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Feb 12. 2019

취직의 감격

마침내 미국 학교에 입성!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미국 학교에 취직하게 되다니! 내 부족함을 알기에 간절히 기도했고, 내게 조금씩 열린 문을 향해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딛고 나니 어느덧 그곳에 닿아 었다. 그 과정 중에 이런 마음이 들었다. 취직하여 돈을 버는 것도, 미국 학교에 일하며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것 모두 중요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내게 열린 이 기회는 다만 돈을 버는 자리가 아니라 연약한 생명을 도울 수 있는 자리라는 깨달음. 일종의 새로운 사명감이 내 안에서 싹트고 있었다.


얼바인 교육구의 HR 사무실을 방문해 취업 관련 서류들을 접수하면서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Special Education IA(Instructional Assistant), 특수교육 교사 보조. 그것이 나의 새로운 직업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매일 5시간 근무이며 여름방학 두 달을 제외하고 10달 동안 일하는 조건이었다. 첫 시급도 괜찮았고, 유니온에 가입되어 여러 혜택과 함께 2년제 온라인 무상 교육을 받을 수도 있으며, 연금도 따로 적립할 수 있고, 휴일과 짧은 방학 등도 있어서 급여를 받고 쉴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다. 사실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되는 내용들이었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비싼 생활비 충당하느라, 내일에 대한 보장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했던 형편이기에. 특히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일할 수 있어서 엄마들에겐 더없이 안성맞춤인 파트타임 직업이니 정말이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학교에 입성했다. 얼바인의 N 고등학교. 시설이 잘 갖춰지고 규모도 제법 큰 학교였다. 학교 오피스에서 주차증을 발급받고서 교실을 찾아가는데,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는 선생님은 지난 면접에서 만났던 미스터 그린이었다. “Good to see you again!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환한 그의 미소에 긴장되었던 내 마음이 다소 풀어졌다. 나를 데리고 교실을 안내해 주며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는데, 얼떨결에 다 인사를 하고 다녔다. 특수학급으로 배정된 세 교실 중 내가 일하게 될 교실을 소개해 주는데, 나의 담당 선생님은 내게 처음 전화를 걸어주고 면접에서 나를 맞이해 주었던, 미스 그린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로 인해 발탁이 되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이애나 황세자 비를 닮은 듯한 미모의 그녀는 상냥하고 친절했다. 서로 부부라 소개하지 않았지만 성이 둘 다 ‘그린’이었기에 부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키도 크고 훤칠한 선남선녀 부부가 함께 특수학급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맡을 학생은 어디에 있지?’ 선생님은 학생들 이름이 적힌 책상을 보여주었다. 이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등교 시간이 늦어서 조금 후면 도착한다고 했다. 이윽고 스쿨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기사가 휠체어를 차례로 끌면서 버스에서 내려주는데,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 두 명이 보였다. 외모적으로는 잘생기고 예쁜 학생들이었다. “Hi! Nice to meet you!”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고, 몸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두 아이는 남매이며, 나중에 한국 아이들인 것을 알게 되고는 또 한 번 놀랐다.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섞인 채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남자아이는 기관 절제술을 받아 목에 삽입관을 하고 있었기에 간호사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날은 두 명의 간호사가 함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나처럼 오늘이 첫 출근이어서 다른 간호사로부터 트레이닝 겸 인수인계를 받는 중이었다.

 

휠체어를 끌면서 교실로 돌아오니 선생님이 곧바로 시범을 보여 주었다. 오자마자 여학생 휠체어를 뒤로 젖히면서 등을 곧게 펴 준다. 그리고 튜브를 통해 물을 준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따사로운 햇살 아래 산책을 나간다. 그럴 때면 주로 음악실 앞에 가서 악기 연주 등을  듣게 해 준다고 한다. 이후 화장실에 가서 기저귀를 갈아준다. 특히 여학생은 침대에 눕혀서 갈아줘야 하기에 호이어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휠체어에서 들어 올린 후 침대에 눕혔다가 다시 들어 올려서 안전하게 앉혀 준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두 사람이 협조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점심시간. 다시 튜브를 통해 분유 한 통과 나머지 물을 넣어준다. 그리고 다시 기저귀를 갈아주니 어느덧 학생들은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늦게 와서 더 일찍 가는 스케줄이었다.


집에 갈 준비를 시키고 다시 휠체어를 밀어서 스쿨버스로 데려다주며 아이들과 작별했다. 간호사도 학생과 함께 버스에 타고 동승하여 집까지 데려다줘야 하기에 그녀들과도 안녕. 그러나 나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남는 시간에 선생님은 나에게 또 다른 학생을 맡겨 주었다. 이번엔 귀엽게 생긴 맥스라는 남학생이었다.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자폐아였는데 신체적으로는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뛰쳐나가려는 성향이 있었다.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배정받은 일, 기프트카드를 종류별로 분류하거나 봉투에 종이를 집어넣고, 클리닝을 하는 일 등을 잘 끝내도록 지켜보고 도와주는 일이었다. 자꾸 집에 가고 싶어서 코를 만지작거리며 “Go home!”을 반복해서 말하며, 필통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그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귀엽기도 했다.  


버스가 왔다며 바로 튀어나가는 맥스를 진정시키며 잘 바래다주고 나니 나의 근무 시간도 끝이 났다. 미세스 그린이 나를 보더니 오늘 오자마자 바로 뛰어들어서 일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해 주니 기분이 으쓱해졌다. 사실 선생님들 영어가 빨라서 나도 그들 말을 캐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하루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과연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나의 궁금증이 이제는 모두 풀렸다. 내가 예상했던 일은 아니었다. 영어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할까 걱정도 했는데, 정말 나에게 딱 맞는 학생들을 주신 게 아닌가 싶었다. 육체적으로 다소 힘들 수는 있으나 우선은 영어를 많이 쓰지 않아도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니. 그리고 한국 아이들이니 가끔은 한국말도 섞어 가며 내가 더 마음 편하게, 따뜻하게 대해 줄 수 있으니.


학교에 와 보니 일하는 교사, 보조교사들 모두 정말 다들 쏼라쏼라 유창한 미국 사람이고 나 혼자 버벅대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들 틈에서 이렇게 일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할 뿐이었다. 비록 오고 가는 빠른 영어 속에서 많이 주눅도 들고 답답하고 좌절감도 많이 들었지만, 이런 도전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참 감사했다. 차차 일도 익숙해지고, 영어도 더 많이 익숙해지길, 그래서 내 역할을 당당히 잘 해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 시간아 얼른 가라!


새로 일하게 된 고등학교의 전경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일할 학교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