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타임 Mar 25. 2021

윤스테이가 재미없는 이유

윤식당과 무엇이 달랐을까

윤스테이 재미있게 보고 계신가요? 코시국이라 기대도 안했는데 윤스테이를 한다고 하니 윤식당 팬으로서 기대가 됐습니다. 한옥에서 외국인 손님을 맞는 설정으로 진행됐고 가을 시즌을 지나 겨울 시즌도 막바지입니다. 멤버 구성은 스페인 가라치코 멤버에 최우식씨가 합류했죠. tvn 예능 여름방학의 성적이 저조했던 터라 최우식씨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는 않았는데 윤스테이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분량요정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네요.

원래 빵터지는 예능은 아니지만 보면서 힐링되고 여행가는 거 상상하고 손님들 이야기 엿듣고 멤버들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회를 거듭해도 기억에 남는 장면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윤식당과 비교해볼 수 밖에 없는데요.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 여러가지가 다르더라고요.


1. 장소

이전의 윤식당은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발리 길리섬과 스페인 가라치코에 갑자기 한식당을 차리고 음식을 만든 경험이 적은 배우들이 식당을 운영하는 설정으로 신선함을 안겨줬습니다. 윤스테이는 지금은 외국에 갈 수 없으니 가장 한국적인 곳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자는 설정입니다. 전남 구례의 문화재인 쌍산재에서 진행됐고, 첫회 방송과 함께 예약 주문이 폭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힐링이 절실한 시점인데 쌍산재는 사람들간의 만남은 최소화하면서 오롯이 힐링할 수 있는 장소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촬영을 위해 장소를 개조하면서 문화재 훼손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촬영하니까 길리섬이나 가라치코의 전경을 보여주는 것처럼 색다른 장면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오로지 장소가 쌍산재와 구례역으로만 한정되니 회를 거듭할수록 지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라도 계속 반복되면 일상이 되듯이 처음에 쌍산재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 10회째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2. 손님들

윤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일반인이고,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었지만 윤식당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특별했고, 그래서 그런 손님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안보는 척 하면서 배우들의 외모를 평가한다든지 서툴게 젓가락을 사용하고, 처음 접하는 한국 음식을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맛있다고 찬사를 보내는 장면을 보는 재미가 있었죠. 이번에도 비슷한 그림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어쩐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손님들이 우선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한국에 온 사람들이기에 대체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라 반전이 크지 않다고나 할까요. 정통 한식을 기대하고 당연히 맛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식사를 해서 그런지 리액션이 그리 인상적이지가 않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이유로 한국을 찾았지만 음식을 먹은 후 하는 비슷한 리액션으로 화면에서는 그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돼 버립니다.    


3. 미스 포지셔닝

이 부분이 제일 문제인데요. 주방에 있던 윤여정씨를 밖으로 빼서 리셉션 역할을 맡깁니다. 주방은 정유미씨와 박서준씨가 담당하고, 음료와 총지배인 역할은 이서진씨, 그리고 벨보이와 픽업, 서빙 등 잡다한 모든 일을 최우식씨가 맡죠.

 

윤여정씨는 장소와 식사 시간 등을 알리고, 계산을 하는 역할인데 말씀은 잘하시지만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가장 중요한 계산을 하지 않고 지나치는 등 일을 종종 빼먹는 일이 발생하죠. 홀에는 음료와 총지배인 역할을 하는 이서진씨가 있지만 정유미씨처럼 윤여정을 보조하기 보다는 멀찍이서 보고 빠진 일이 있으면 정말 총지배인처럼 지적을 해서 상황을 바로잡습니다.

 

얼핏 보면 역할을 잘 나눠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없는 포지셔닝으로 보입니다. 우선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가는 메뉴인 떡갈비를 만드느라 초반에 박서준씨는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어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헤드셰프라는 무거운 직책이 주어진 정유미씨도 주어진 일을 해내기에 급급합니다. 


윤식당은

손님들 간의 대화, 음식 비주얼, 손님과 웨이터의 케미, 요리사들의 케미, 윤식당을 둘러싼 외부 환경(숙소, 맛집, 지역 축제) 등이 어우러져 힐링 포인트를 만들어내는데, 역할을 재분배하면서 박서준, 이서진씨가 담당하던 손님과 웨이터의 호흡은 거의 최우식씨로만 쏠렸고, 요리사들은 음식 부담에 주방에서 전혀 케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박서준씨가 간간히 커플티네 하면서 말을 걸어봐도 정유미씨는 옷을 갈아입어야겠다고 "제작진"과 이야기를 합니다.


방송인이라면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음식도 잘해야 하지만 방송을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방송이 우선시 돼야 합니다. 하지만 과중한 음식 부담에 정유미씨와 박서준씨는 이부분을 놓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파김치가 돼서도 손님들이 찾으면 나가서 인사하고 음식 소개하고 제작진에게 투정도 부리고, 정유미와 이서진 뒷담화도 하던 윤여정씨와의 차이점입니다. 정식당, 박식당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서진은 윤식당처럼 음료를 열심히 만들지만 바쁠 때 서빙을 도와주는 것 정도만 할 뿐 다른 일은 하지 않습니다. 윤여정씨는 주문을 받고 최우식씨와 이서진씨가 서빙을 하는 역할이지만 윤여정씨의 속도에 맞출 수는 없으니 일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되지가 않습니다.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이서진씨가 윤여정씨를 답답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서진은 멍하니 있는 윤여정에게 "주문받으셔야죠"라고 지시하고, 윤여정은 알았다고 하고 나가면서 "쟤는 나를 가만히 못놔둬서 안달"이라고 혼잣말로 궁시렁대죠.


프로그램 제목은 윤스테이지만 윤여정씨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혼자 붕 떠버린 느낌입니다. 그전까지 이서진씨가 윤여정씨를 약간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고 답답해하는 게 보입니다. 직원들이 함께 라면을 먹으면서 윤여정씨가 "나는 어떻게 면을 후루룩하고 빨아들이는지 신기하다"고 이야기하는 데 모두 먹기에 바쁘고 이서진씨가 "힘이 좋으니까 그렇죠"라고 약간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개개인의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 공간에 있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접점이 사라지다 보니 윤여정씨 혼자 떠버리는 일이 생긴거라고 봅니다. 엄청 바빠 죽겠는데 팀장인지 사장인지 하는 사람이 뭘 해야할 지 몰라서 멍하니 있으면 당연히 미소가 지어지지 않겠죠. 


그 와중에 유일하게 윤여정을 응대해주는 게 최우식씨입니다. 주방에 있는 사람들은 최우식씨와 가장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혀 케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정통 한식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 웃음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최우식씨와 윤여정씨의 케미가 화제인데, 사실 최우식씨는 돌아가면서 모두에게 장난을 치는데 그걸 받아주는 사람이 윤여정씨이기 때문에 방송에서 예상 외의 케미가 나오는 걸로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분량도 챙기고요.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성공했던 이유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당연히 윤여정씨의 역할이 가장 큽니다. 유일무이한 캐릭터로 세련되고 까칠하면서 요리를 못하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인 윤여정씨는 존재 자체만으로 프로그램을 색다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프로그램이 성공하는 데는 한 사람만의 노력이 아닌 많은 사람의 노력과 외부요인이 작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너무 윤여정씨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4. 메뉴 선정

잘못된 업무 분담과 함께 메뉴도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마더소스 하나로 잡채, 불고기, 샌드위치를 만들던 윤식당과 다르게 손이 엄청 많이 가면서 평소에 자주 먹지 않는 메뉴로 구성되다보니 셰프들의 어깨가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닙니다. 또한 주스와 커피, 차를 서빙하는 서양스타일에 음식을 방까지 서빙하는 한식스타일을 더하다보니 서빙 일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서진씨가 본인이 서빙을 했더라면 이 상황을 분명히 개선했을 겁니다. 하지만 본인은 음료만드는 일을 주로 하다보니 서빙은 약간 뒷전인 느낌이었습니다. 아침 메뉴도 떡국과 팥죽으로 너무 헤비하게 구성된 것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침식사로 주스나 커피에 빵 한조각 먹는 서양인들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메뉴였을 것 같습니다. 아침은 서양식으로 간단하게 제공하는 게 어땠을까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5. 동떨어진 세계, 마스크없는 그들만의 세상

코시국이라 가족끼리 생일에 모이는 것도 조심스럽고, 친척의 장례식, 한번 뿐인 결혼식, 아기 돌 등도 조용히 넘어가는데, 손님들과 멤버들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인지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체로 거리낌이 없습니다. 열명도 넘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동백 라운지에 마스크없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꼈을까요? 현실 세계와 너무나 다른 온도차에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저 뿐인가요. 


6. PPL이 TV를 망하게 할 것이다

만두는 그렇다고 치다라도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등의 PPL이 몰입도를 방해합니다. 윤식당이나 효리네민박처럼 시청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좋은 프로그램들은 특히나 PPL에 신중해야 합니다. 현실세계에 떠나서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PPL이 나오는 순간 현실로 소환. PPL은 망해가는 방송가에 기름을 붓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낡은 한겨레신문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