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잔상을 지우는 확실한 로그아웃 향기

퇴근 후에도 계속되는 생각의 꼬리를 다정하게 끊어내는 시간

by 이지현

퇴근 후에도 계속되는 머릿속의 야근

집까지 따라온 업무의 잔상들

복잡한 출퇴근길을 지나 마침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몸은 비로소 안전한 집에 도착했음을 알립니다. 옷을 갈아입고 편안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보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진 채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곤 하죠. 낮에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의 미묘한 뉘앙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기획안의 목차, 퇴근 직전에 전송한 이메일의 문구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집 안까지 고스란히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초민감자에게 물리적인 퇴근이 곧 심리적인 퇴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자극을 남들보다 깊고 세밀하게 빨아들이는 탓에, 낮 동안 흡수한 수많은 정보와 감정의 파편들이 퇴근 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곤 합니다. 밖에서 묻혀 온 긴장감이 씻겨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푹신한 침대에 누워도 온전한 휴식의 질감을 느끼기 어려워집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뇌는 달리는 중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내일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을 시뮬레이션하느라 쉴 틈이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은 고요한 저녁으로 바뀌었건만, 뇌는 여전히 낮의 분주했던 속도에 맞추어 빠르게 회전하며 교감신경의 흥분을 내려놓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시차가 벌어지면, 쉬고 있으면서도 쉰 것 같지 않은 깊은 억울함과 무기력이 찾아오기 쉽습니다. 하루 종일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밖에서 에너지를 쏟아냈다면, 저녁에는 내면의 스위치를 끄고 텅 빈 여백을 만들어주어야 내일을 살아갈 힘이 차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릿속을 맴도는 일의 잔상들을 의지로 끊어내려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들에 더 깊이 사로잡히는 악순환을 겪게 되곤 합니다.


초민감자의 뇌가 쉽게 로그아웃하지 못하는 까닭

미결 과제를 놓지 못하는 섬세한 회로

우리의 뇌가 퇴근 후에도 일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까닭은, 완벽을 기하고 조화를 추구하려는 초민감자 특유의 섬세한 기질과 깊게 맞닿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았거나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을 견디는 일은, 예민한 신경계에 꽤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곤 합니다. 이른바 '미결 과제'에 대한 집착이 남들보다 강하게 나타나면서, 뇌는 퇴근 후의 고요한 시간마저 활용해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 부단히 애를 쓰게 됩니다.


오늘 겪었던 사소한 갈등이나 실수 역시 뇌의 입장에서는 아직 닫히지 않은 탭과 같습니다.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내일 상사가 이 부분을 지적하면 어떡하지?"라며 끊임없이 과거를 복기하고 미래를 대비하느라 뇌는 자체적인 야근 모드에 돌입해 버리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잊힐 수 있는 일상의 조각들이, 우리에게는 깊이 분석하고 소화해 내야 할 무거운 과제로 남아버리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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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이로우라 아카데미 이지현 로라원장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뉴로아로마 매소드와 오행아로마 매소드를 창작하여 교육과 컨설턴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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