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23)
나는 창밖을 바라보는 걸 좋아해요. 내가 창가에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세상을 조용히 구경하는 일이 내게는 소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에요. 밖을 보다 보면, 세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장면을 바꿔요. 그중에서도 내 눈에 자주 들어오는 풍경이 하나 있어요. 엄마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에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침, 버스에서 내리는 오후, 그리고 간혹 햇살 좋은 날의 느긋한 산책 속에서도 그 장면은 어김없이 나타나요.
하지만 요즘은 엄마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시간조차 귀해졌다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작은 손과 큰 손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찡해져요. 특히 이제 막 땅을 딛기 시작한 아이가 흔들흔들하며 엄마 손을 꼭 쥐고 걷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손을 잡을 것처럼 따뜻해지죠.
아이는 낯선 세상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리다가도, 고개를 들어 엄마를 확인해요. ‘여기 있지?’ 하고 묻는 눈빛으로 말이에요. 그러면 엄마는 작은 손을 꼭 잡으며 안심시켜 주죠. 엄마가 곁에 있다는 믿음만으로 아이는 조금 서툴지만 당당하게 걸어가요. 믿음이라는 건 참 신기해요. 용기가 솟게 해 주거든요.
아빠와 이별하던 날, 아빠는 아주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가 있다는 걸 꼭 믿어야 해.”
그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과 함께 그 말이 점점 내 안에서 자라나요. 그래서 나는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있다고 믿어요.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니까요. 마음이 지치고 외로울 때,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 믿음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줘요. 버틸 수 있게 해 주죠.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에요.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믿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아빠도 멀어져요. 꼭 잡고 있던 풍선이 멀리 날아가버리는 것처럼요.
그런데 믿으면 보여요. 그리고 믿음은,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어떤 빛 같은 거예요.
바람 아저씨를 보세요. 사람들은 직접 보지는 못해도 바람 아저씨가 있는 걸 믿죠. 아저씨는 지나는 곳마다 늘 흔적을 남기거든요. 하지만, 난 바람 아저씨를 볼 수 있어요. 나를 살짝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토닥여 주기도 하고, 지루한 오후엔 살금살금 웃으며 간지럼을 태우기도 해요. 너무 크고 넓어서 한눈에 담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아저씨가 있어요. 아빠처럼요.
내가 아빠가 있다는 걸 믿는 순간, 아빠는 내 곁으로 와요. 하지만 그 믿음을 놓치는 순간, 안개처럼 멀어지죠. 아빠뿐만 아니라 구름, 바람, 그리고 아뽀야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아뽀야가 나를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다고 믿어요. 내가 하늘로 길게 뻗어가다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헷갈릴 때도, 아뽀야가 나를 잘 붙잡아 줄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두렵지 않아요. 물론 아뽀야는 눈에도 보여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끔은 그렇게 잘 보이는 아뽀야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봐요.
믿음이란... 보이지 않을 때 잘 보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게 아닐까 하고요.
나는 안경을 써본 적은 없지만, 심오가 가끔 안경을 쓰고 나타나 나를 오래 들여다볼 때가 있어요. 안경을 쓰면 더 또렷하게 잘 보인다고 했어요. 아빠가 없는 것 같아 막막하고 두려울 때,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마음속 안경을 꺼내 쓴 적이 있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모든 것이 다시 선명해졌어요.
이제는 알겠어요. 아빠가 왜 그 말을 하셨는지를요. '믿어'라는 말이 '힘내라'는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더라고요. 믿으면 보이고, 믿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분명 있어요. 믿는 순간 곁에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것들 말이죠. 사람들도 이 비밀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마음이 든든해질 텐데. 적어도 심오에게는 꼭 전해주고 싶어요.
게다가 믿음이라는 마법은, 단 한 푼도 들지 않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누구든, 아주 조심스럽게 한 번쯤 그 믿음을 꺼내어 써봤으면 좋겠어요.
뒤뚱거리더라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비결은, 엄마 손을 잡듯 믿음을 꼭 붙잡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