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아픔
얼마 전 8주쯤 된 아기를 떠나보냈다. 부모의 마음이라는걸 쌀알만큼이라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1주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아기 걱정을 하면서 가장 깊은 우울증의 밑바닥보다도 더 고통스럽다고 느꼈다.
언제쯤 난황이 보여야 하고 언제쯤 아기가 보여야 하고 언제쯤 심장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산부인과 검진 의자에 앉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느리긴 했지만 열심히 자랐던 아기는 나에게 심장 뛰는 모습을 보여준지 이틀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기가 떠난걸 확인하고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의 심정은...
산부인과 병동은 도처에 만삭 임산부들, 신생아들이라 유산한 사람 입장에서는 눈 둘 곳이 없다. 매분매초 숨쉬는 것도 괴롭고 숨죽여 울거나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만 주구장창 봤다. 잠시라도 현실로 돌아오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많이 잊은 줄 알았는데 그 생각을 하니 지금도 눈물이 쏟아진다. 다행히 아기는 자연배출되었고 아마 수술은 안해도 될 것 같다. 자연배출 중에 운좋게 아기집을 가질 수 있었고, 고민하다가 좋은 곳에 묻어주었다. 아기를 묻어주고 가끔 지나가면서 아기한테 말도 걸어준다. 살아있었던 때처럼.
아기를 묻은 후에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날 이후로는 울지 않게 됐고 (오늘 빼고) 여러가지 재미있게 놀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잠시 직장을 쉬는 김에 평소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기분전환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유산을 경험하고 나서 마음이 많이 다치고 지쳤다. 하지만 부모님도 있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있으니 어느 시점부터는 슬픔을 정리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항상 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잊었어, 난 괜찮아, 다음엔 건강한 아기가 찾아올거야... 라면서 명랑하게 웃고 다니지만 사실은 가벼운 우울감, 무기력감을 계속 느껴왔는지도 모른다. 또 유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도 크고.
그래도 이번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건 깊은 우울증에는 빠지지 않았다는거. 그냥 심연을 잠시 보고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임신 준비때문에 더이상 약의 도움을 받지 않을 거지만 (먹어도 되는 약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지금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내 마음의 힘으로 잘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직장으로 복귀하기까지 남은 시간들을 잘 써야겠다. 뭐하러 다니지...? 정말 오랜만에 클래스들을 검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