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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Oct 06. 2022

아날로그인의 전자책 만들기

[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24 꿈을 이루었다 3 - 디지털 출판 맛보기

그렇게 갑자기 출근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말이다.

“공고에서는 ‘문항 저작’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그게 정확히 무슨 일인가요?”

“아이들이 저희 플랫폼을 이용해서 학습할 거예요. 책을 읽기도 하고, 교과 내용을 학습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패드로 공부하는 문항 페이지를 만드는 거예요.”

쉽게 말해 학습지를 조판하는 거였다. 다만,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문항. 애니메이션 요소도 섞여 있어서 몰입하며 학습하고 문제도 패드로 조작하며 푸는 것! 시대가 변했음을 체감했다.    

  

하나의 문항으로 가로형과 세로형 두 페이지를 만들었다. 패드를 어느 쪽으로 돌려 보든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회사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페이지를 편집했다. 파워포인트와 유사한 방식의 프로그램인데 인디자인만큼 정교하지는 않아도 편집디자인을 했던 내게는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래도 언제나 예외가 있었다. 고학년 수학, 특히 분수와 그래프가 그랬다. 분수는 한 줄로 편집할 수 없으니 손이 많이 간다. 그래프가 나오면 스트레스부터 받고 시작했다. 작은 원그래프 안에 글씨를 구겨 넣을 수 없으니 이렇게 저렇게 해보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꺾은선그래프는 더했다. 선이 꺾이는 지점마다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어줘야 한다. 이건 자바스크립트로 해결해야 했는데 나는 잘 모르는 분야라 건너뛰었다.  


계약은 한 달, 두 달 단위로 진행했다.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남은 문항에 따라 필요한 일손이 달랐다. 처음 일하기로 했던 기간보다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해서 내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몸이 온전하지 않았다. 점심도 아무거나 먹을 수 없었고, 야근도 불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내게는 참 적정한 일이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그만두었다. 업무량이 줄어 인력이 필요 없어진 결과였다. 나는 최후 3인으로 남아 끝까지 일하는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신규 문항 작업을 완료했고, 이제는 기존 문항을 유지 보수할 한 명만 필요했다. 그러니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하지만, 세 명 중 그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IT 전공자였던 동료는 업무가 힘들어서, 나를 포함한 다른 동료는 비전공자라서 거절했다. 자바스크립트를 금방 배우면 된다고 했지만, 그리 가벼운 업무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다시 내 진로를 고민해야 했다.    

 

원래 나는 디지털 출판을 매우 싫어했던 사람이다.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무너뜨리는 날이 올 거라는 전망에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고 주장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게 전자책은 절대적으로 불쾌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 업무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만든 문항을 패드로 검수하며 보니 종이로 된 학습지보다 훨씬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흥미로워 보여서 자바스크립트를 공부하려고 알아보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출판계로 입문할 때 가졌던 목표는 교육계열 회사에서 교재를 만드는 일 아니었던가?! 어쩌다 보니 또 나는 꿈 하나를 이루었다. 이런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았겠는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었던 나는 독서지도사 공부를 하던 중이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대면 학습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없어 중단했다. 다른 관심사였던 오디오북을 만들고 싶어서 교육받을 예정이었으나 이 또한 코로나 때문에 연기되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는 답답한 상황이 오니 이 분야의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진로를 상의하고 싶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퇴사 후 쉬면서 호기심으로 전자책 출판 수업을 들었다. 당시에 인디자인을 잘 다루면 전자책 제작에 유리한지 내가 질문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강사에게 받았던 명함이 아직 내 지갑에 들어있었다.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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