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도통 스물아홉만큼의 어른은 못 되는 것 같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럼 스물여덟에는 그만큼의 어른이었는지. 스물일곱, 스물여섯, 스물다섯, 대체 어디까지 돌아가야만, 제 나이만큼을 살았던 내가 있는지. 분명히, 나는 시간만큼 자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내 능력에 값을 정하고, 나는 그만큼의 돈을 받기 시작했을 때, 그 돈 뒤로 내 삶이 밀려나는 것이 당연해졌을 때, 그리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 되었을 때, 그래서 하루하루 속이 상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과연 그때부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하기는 어려워졌으나,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고 더 많이 선명해졌던 것이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그 마음은 나를 계속 좀먹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작아지기만 했으니,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스물아홉만큼의 어른이 되지 못했다. 나이만큼을 자라지 못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마냥 나이를 더하기만 하면 그만큼의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나이만큼의 어른이 되고 싶어,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싫어할 때마다, 싫은 그 마음을 느낄 때마다, 내게 좀이 썼는데, 아무래도 싫어하는 마음 자체를 버릴 수는 없었다. 이미 지울 수 없이 지나치게 선명한 마음들이었다. 본인의 필요에 따라, 내 시간을 제 멋대로 쓰려는 짓을 싫어한다. 다른 사람의 업무를 이해할 마음도 없이, 함부로 낮잡아 보는 짓을 싫어한다. 듣지 않고, 더 고민하지 않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만 하는 짓도 싫어한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 같은 일들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 그래서 내 안에 싫어하는 마음을 만드는 사람들을 내 옆에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더하여, 내 옆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싫어하는 마음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의도치 않게 이미 수없이 그래 왔겠지만, 그래도 말이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마음을 느끼게 만들어서, 그를 좀먹게 하는, 그가 나이만큼의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그보다 싫은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장 크게 좀먹을 일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 누군가가 좋아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일을 궁금해하겠다.
하루를 온통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했으나 여전히 알 수 없다. 이제는, 좀 먹힌 자리에 내가 다시 자라나서, 스물아홉만큼의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언젠가는 다시, 내 나이만큼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생일을 맞는 어제가 어렵고 힘들었다. 어쩌면 싫었다. 내가 조금 더 좀 먹힌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