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조향이 빚어낸 복합적인 꽃향기의 역사
향수 산업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편적인 향기 그룹을 꼽을 때 플로럴 부케 계열은 그 중심에 위치한다. 이 향조는 특정 꽃 하나가 가진 자연의 냄새를 묘사하는 대신, 장미, 자스민, 일랑일랑, 은방울꽃 등 다양한 꽃의 추출물과 인공 화합물을 섞어 다층적인 향을 조립해 낸 결과물이다. 개별 꽃의 특성이 서로 섞이면서 특정한 식물을 지시하지 않는 추상적인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 플로럴 부케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과거 19세기까지 향수 시장은 단일 꽃의 향기를 추출하여 재현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단조로운 향기 구조는 20세기 초 화학 산업의 발달과 합성 향료의 등장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조향사들은 알데하이드를 비롯한 화학 분자들을 천연 에센셜 오일과 혼합하여 향기의 발향력과 지속력을 끌어올렸으며,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복합적인 꽃향기를 공장 단위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꽃들이 하나의 다발로 묶인 향기는 근대 패션 산업과 결합하며 향수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이 글에서는 플로럴 부케라는 명칭의 기원부터 단일 향조에서의 탈피 과정, 조향의 화학적 토대, 그리고 현대 향장 산업에 미친 파급 효과를 차례로 살펴본다.
부케는 프랑스어로 꽃다발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조향 산업에서 이 용어를 차용한 것은 여러 종류의 꽃 향료가 한데 묶여 발산하는 후각적 형태를 꽃다발의 시각적 형태에 빗대어 분류하기 위함이다. 한 가지 꽃을 꽂아둔 화병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상과 형태의 꽃들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꽃다발의 물성을 향기 구조의 명칭으로 설정했다.
플로럴 부케 계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리플로어라는 조향 개념과의 대조가 필요하다. 솔리플로어는 장미면 장미, 백합이면 백합 등 단 하나의 꽃향기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조향 방식을 뜻한다. 플로럴 부케는 이 솔리플로어 방식에서 벗어나, 최소 세 가지 이상의 꽃 향료를 배합하여 특정 꽃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집합적인 향기 카테고리를 구축하며 향수의 분류 체계를 확장시켰다.
여러 꽃 향료가 섞이게 되면 인간의 후각은 개별 꽃의 냄새를 분리해서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플로럴 부케는 구체적인 식물의 지시성을 상실하고 '향기로운 꽃'이라는 관념적인 이미지로 남는다. 냄새의 출처가 자연물이 아닌 조향사의 배합 비율 자체에 존재하게 되면서, 플로럴 부케는 향수 시장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장르가 아닌 추상적인 향조를 다루는 전문적인 카테고리로 확립되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유럽 사회에서는 향수를 사용할 때 단일 꽃향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제비꽃이나 라벤더, 장미 단일 향수는 순결하고 얌전한 태도를 중시하던 당시 상류층 여성들의 미적 기준에 부합했다. 여러 향을 섞어 짙은 냄새를 풍기는 것은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적 규범 아래서 저속한 취향으로 치부되었다.
부케 형태의 향수가 일찍 발전하지 못한 데에는 기술적 한계도 존재했다. 당시의 수증기 증류나 냉침법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에센셜 오일의 종류가 한정적이었고, 꽃마다 추출되는 오일의 농도와 점성이 달라 이들을 섞었을 때 향이 조화롭게 섞이지 않고 층이 지거나 변질되는 현상이 잦았다.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향수의 구조는 단조로운 형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함께 중산층이 성장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단조로운 꽃향기에 대한 소비자의 피로도가 증가했다. 사람들은 더 오래 지속되고 발향력이 강하며,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적인 향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천연 원료만으로는 이러한 시장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었으며, 이는 조향 업계가 다층적인 향기 물질을 조립하는 부케 양식의 조향 기법을 탐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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