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 아저씨로부터 뜻밖의 인사이트를 얻다
얼마 전 포럼 통역 마치고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가 집 근처에서 가는 길을 설명해드리겠다는데도 굳이 아파트 단지 이름을 물으시는 거였다. 살짝 의심스럽고 무서웠지만 아파트 이름을 알려드렸더니,
"아리야, ㅇㅇ단지!"
"어머나, 기사님, 내비가 말을 알아듣네요?"
인공지능 내비게이션, 정확하게는 차량용 AI 스피커를 자랑하고 싶으셨구나 싶어 적절히 호응해드렸더니,
"아리야, 지금 날씨는 어때?"
"아리야, 너 똑똑하다?"
(음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자)"아리 너 미워!"
하며 '아리'의 개인기를 계속 보여주셨다.
그 '아리'는 질문에 대답도 척척하고 미세먼지가 심하니 손발 꼭 씻으시라는 애교 있는 잔소리도 선보였다.
원래 어색한 분위기를 잘 못 참는 데다 정말로 신기하기도 해서(영리하고 귀엽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야, 이거 정말 사람 말 다 알아듣네요!" 했더니 기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그래도 이게 아직 사람을 못 따라갑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하면, 사람은 그중에 누구 말을 들을까 정하면 다 쏙쏙 알아듣잖아요?
또, 굳이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으면 뜻을 헤아릴 수 있죠.
AI는 그걸 못해요. 사람 능력을 정말로 따라잡으려면 멀었지 싶어요.
이심전심, 이게 사람의 위대한 능력이죠."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걸 '위대하다'라고 표현하신 것에 깊이 감동했다.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각, 집까지 버스 타고 갈 기운이 없어서 택시를 탄 것뿐인데 의외의 교훈.
사실 그랬다. 벌써 몇 년째인가. AI가 통역, 번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광고며 기사가 넘쳐난다.
기계번역이 너네 직업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많고 반대로 터무니없이 낮은 번역료를 제시하는 고객에게 "그냥 구글 번역기 쓰시죠"하고 거절했다는 선배님도 있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의 따뜻하고 지혜로운 시각을 통해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세상은 단어:의미의 1:1 대응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영어권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이 회의를 한다고 치자.
누군가 'pear'라고 말한다면 그걸 '배'라고 옳게 전달해도 소통이 꼬이곤 한다. 한쪽은 길쭉한 오뚝이 비슷하게 생긴 과일의 그림을 머리에 그리고 있지만 상대방은 노랗고 둥근, 달고 시원한 과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서로 마음에 갖고 있는 그림이 다르니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이런 세상에서 어쩌면 불가능할, 이해의 간극을 메우고 다리를 놓아보겠다고 일하는 나는 '이심전심'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로 했다. AI가 통번역사 직업을 정말로 대체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사람의 말에 더 귀 기울이고 마음을 헤아리며 그렇게 생존해봐야지, 다짐했다.
집에 돌아가는 밤길은 한적했다. 뻥뻥 뚫린 도로를 달리며 기사 아저씨가 덧붙였다.
"손님이 타니 이렇게 '소통'이 잘 되네요."
물론, 길이 막히지 않아 차가 시원하게 나간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하지만 소통을 잘하는 사람, 사람 간의 소통을 촉진해 주는 사람이 되고픈 내겐 덕담처럼 느껴졌다.
지어낸 이야기 같을 정도지만, 정말 그랬다. 불과 일주일도 안 지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