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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Oct 29. 2022

편집디자이너가 전자책을 만든다면

[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28

처음 전자책을 만들었을 때, 외계어와 싸우느라 머리가 아팠다. 컴퓨터 학원에 다녀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만들다 보니 학원에서 공부하고 입사한 직원들보다 빨리 늘었다. 왜냐하면 전자책은 종이책과 제작 방법만 다를 뿐 결국 책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편집디자이너 경력을 100% 활용할 수 있었다.  


독서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는 현실에서 책 한 장 들춰보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속표지, 저작권, 일러두기, 머리말, 판권 등의 요소가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책을 제작하지 않았나? 책의 구조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반복되는 요소는 같은 모양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상사의 당부가 내겐 지극히 기초적이고 당연한 내용이었다.     


서체는 기본적으로 명조와 고딕으로 나눈다. 생김새를 보고 명조 계열인지 고딕 계열인지 구분한다. 내가 명조와 고딕을 바로 구분한다는 사실이 상사에게는 놀라운 일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 사실에 더 놀라웠고 말이다. 나중에 들어 보니 직원들은 대부분 컴퓨터 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입사한다고 했다. 그래서 IT 지식은 빠삭하지만, 책의 구조는 차치하고 서체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같은 모양의 요소도 제각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중 일부는 아무리 가르쳐도 틀리는 일이 더 많아서 처음부터 알아보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이때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신입 직원을 교육해보니 정말 그랬다. 대신 나는 그 직원들의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종이책을 편집디자인 할 때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동일한 형태를 묶어 같은 스타일로 지정하는 것이다. 편집이나 수정할 때 스타일 하나만 고치면 책 전체의 같은 요소가 자동으로 바뀌므로 작업시간이 단축된다. 도비라, 제목, 본문, 표, 그림, 상자 등의 단락스타일을 만들고 제목에는 제목스타일, 본문에는 본문스타일 등 요소마다 같은 스타일을 적용한다. 볼드, 이탤릭, 밑줄, 첨자 등을 지정한 문자스타일도 만든다. 전자책도 같은 원리이다. <p> 클래스는 단락스타일, <span> 클래스는 문자스타일로 만들어서 적용한다.   

   

인디자인에서 스타일을 만들 때 grep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본문에서 영어와 숫자는 영문 서체가 자동으로 적용되도록 기능을 만드는 것이다. 병기하는 단어의 크기를 일정하게 줄일 수도 있다. 이때 정규 표현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전자책을 만들 때도 정규표현식을 사용한다는 사실! 이미 grep에 익숙하다면 전자책 제작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다만, 인디자인에 익숙하다면 전자책을 만들면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인디자인에서는 반자동이었던 기능인데 전자책을 만들 때는 일일이 명령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글자 크기 항목에서 숫자 9를 선택하면 크기가 9로 바뀌는데, 전자책을 만들 때는 스타일을 지정하는 css 파일에 ‘font-size: 0.9em;’이라고 써넣어야 한다. 도형의 위치를 지정할 때도 마우스로 도형을 클릭하고 드래그해서 이동하던 것을 전자책에서는 top과 left 값을 입력하고 저장하고 미리 보고 수정하고 저장하고 미리 보는 방식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그저 당황스러웠다. 대체 이걸 왜 일일이 해야 하는 걸까?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으로 답답할 뿐이었다. 

PDF를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다. PDF의 핵심은 전자책용 무료 서체로 변경하는 것이므로 인디자인에서 서체를 변경한다. 이때 생기는 문제는 당연히 페이지가 틀어지는 것! 그러면 또 원본과 비교해서 똑같이 맞추는 노동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깊었다. 늘 어떻게 만들면 예쁠지 생각하고 연구하며 디자인했는데 무의미한 단순 반복 노동이 즐거울 리 있겠는가.     


이렇듯 출판 편집디자인 경력자라면 기존에 하던 일을 바탕으로 전자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책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인디자인과 PDF 편집,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포토샵을 활용하니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업무 이해 능력이나 처리 속도, 결과 면에서도 완전한 신입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IT 계열에서는 HTML과 CSS를 활용하는 업무는 난도 높은 일로 보지 않는다. 사내에서 부서를 옮기는 경우라면 문제 되지 않겠지만, 출판계에서 IT 업계로 옮기는 경우라면 고려할 부분이다. 연봉 조정 시 회사와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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