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사 Apr 16. 2024

엄마도 ADHD는 처음이라

자주 깜빡하는 바쁜 엄마를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  

출산 후 빨리 일하러 나가고 싶어서 나는 한 달 만에  20kg를 감량했다. 쑥쑥 빠지던 체중과는 달리 배는 금세 들어가지 않아서 급히 응급용으로 구매한 거대한 검정색 정장 바지를 꺼내 입었다. 


휴... 바지 단추를 겨우 잠그고 작아진 신발에 발을 구겨 넣으며 나는 아주 잠시 자책했다. 뻔히 일하러 가야하는데 왜 미련하게 30kg나 찌웠을까? 

하지만 나는 이내 콧노래를 부르며 차키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우울해 할 시간이 없었기에. 


"엄마, 다녀올게 사나야."

젖먹이 애를 두고 어디 가느냐고? 후훗. 엄마 드디어 일하러 간다!! 그동안 주차장에 처박혀 있느라 
아주 심심했을 나의 귀여운 자동차를 타고 말이다. 엑셀을 밟을 때 나는 부앙~ 소리에 나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야호!!! 프리덤!!! 자유다!!!!!"

뭔가 위 글만 보면 일에 미친 여자인가 싶겠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냥 뭘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무기력해 지는 인간이라 그렇다.

나는 10년차 프리랜서로 한영 국제회의통역사이자 영어 사회자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쭉 일 하느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첫 출산이 좀 늦어졌다.

임신과 출산도 순전히 코로나 덕분이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에피데믹의 여파로 외국인이 한국에 오질 않으니, 하루 아침에 나는 모든 일을 잃고 백수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남아 도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시험관을 시도했고, 감사하게도 한방에 임신이 되었다. 무통 천국에 출산도 너무 순조로웠고, 코로나도 점점 잠잠해지면서 9월부터는 그동안 열리지 못한 회의들이 앞다투어 열리게 되었다.  

복귀하기에 정말 최적의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끊이지 않는 전화 문의에 나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출산 직후인데 가능하시겠어요?"
"하하하, 불러 주시면 북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내가 이 글도 쓰지 않았겠지? 

머리가 돌아가지를 않았다. 통역하고 사회를 보는데 말이 생각나지 않아 버벅였다. 게다가 약속을 자꾸 잊었다. 매주 반복되는 일들도 갑자기 그냥 까먹었다. 어느 순간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쉽게 화가 났고, 특히 고마운 사람들과 가족에게 더 그랬다.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위로는 되었지만, 나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 하루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아기와
떨어져서 혼자 격리하는 동안 깊은 자아 성찰을 했고, 외롭고 지루했던 기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정신과에 방문했다. 그리고 설문지와 뇌파 검사를 끝낸 후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전형적인 ADHD 입니다."

내 나이 당시 만 37. 막 엄마가 된 나는 ADHD를 진단받았다.  

 

작가의 이전글 시한부 고양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