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감정에 전염되지 않는 부드러운 감각 방어선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업무에 집중하던 중, 옆 자리 동료의 입에서 새어 나온 깊은 한숨 소리가 귓가를 맴돌 때가 있습니다. 평범한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이 많아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는 작은 백색소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초민감자(HSP)에게 그 한숨 소리는 단순한 소리의 진동을 넘어, 공간의 공기를 순식간에 무겁게 짓누르는 물리적인 무게감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동료의 한숨에 담긴 짜증이나 피로, 혹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공기를 타고 넘어와 내 피부에 직접 닿는 듯한 불편함을 겪게 되는 것이죠.
신경질적으로 탁탁거리는 키보드 소리, 전화를 끊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거친 소음, 미간을 찌푸린 채 모니터를 노려보는 굳은 표정들까지. 우리는 타인이 내뿜는 부정적인 감정의 조각들을 남들보다 훨씬 더 선명한 해상도로 읽어내는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내 기분은 꽤 괜찮은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날 선 기운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어느새 내 가슴 한가운데에도 묵직한 돌덩이가 얹힌 듯한 답답함이 전염되고 맙니다.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해지거나 누군가 불편한 기색을 보일 때,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내가 아까 보낸 메일에 문제가 있었나?', '방금 한 내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내면의 평온을 흩트려놓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은 그저 개인적인 일로 피곤하거나 업무가 안 풀려 한숨을 쉬었을 확률이 높지만, 주변의 감정을 깊게 흡수하는 우리에게는 그 모든 상황이 내가 해결하거나 책임져야 할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이렇게 타인의 감정 변화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면,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에는 집중하지 못한 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 애쓰기도 하죠.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내 안으로 끝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의 에너지를 바닥내어, 퇴근 무렵이면 온몸이 텅 비어버린 듯한 깊은 소진을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