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다를 3시간 남짓 반복하며 뒤척이다가 잠옷 사이로 드러난 발목에 오소소한 한기가 집중되자 결국 눈이 떠지고 말았다. 꿈인지 생각인지 모를 무언가로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밤이다.
실내온도를 조금 올리고, 다행히 아직 거두지 않은 전기장판을 켰다. 물을 마시고괜히 문단속도 다시 했다. 침대에 돌아와웅크리고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지 않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고작 반년쯤 전에는 이 시간에 이미 가게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지.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 같이 느껴진다. 내색하지 않으려고도 했고 대개는 외면했던 감정이었는데, 지금 가만히 다시 들여다보고 고백하자면 나는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의 중간쯤에 집을 나서노라면 깜깜한 하늘에 아직 별이 총총 맺혀 있고, 공기는 한여름에도 지나치게 서늘해서 늘 소름이 돋았다.
인적 없는 새벽의 바다는 온통 시뻘겋기도불그죽죽하기도 했다. 갓 살이 오르기 시작한 아침 햇살은 바다에 물비늘을 뿌리면서 황금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구름 뒤에 숨은 수줍은 노란빛으로 머물기도 했다. 어떤 날은 강렬한 비비드였고 또 어떤 날은 은근한 파스텔톤이기도 했다.
제주 동쪽 월정리 포구에 면해 있던 월정곰닭의 주방은 해돋이가 시작되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눈이 부시기 시작하면 그제야 문득 해가 떴음을 알아차렸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나는 종종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바닷가로 달려 나가곤 했다.
그것은 하늘이기도 했고 바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기도, 또한 공간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다르게 눈 앞에 펼쳐지던하늘과 바다가 몸서리쳐지게 좋아서, 그 풍광을 오롯이 혼자 만끽한다는 뿌듯함만으로도 새벽출근의 고단함을달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새벽과 아침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니 어느새 창문 밖이 부옇게 번져온다.
아, 갑자기 배가 고프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우유를 데우고 계란후라이를 만들었다.
식탁 위에 매달린 작은 백열등을 켜고, 밤과 아침의 경계가 무너진 기묘한 시각에 조식인지 야식인지 모를 기묘한 식사를 차렸다.
식탁 위에는 탱글탱글하고 신선한 노른자를 품은 '서니 사이드업'이 아니라, 노른자를 터뜨려 익히고 소금과 후추와 파슬리 가루를 살짝 뿌린 올드한 '계란후라이'가 놓여 있다.
지금은 이 음식들이 나의 조바심과 불면을 위로한다.
허기와 한기를 밀어내고 나니 다시 슬슬 몸이 무거워지고 눈이 맵다. 머릿속으로 오늘의 계획 두어 개를 취소하면서 순순히 수면안대를 꺼내 든다. 이제 다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