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잖아. 언제 한 번 오면 딸 좋아하는 냉잇국 끓여줄게.
우리의 식탁은 마켓컬리가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뉘지 않을까요?
프리미엄 식재료만 엄선해 거의 전국에 걸쳐 샛별이 뜬 새벽에 배송해 준다니 기똥차죠.
처음엔 프리미엄세가 붙었지만 이젠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식재료를 맛볼 수 있어요.
합리적인 비용으로 평범한 집밥의 품격을 높인 거죠.
음식은 좋아하지만 요리는 부담스러워요.
그런 저에게도 최근 소소한 재미가 생겼는데요.
오늘 하루 잘 살아낸 나에게 저녁 한 그릇 차려주는 것이랍니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에요.
미리 얼려 놓은 밥에 계란 후라이 한 점과 김자반,
유리병에 담긴 시판 크림소스에 면과 *냉털한 채소를 더한 파스타.
딱 그 정도.
*냉털 : 냉장고에 남은 반찬, 재료를 털어먹는 것
평범하죠?
동물복지란도 다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구요.
고급져 보이는(?) 파스타를 다양하게 골라 먹는 사치를 당연하게 누리게 되요.
제철 음식처럼 건강하게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없을 거예요.
제철의 맛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제대로 맛보는 것.
이게 바로 프리미엄 식탁이죠.
제철 음식을 어떻게 하나하나 기억하겠어요.
장 보거나 시장을 지날 때 두리번 두리번 요즘 먹거리에 촉을 세우거나 운 좋게 발견해야죠.
저는 농부의 딸이에요.
봄이 오면 천지가 냉이고 쑥이었어요.
계절 속에서 뛰어놀고, 먹고 싶으면 집 앞에서 냉이를 캐면 그만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계절마다 달라지는 망원시장을 구경하는 게 좋아요.
매주, 매일 달라지는 제철 과일과 채소, 나물 값을 힐끔 보는 것도 흥미롭구요.
(농민이 받은 값보다 널뛰기 된 소비자가를 보면서 울화통도 터집니다)
시장에선 싱싱한 나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손 큰 시장 인심에 저는 노 땡큐라며 지나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나에게 요리해 주기가 취미인 동안만큼은 봄나물에 눈길을 줘야겠죠?
이게 바로 컬리다운 상품 기획이지
수제 맥줏집에서 흔히 볼 수 있죠.
몇 천 원 저렴하게 이 집 맥주를 다 맛볼 수 있는 맛보기 세트, '샘플러'요.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이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샘플러도 본 적 있어요?
이 상품 기획한 분 개인적으로 멋지다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이 분의 작명 센스부터 나물 구성과 가격까지 재치가 넘쳐요.
스크롤을 더 내리면 왜 컬리는 다르다고 하는지 다시 한번 교육 받을 수 있어요.
컬리의 톤앤보이스가 더해져 봄마다 돌나물이 제 입안을 깔끔히 정돈해 주었음을 새겨볼 수 있었고요.
원추리가 약한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마트 직원이 알려주진 않죠.
나물 데칠 때 시간이 다 다른 줄 모를 수도 있고, 저처럼 귀찮아서 대강 적당히 삶을 수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미연에 방지당했어요.
사실 어느 정도 정성껏 만든 상세페이지라면 당연히 들어있을 수 있는 내용들이죠.
그런데 이게 참, 컬리라서 더 와닿는 게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좋은 것만 골라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엄선한 제품만 판다는 약속을 잘 지켜왔잖아요.
저는 이 내용들을 곱씹어 볼수록 시골에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해요.
"이건 무슨 풀이야? 이건 무슨 꽃이야? 그것도 먹는 거야?"
라고 쫑알쫑알 묻는 제 모습과 아는 만큼 최대한 답해주던 부모님이 떠오르구요.
언제 한 번 오면 제가 좋아하는 냉잇국을 끓여준다는 엄마 대신 컬리가 이렇게 챙겨주는 것만 같아요.
프리미엄이라며 마케팅과 브랜딩하는 브랜드는 참 많죠.
이제는 이런 프리미엄 세상 속에서 정말 프리미엄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요.
그런데 컬리를 보고 있으면 비싸고 스타일리쉬한 것만이 프리미엄이고 명품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져요.
호화스럽고도 따뜻한 밥상.
컬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합리적으로
차려 먹을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