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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앳더리버 Jan 21. 2019

그린북  

당연한 권리에 대하여

  

 뻔한 스토리에, 진부한 감동으로만 가득찬 영화는 아무리 짙은 교훈이 있더라도 그 의미가 가려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선한 의도가 퇴색되어 교훈 마저 그저그런 것으로 치부하게 되고 만다. '그린북'은 그런 영화가 될줄 알았다. 적어도 영화관에 가기 전까지는.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은 온대간데 없고, 차에서 쿨하게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피자 한판쯤은 거뜬히 반으로 접어 드시는 후덕한 미국 아저씨로 변한 비고 모텐슨(토니 발레롱가 역)이 그가 그인지 확신이 서기도 전에, 문라이트의 완전 멋진형 마허샬라 알리(돈 셜리 역)가 손에 기름 묻을까 망설이며 굵은 입술로 '앙' 치킨을 베어먹는 장면을 본 순간. 이미 둘 사이에 펼쳐질 일들이 궁금해졌다.


비고 모텐슨(토니 발레롱가 역)과 마허샬라 알리(돈 셜리 역)

  거의 모든 것이 상반된 이들의 캐릭터는 흑인 보스와 백인 기사, 주류 백인과 비주류 흑인이라는 역설에 따라 혼란스러운 시대를 반영한다. 사실 인종 차별은 딱 피부에 와닿는 이슈가 아니어서 머리로만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일제시대에 한국인 사장과 일본인 운전기사, 밥을 먹으러 일본인 식당에 가지만 정작 사장은 밥을 먹지 못하고, 일본인 운전기사만 먹을 수 있는 요상한 상황이라면 좀 더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까?


  특히, 인종차별이 강하게 남아있는 남부에 흑인 천재 음악가 돈 셜리가 공연하기 전 화장실에 가려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재 음악가라 플래카드도 크게 붙여놓고, 점잖은 나리들이 수십명 모이는 공연에 주인공으로 초대까지 받지만 정작 공연장 화장실은 쓸 수 없는 뭐 엿같은 상황은 감독이 의도한 블랙코미디 설정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이런 일들은 마지막 공연장에서 들뜬 분위기에 공연 전 식사를 하지 못하고, 식당 매니저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이 이어지며 절정에 달한다.


  백인들이 쓰는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고, 그 앞에 허름한 푸세식(?)일 것 같은 화장실을 쓰라는 백인 집사, 온갖 매너있는 표정과 제스쳐를 하며 오랜 전통이라 식사는 하실 수 없다고, 근처에 가면 이용하실 수 있는 식당이 있다며 친절히 맛집까지 소개해주는 레스토랑 매니저의 표정은 찌푸리는 인상하나 없이 교양으로 가득하지만 천재 흑인 음악가 돈 셜리의 마음을 난도질한다.


'와.. 이 양놈들 식민지 개척할 때도 저런 표정이었겠지?'


  이 장면에서 영화 '히든 피겨스'가 떠올랐다.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은 천부적인 수학능력을 갖고 NASA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지만 정작 화장실은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가기 위해 800m를 힐을 신고 뛰어 간다.  웃픈 영화적 설정일 수 있고, 그 사실을 안 상사(케빈 코스트너)가


"나사에서 모든 사람의 오줌색깔은 똑같아"


라는 대사를 하며,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잘 마무리(?)하는 듯하지만 그린북에서는 결국 모든 상황에서 거절되고 만다. 두 영화 모두 생리적 본능까지 차별받는 설정으로 그 당시의 비인권적 시대를 표현한다. 약 60년이 지난 우리가 볼 때 관찰자 입장에서


  '에이, 이런 말도 안되는 게 어디있어. 화장도 못 쓰게 하고 ㅎㅎ 밥도 못먹게 하는 게 말이 되나.' 하며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 인식하는 내가 대견하고, 그런 일이 또 있다면 꼭 그 백인 집사, 식당 매니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리라. 라는 다짐까지 한다.


근무 중 화장실을 가기 위해 800m를 달리는 캐서린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의 변론>이라는 책을 보면 '오줌권'이라는 요상한 용어가 등장한다. 1급 지체 장애인으로 평생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김원영 변호사가 직접 만든 어휘다. 생존권, 조망권, 행복권, 태극권 등은 들어봤어요. '오줌권' 이란 단어는 일단 뭔가 원초적인 느낌이 난다. 태양권처럼 뭔가 오줌을 장풍처럼 쏘는 건가... 라고 아주 살짝 생각이 스쳤지만 오줌권은 그야말로 '소변을 볼 수 있는 권리' 즉, 누구나 모든 상황에서 제약을 받지 않고, 소변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고 한다.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변호사가 '오줌권'이라는 어휘까지 써가며 강조한 이유는 특히 지체 장애인들의 경우 장애인 화장실이 많지 않아 외출하기가 어렵고, 특정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급하게 패트병에 볼일을 보기가 부지기수고, 데이트를 하다가도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출 시, 가는 루트에 장애인 화장실이 갖춰져 있는지 검색까지 하고 간다는 이야기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불편함을 다 알 수 있을까?



  '그린북' 이란 1930년부터 60년대까지 출판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을 말한다. 즉, 흑인들이 백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 호텔 등에 가지 못하도록, 흑인들만 갈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여행 가이드북인 것이다. 60여년 전 여행하기 위해 그린북을 들고 이리저리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흑인의 모습에 웬지모를 익숙한 기시감이 드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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