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26
HTML과 CSS는 웹디자인에서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다. 전자책은 이를 활용하여 여러 개의 HTML 페이지를 압축한 EPUB(electronic publication)이라는 형식으로 제작한다. 이는 레이아웃이 PDF처럼 고정되지 않고 각 디바이스에 맞게 유동적이라는 게 큰 특징이다. 또한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많이 읽는 단행본은 주로 텍스트에 이미지가 삽입되는 정도이므로 epub 2.0 버전으로 제작한다. epub 3.0 버전은 애니메이션이나 오디오 등 멀티미디어 기능을 추가할 때 제작한다. 단행본에 음악을 삽입하거나 어학 교재에 오디오를 삽입하거나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많은, 아이들이 보는 디지털 학습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3.0은 HTML과 CSS로만 제작할 수 있는 2.0에 비해 다양한 기능이 요구되므로 더 많은 it 지식이 필요하다.
입사해서 처음 한 업무는 종이책으로 출간한 책을 전자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종이책 디자인과 최대한 유사하게 전자책에서 구현하는 게 목표이다. 전자책을 만들려면 종이책을 만든 원본 인디자인과 pdf 파일이 필요하다.
pdf 형식으로 만들 때는 원본 인디자인 파일을 저작권 문제가 없는 무료 서체로 변경한다. 이는 출판사 내부에서 디자이너가 작업할 수 있다. 요즘에는 서체 사용 계약 시 인쇄물 외에 전자책도 별도로 계약하는 추세이므로 계약만 되어있다면 무료 서체로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전자책 사용 계약이 되어있지 않은 서체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epub으로 제작할 때는 인디자인 파일을 HTML로 내보내기 하여 시작한다. 인디자인 편집 시 단락스타일과 문자스타일을 잘 적용했다면 내보내기 한 결과물도 같은 스타일끼리 정리되어 깔끔하게 추출된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스타일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스포이트 툴로 모양을 바꾸며 작업했다면 스타일이 잡히지 않아서 결국 원본을 보고 일일이 적용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인디자인 없이 텍스트만 있는 원고일 때도 하나하나 스타일을 적용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글 원고로 인디자인에 조판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제작비가 추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HTML로 변환한 데이터를 Sigil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옮겨서 제작한다. Epub 제작 프로그램은 다양한데 Sigil도 그리 완벽한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장단점을 따져봤을 때 Sigil이 가장 편리하여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3.0을 제작할 때는 책에서 사용한 html 페이지, css 스타일, 이미지, 오디오 등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챙겨서 목록을 구성해야 하지만, Sigil은 그런 절차를 프로그램에서 자동으로 구성하므로 크게 신경 쓸 부분이 없어 편리하다. Sigil에 관해서라면 이미 온라인에서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epub은 기기나 뷰어에 맞추어 화면 구성이 유동적으로 바뀐다. 페이지가 고정되지 않으므로 페이지를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종이책 페이지와 모양 그대로 epub 3.0 버전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만화책처럼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리할 수 없거나, 원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경우에는 PDF가 적합하다. 단, 뷰어에서 확대/축소하며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몇 년 전, 갑자기 특정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전자책 바람이 불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대체 어떤 책이길래 일반 단행본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을 받는 건지 궁금했다. 대체로 내가 본 데이터는 디자인이 거의 없는 텍스트로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pdf 문서였다. 인디자인 같은 편집프로그램이 아니어도 한글이나 워드, 파워포인트 등 문서 프로그램에서 PDF로 변환만 한 형식이었다. 책마다 가지는 고유번호인 ISBN도 발급하지 않아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 유통할 수 없는 문서였으므로 내가 만들며 이야기하려는 전자책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