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불시에

풍선초 이야기(24)

by 리오라

7월은 장마와 불볕더위가 복잡한 이야기처럼 서로 얽혀 있어요.

많은 친구들이 아열대 지방에 산다고 들었는데, 내가 있는 이곳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집집마다 덥다는 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여기도 곧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이 집 저 집에서 들려오는 더위 투정에 간혹 짜증 섞인 목소리까지 섞여서, 나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예요. 그래도 천장에서 바람이 쏟아지고 나서는 소음이 조금 줄었어요. 바람 아저씨는 친절하지만, 천장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은 왠지 너무 쌀쌀맞아서 정이 잘 안 가요.


편백은 언제나 변함없이 고요해요. 내가 아무리 웃긴 이야기를 해도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에요. 내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자기소개를 하면서 꽤 오래 여기서 지냈다고 한 말 말고는 특별히 나눈 이야기도 없어요. 겉으로 보기엔 바늘처럼 뾰족해 보여도, 곁에 있으면 이상하게도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져요.

“숨 막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가끔 창가 쪽으로 잎을 돌리며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해요. 당연히 귀가 좋은 나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요.


정오도 되기 전에, 창밖을 내다보던 아줌마가 편백 쪽을 바라보더니 심오를 불렀어요. 그러자 심오는 갑자기 바퀴 달린 나무판을 들고 나타났어요. 그리고는 편백이 사는 커다란 파란색 화분을 낑낑대며 그 위에 올렸어요.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히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편백은 더 뾰족하게 잎을 세우며 황당해했어요. 그러더니 바퀴가 스르르 굴러 거실을 지나 현관 쪽으로 향했어요.


내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문 밖에서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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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집안으로 들어온 심오의 손에는 나무판만 들려 있었어요. 편백은?!


“진작 밖에 심어줄걸…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 자유야.”

심오의 말에 나는 사색이 되었어요.

조금 뒤에 아줌마도 들어왔지만, 물론 혼자였어요.


편백이 떠났어요. 아니, 나는 갑자기 이별을 당한 거예요.

오렌지자스민도 편백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 순간 눈물 같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장마처럼 끈끈한 슬픔이 마음을 가득 채웠어요.

이별은 불시에 찾아와요.

그동안 편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생각에 뒤늦은 그리움이 몰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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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편백은 행복할 거예요. 이제 소원대로 갑갑한 화분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큰 몸을 좁은 화분 속에 넣기 위해 매일 조금씩 자세를 바꾸는 모습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있는 그대로를 받아줄 땅과 만났으니 얼마나 기쁠까요. 숨도 크게 쉬고 마음대로 여기저기 뻗어가겠죠.


그러고 보니 이별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네요.

제 자리를 찾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새로움이 시작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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