자체가 아니라 영혼 없이 남겨진 차가운 육신의 껍데기가 그러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늙은 고양이의 생이 다한 육신을 마주한 나는 이상하리만치 평안하고 고요했다. 오히려 지금껏 힘든 세상을 살아 내느라 고생한 그 몸뚱이에 감사했고, 제 역할을 다한 지친 살과 뼈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도 없으면서 끝까지 입속으로 밀어 넣은 밥을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으며 남은 수명을 하나도 남김없이 써버린 쵸비. 너무도 열심히 먹어서 난 또 치매인가 했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가는 날까지 열심히 먹었더라면 나였더라도 떠나는 순간까지 후회는 없었으리라.      


나도 다른 이들도 모두, 언젠가는 끝까지 살아낸 육신과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이 비루한 몸뚱이에 감사함을 느끼며 난 이만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쵸비의 엄마여서 행복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일은 분명히 힘들지만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나도 어서 다시 용기를 내어야지.      


쵸비, 안녕. 



작가의 이전글 03. 피난일기 - 기미상궁 납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