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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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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Feb 04. 2023

나의 20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30대가 되어서 바라보는 20대

 올해 내 나이 서른셋. 30대에 접어든 지 4년 차다. 글을 적기 위해 나이를 적고 보니 생소한 기분이다. 서른셋이라니, 나, 꽤 먹었구나... 그도 그럴 것이 30대가 되고나서부터는 어디 가서 좀처럼 나이를 밝힐 일이 없었다. 매년 한 살 한 살 먹는 게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던 20대와는 확실히 다른 흐름이다.

 요즘 나는 나의 30대, 그러니까 요즘 내게 일어나는 변화와 생각, 일상 등을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첫 화를 그리기 앞서 독자들에게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물었다. 여러 응답 중 한 가지 질문이 눈에 띄었다.


 '만약 2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나간 젊음에는(물론 지금도 충분히 젊지만) 무릇 후회가 묻어있길 마련이거늘,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는 걸 보면 나의 20대는 꽤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일상 속에서 '좀 더 어렸을 때 알았다면 좋았을 걸'하고 떠오르는 조언들이 있다. 꼰대짓만 허락이 된다면, 20대 시절의 나를 만나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다.


홍콩에서

 첫 번째, 남 눈치 덜 보고 살아라.

 MBTI가 INFP인 나의 기질은 어려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I, 내성적이고, N, 쉽게 공상에 빠지며, F, 감정이 여리고, P, 즉흥적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남 눈치를 오지게 많이 본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는 INFP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헤아린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선물을 고를 때도 말 한마디를 건넬 때도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에 초점이 맞춰진 사려심이 장점으로 작용하나, 반대로 상대가 느끼지도 않은 감정과 생각까지 걱정하는 부분이 큰 단점이 된다. 하지도 않은 생각이나 느끼지도 않은 감정을 확신하는 나의 태도가 상대에겐 도리어 불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부터는 INFP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짐작이 가더라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로지 INFP입장에서의) 배려심이 상대방에겐 불쾌함일 수 있다니, 차라리 무시하는 게 상대를 위한 태도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물론 상대방이 누구이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짐작이 가더라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며 나의 행동 또한 조금 더 과감해졌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은 내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움직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다면 사회성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손가락질받겠지만 내겐 밸런스가 필요한 일이었다.

 20대는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던 시기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남의 생각과 기분을 신경 쓸 시간에 눈치 보지 않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눈치 보느라 놓쳤던 기회도 많았잖아?


스물여덟, 졸업 사진

 두 번째, 내 생각과 가치관을 의심하지 말아라.

 암암리에 통용되는 듯한 사회적인 압박을 싫어했다. 이를테면 군대는 무조건 일찍 가야 한다던지, 학교를 졸업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존재한다던지, 졸업 후 일정 기간 내에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던지...

 나는 재수를 했고, 늦은 나이에 입대했고, 휴학은 4번이나 했으며, 당연히 졸업도 늦어져 졸업하고 나니 28살이 되어있었다. 남들의 평균과 다른 타임라인을 밟아오며 지금의 내가 후회하는 단 한 가지는 '불안함' 뿐이다.

 나는 불안했다. 밥 먹듯 휴학하고 여행을 다닐 때는 선배들이 '너 군대 언제 가냐', '군대 더 늦게 가면 후회한다',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로 불안을 조장하기 일쑤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다 허튼소리였다.

 늦은 군생활을 하며 나는 그곳에서 첫 책을 썼다. 머리가 제법 컸기에 쓸 수 있던 글들이었다. 휴학하고 다녔던 여행으로는 여행 에세이를 냈고, 그 기억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평균과 다른 타임라인 덕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나에게 맞지도 않은 시간을 억지로 좇는 쪽과, 느리더라도 충분히 고민하며 나에게 맞는 시간을 그려나가는 쪽, 과연 더 늦은 건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대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네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이 정답인 거라고. 그러니 느꼈다면 행동하라고. 더 과감하게.


스물네 살에 히치하이킹으로 유럽&발칸 반도 여행을 했다

 세 번째, 시간과 돈이 생기면 무조건 여행에 써라.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건 23살의 여름이었다. 그해 유럽 여행을 시작으로 해마다 꼭 두 번에서 세 번 이상,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씩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20대에 더 여행이 가득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20대 시절에는 그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치 하이킹, 노숙, 카우치 서핑 등 지금 생각하면 정신이 나갔었나 싶은 여행들은 오로지 20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여행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음만 있다면 그렇게 다닐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때만 한 용기가 없다. 잃을 게 더 많아졌기 때문이겠지.

 20대 때는 시간이야 만들면 있는 것이고, 돈은 없으면 없는 대로 다니면 된다. 요즘에도 많이 하는 생각인데, 가난할수록 낭만적이어지는 게 여행인 것 같다. 돈으로 할 수 없기에 채울 수 있는 다른 가치들을 가득 담아 오는 경험을 하고 왔으면 좋겠다.

 죽기 전에 그때의 여행 장면 중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스물넷, 체스키크롬로프에서

 네 번째, 도전 앞에 지레 겁먹지 말아라.

 배우를 준비할 때 오디션을 싫어했다. 내가 가진 것을 보여줘야 하는 방식이 3,4분 내의 조각 같은 순간이라니. 상품을 보듯 품평하는 심사위원들의 태도도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긴장했고 오디션 뒤엔 늘 후회뿐이었다.

 남들과 비교당하며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다면 그 시스템 밖으로 나오는 게 맞겠다 싶었고, 결국 지금은 배우의 꿈을 잠시 접고 살고 있다. 지금처럼 내게 맞는 새로운 무대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사실 나는 더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했던 지난 20대를 후회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주변의 심사위원석에 앉아있을 법한 사람들도 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란 걸 알고 나니 왜 그렇게 겁을 먹었을까 싶어 진다.

 오디션이 중요했던 20대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 밥 먹고 응가하는 똑같은 인간이란다. 다 별 거 없으니까, 별 거 없는 너도 뭐든 해 봐."


 다섯 번째, 불합리한 상황은 게임이라고 생각해라.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본인에게 손해인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MZ세대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런 친구들은 꼭 있었다.

 내게도 어떤 부분에 있어선 전혀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손해뿐인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하면 '그게 손해였을까?' 싶다.

 세상은 원래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모든 캐릭터가 완벽한 상태로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다. 모두 저마다의 다른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로 게임을 플레잉할 수 있다. 캐릭터는 퀘스트와 미션을 수행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성장한다.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고, 한계를 느끼지 않고 레벨업 하는 캐릭터는 있을 수 없다.

 이따금 삶에서 마주치는 불합리한 상황들은 나라는 캐릭터가 마주한 퀘스트며 미션이다. 이런 상황을 단지 세상이 내린 벌이나 시련처럼 느낀다면 끝도 없이 아래로 침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말이 달라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능력치와 레벨이 올라간다. 그때 느끼는 성취감은 게임 속 캐릭터의 성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무언가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 시작의 과정에서 무한한 막막함을 느낄 때도 적용하기 좋은 마인드다. 당장은 아무것도 습득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끊임없이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에 닿아있을 것이다. 빨리 알면 알수록 좋은 사실, 20대의 나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젊음이 최고의 무기임을 알아라.

 이 모든 조언이 용납되는 이유는 20대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있다면 그깟 나이가 무슨 대수겠느냐만, 20대라는 사실이 엄청난 파장을 지닌 시기임에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무기를 가졌음을 인지하고 충분히 활용했으면 좋겠다. 정말 금방 지나간다.


 이 글을 다 적어놓고 보니 꼰대력이 엄청나게 상승한 기분이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데 뭐 어쩔 텐 가. 20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아서 받아들이길 바란다. 받아들여서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지던지, 그러지 말고 알아서 잘 사시던지...! (우와, 진짜 꼰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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