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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an 22. 2019

인터뷰 복 터진 날

떨리는 인터뷰의 현장 속으로

전화가 울려왔다.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낯선 번호를 받아보니 어느 남자 음성이 들려왔다. “I am calling from OO Elementary…” 정말 어느 초등학교에서 걸려온 게 아닌가! 일반 학급 어시스턴트를 구하는데 당장 오늘 오후에 인터뷰를 올 수 있냐고 묻길래 주저 없이 대답했다. “Sure!” 귀를 쫑긋 세우고 약속 시간을 잡은 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얘들아, 학교에서 전화 왔어! 엄마 진짜 인터뷰 보러 간다!”


전화 한 통 받고서 한껏 부풀어 오른, 자랑스럽고 떨리고 흥분되는 이 마음! 그도 그럴 것이, 인생 처음으로 미국 학교에 가서 인터뷰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곧이어 어느 고등학교에서, 또 다른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심지어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전화가 왔다. 일대일로 장애우 학생을 돕는 어시스턴트를 구하는 자리들이었다. 아, 이렇게 인터뷰 복이 터질 줄이야!


그나저나 당장 잠시 후에 가게 될 인터뷰 준비는 하나도 못 했는데 어쩌나 싶었다. 이렇게 빨리 전화가 와서 인터뷰가 진행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 질문이나 잘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쨌든 좋은 경험이 될 거고 하다 보면 더 늘게 되겠지 스스로 위안하면서 첫 번째 인터뷰에 나섰다.


나를 제일 먼저 불러준 C 초등학교. 오피스에 가 보니 나 앞서 대기자가 한 명 있었고, 뒤에도 한 명 더 들어왔다. 이제야 현실이 파악되었다. 각 학교들도 바로 다음 주 개학을 앞두고 가능성 있는 후보자들을 다 불러놓고서 줄줄이 인터뷰를 하는 바쁜 상황인 것을. 영어는 당연히 퍼펙트한 미국 여자들 틈에서 기다리는데 나는 왜 자꾸 작아지는 걸까… 친절해 보이는 옆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타주의 학교에서 일했던 경력자였다. 인상까지 너무 좋은 그녀 옆에서 내가 과연 경쟁이 될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느덧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면접실에는 남녀 두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대답도 잘해야겠지만, 제발 제발 질문부터 잘 알아듣길. 이런 내 간절한 소원을 어찌 알았는지, 질문지가 프린트되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이 직종과 관련된 내 경력, 아이들을 다룰 때의 효과적인 원칙, 문제 학생을 다루었던 경험 등을 묻는 질문들이었다.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영어가 내 뜻대로 굴려지지 않아 속시원히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에게 질문이 있냐는 말에, 나는 이대로 끝낼 수 없겠다 싶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비록 영어가 유창하지는 못하지만, 내게는 아이들을 향한, 특히 소외된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있노라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서는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왜 쓸데없이 그 말을 했을까… 아, 이 말은 했어야 했는데…' 온갖 후회와 안타까움, 부끄러움이 계속 내 마음을 괴롭혔다. 첫 번째 인터뷰의 여운은 그날 종일토록 진하게 흔적을 남겼다.



두 번째 학교는 N 고등학교. 솔직히 내 영어 실력으로 고등학생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많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잡힌 약속을 취소하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또 하나의 좋은 경험이 되겠지?’ 그렇게 주저함을 꾹꾹 누르며 찾아간 인터뷰. 우선은 학교의 큰 사이즈에 놀랐고, 네 명의 교사들이 면접관으로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에 놀랐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차례로 질문을 하는데, 여기엔 질문지도 없었기에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질문 하나하나를 놓칠까 봐 귀를 쫑긋 세우며 대답을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 주는 분위기가 좋았다. 어제와 비슷한 문제도 있었고, 인터넷에서 리뷰한 문제들도 나왔다. 특히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 대해 물어볼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학부모에게 우선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할 것이라 하니 다들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는 걸로 봐서 내가 대답을 잘한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한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주춤하다가 대략 짤막하게 대답했는데,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안도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려는데, 한 선생님이 나를 추천해준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서 이 번호로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다. 왠지 예감이 좋았다. 학교를 나오자마자 곧바로 내 추천서를 써주신 분들에게 카톡을 보내어 이 학교로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는 곧장 다른 인터뷰 장소인 W 초등학교로 향했다. 사실 이 학교는 보통 학교의 캘린더와 달리 Year Round 스케줄을 가지고 있어서 방학 기간이 우리 아이들 학교와 다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 합격한다고 해도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 그래도 인터뷰를 가기로 했다. ‘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라고 믿으며. 다른 초등학교보다 사이즈도 큰 규모인 이 학교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보통은 관련된 담당 교사들이 인터뷰를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격의 없이 유머러스하게 말을 건네며 나를 너무 편안하게 대해 주는 교장의 모습에 나는 감명을 받았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친절히 설명해 주더니 인터뷰를 진행하기 앞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학교 스케줄에 내가 맞출 수 있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라는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자백했다. 실은 우리 아이들 학교와 스케줄이 달라서 나도 좀 난처하긴 하다고. 그렇다면 어려운 인터뷰 질문들로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접는 현명한 그의 판단에 나도 동의했다. 그는 특수반 보조교사 자리는 여러 학교에서 계속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좋은 오퍼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악수를 하며 헤어지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이런 교장 밑에서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작 떡 줄 사람은 내게 마음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나 혼자 그렇게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리하여 오전의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서 오후에 잡힌 치과 약속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길이었는데, 운전 중에 전화가 울려왔다. 왠지 모를 예감에 이끌려 차를 얼른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인터뷰를 본 고등학교의 여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일대일로 학생을 맡아서 일할 오퍼를 주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학생의 컨디션을 이야기하는데 선생님 말이 빠른 데다가 어려운 용어도 섞여 있고 나도 경황이 없어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묻는 말 앞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Yes! I will!” 그러자 그녀는 얼마 뒤 HR에서 이메일이 갈 거라며 서류 절차가 길게는 2주까지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궁금한 건 언제든 자신에게 전화나 텍스트로 물어보라는 친절한 그녀의 말에 나는 말했다. “Thank you so much!”

   

이렇게 빨리 결정이 되다니 어안이 벙벙했고, 너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진짜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게 되다니! “얘들아, 엄마 뽑혔다! 엄마 오라고 하는 학교도 있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이들과 신나게 치과에 도착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마음이 좀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자세히 알아듣지도 못하고 무조건 예스한 것 같아서 말이다. 게다가 고등학생들은 덩치도 클 텐데 내가 감당하기 벅찬 일이면 어떻게 하지? 불안감도 슬슬 올라올 때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어느 중학교에서 인터뷰를 보자는 전화였다. 벌써 다른 학교 간다고 대답했는데 또 인터뷰를 봐도 되나 망설였지만, 나도 모르게 ‘예스’를 해버렸다. 곧이어 어느 초등학교에서도 전화가 왔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에도 ‘예스’가 나와 버렸다. 이 거절하지 못하는 예스 우먼, 어쩌면 좋아... 이젠 전화가 그만 왔으면 싶을 정도였다.


이미 간다고 대답은 했지만, 어차피 서류 절차도 남았고 완전히 결정이 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를 마저 다 본 후에 더 맞는 학교로 정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인터뷰도 아직 남아 있었다. 벌써 나를 오라고 한 학교도 생기다 보니 앞으로 남은 인터뷰에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과연 내가 최종적으로 가게 될 학교는? 내가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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